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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의 체계적 이해
고익진 지음 / 새터 / 1994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저는 불교 신자도 아니고 불교 사상에 조애가 깊은 사람도 아닙니다. 그저 절집이나 스님들에게서 느껴지는 뭔가 '있어 보이는' 분위기에 이끌려 불교 사상에 대해 막연한 관심 정도를 갖고 있는 사람입니다.
불교에 대해 갖고 있는 저의 관심이 비록 막연하긴 하나마 이 막연한 관심에 이끌려 불교 사상의 주변을 기웃거린 지가 이미 몇 년이 되어가는 것 같습니다. 실은 기웃거렸다는 말도 민망할 정도로 아는 것은 여전히 없습니다만, 이리 저리 헤매고 다닌 경험에 비추어 이 책을 추천해 보고 싶어서 이렇게 서평을 쓰게 되었습니다.
아시다시피 불교 사상은 기나긴 세월동안 광대한 지역에서 발전해 온 까닭에 그 범위가 무척 넓습니다. 따라서 이제 막 불교에 들어선 사람들로서는 어디서부터 공부를 시작해야 하는 지도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불교를 오랫동안 공부하신 분들은 불교에 대한 공부는 경전에 대한 공부에서 시작해야 하며, 특히 아함경, 반야심경, 법화경과 같은 경전에서 시작해야 한다고 항상 말씀하십니다. 하지만 이 경전 자체가 초보자에게는 쉽지 않을 뿐만 아니라 불교에서 자주 쓰이는 개념들에 대한 이해가 미약한 상태에서는 이 경전들을 해설해 놓은 책을 읽는 것 조차도 쉬운 일이 아닙니다.
결국 불교 사상에 이제 막 발을 담가 보고자 하는 이들은 불교 사상이라는 거대한 성체의 주변을 맴돌기만 할 뿐 이 성체 안으로 들어갈 수 있게 하는 입구를 찾지 못해 헤매기가 십상입니다. 입구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불교 사상의 핵심에 이르게 하는 입구이기 보다는 불교 사상 안의 상대적으로 지엽적인 부분으로만 이어진 입구도 그 중에는 더러 있는 것 같습니다.
저는 이 책이 불교 사상의 핵심에 이르는 유구한 길을 열어주는 믿음직한 입구가 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크게 보아 철학, 종교, 윤리의 세 가지 관점에서 불교 사상에 접근하는 이 책은 어느 한 쪽에도 소홀함이 없이 불교 사상의 내적 총체성을 염두에 두며 독자를 안내합니다.
이 책에서 저자인 고익진 선생은 독자에게 생경할 수 있는 세부적인 사항에 대해서는 큰 집착을 보이지 않습니다. 대신에 그는 불교와 함께 한 당신 일생의 경험을 더듬어 불교를 이제 막 기웃거리는 사람들이 나아가야 할 큰 길로 독자를 인도합니다. 이 큰 길을 따라가며, 특히 아함경으로부터 비롯되는 불교의 근본 교설을 쉽고도 깊이 있게 설명하는 솜씨에는 불교 사상에 대한 고익진 선생의 농익은 사유가 배어 나옵니다.
이로써 고익진 선생의 설명은 불교 사상의 근간이 읽는 이의 미약한 사유 안에 미묘하면서도 강하게 스며들게 합니다. 저는 이 책을 다시 읽을 때마다 혼자서 공부를 하느라 난마 같이 얽혀버린 사유와 개념들이 근본 교설의 뜻에 따라 다시금 정돈되는 듯한 체험을 하곤 합니다
독자를 인도하여 불교의 근본 교설을 순례하는 고익진 선생은 그의 평생에 걸친 길고도 반복된 순례의 경험을 통해 이 유구한 성지 순례의 여정을 이미 통달하고 있는 듯 합니다. 이 순례에 동참함으로써 하게 될 불교 사상 공부도 공부이지만 긴 세월 동안 한 우물을 파온 저자의 불교에 대한 애정의 흔적을 음미해 보는 재미도 놓칠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