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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주의와 당 - 정치신서 3
존 몰리뉴 / 책갈피 / 1993년 5월
평점 :
절판
대선에 출마한 한 명의 후보로서의 노무현 대통령 후보가 일부 인사들에 의해 “급진 좌경 세력”이라고 공격 받곤 하는 것을 볼 때마다, 그리고 그런 어처구니 없는 공격이 상당수의 일반인들에게 효과적으로 먹혀 들어가는 것을 볼 때마다 맹목적인 반공 이데올로기가 이 사회의 정신을 불구로 만들어 버렸음을 여실히 느끼곤 했습니다. 노무현 정도의 인물이 “급진 좌경 세력”으로 분류되는 현실이 참담했고 “급진 좌경 세력” 이라는 말이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특정 인물에 대한 강력한 공격이 될 수 있는 현실이 또한 참담했습니다. 이영희 선생의 말대로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날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이 사회는 왼쪽 날개가 없는 불구의 새만이 올바른 새라는 어처구니 없는 거짓을 맹목적으로 숭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결과로 이 사회의 정치적 IQ는 정신박약아 수준으로 추락해 있지만 별다른 이변이 없는 한 개선의 여지는 별로 없을 것 같습니다. 일단 현실 사회주의 국가들(실은 사회주의를 빙자한 국가 자본주의 국가들)의 패퇴가 이 사회에 존재하던 사회주의에 대한 관심을 이미 많은 부분 걷어가 버렸습니다. 하긴 현실 사회주의 국가들이 아직도 남아 있었다고 한들 그래도 분명히 이 시대는 세계화니 무한경쟁이니 하며 바쁜 세상이 되어 있을 터이니, 여차하면 정리해고 되는 살벌한 세상에 한가하게 사회주의 운운할 시간은 또 어디 있겠습니까? 어서 빨리 돈 벌어서 명품 핸드백이나 승용차를 장만하거나, 아니면 하다 못해 핸드폰이라도 신제품으로 바꿔야 하는 이 중차대한 시기에 귀신 씨 나락 까먹는 사회주의가 다 무엇이겠습니까?
이 책은 사회주의로의 이행 과정에서 전위 정당과 노동자 소비에트의 관계가 어떠한 것이어야 하는가를 사회주의 사상의 발전 흐름에 따라 통시적으로 고찰하고 있습니다. 구 소련이나 구 동독에서 나온 책들이 스탈린주의에 대한 어처구니 없는 찬양과 교조적인 태도와 비현실적인 사고를 보여준 경우가 많았던 데에 비해 영국 사회주의 노동자 당의 당원으로서 핵심 자본주의 국가 내부에서 투쟁을 전개해야 했던 인물을 저자로 둔 이 책은 저자의 관록 있는 현실 투쟁의 경험을 반영하듯 보다 실천적이고 이성적인 태도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책의 초판은 실천 편람 비슷한 것이었다고 저자는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회주의를 지향하는 실천은 고사하고 사회주의도 나름대로 가치가 있는 것임을 먼저 홍보(?)해야 하는 우리의 척박한 현실에서 이 책의 가치는 실천 편람으로서의 가치가 아닌 다른 데에 있는 것 같습니다.
그것은 바로 수십년간 은폐되었던 사회주의의 원칙들을 이 시대에 되살려 내는 것입니다. 이 책은 노동자 계급의 정당으로서의 당이라는 당의 계급적 본질의 회복, 노동자 계급 내의 불균등한 의식을 고양시키고 추진시키는 혁명적 전위로서의 당이라는 당의 개념적 본질의 회복, 당은 노동자 계급의 우두머리가 아니라 노동자 계급의 자기 해방을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는 당의 위상적 본질의 회복, 마지막으로 프롤레타리아 계급은 국제적인 계급이며 따라서 사회주의 혁명 또한 국제적인 과정이어야 한다는 인터내셔널 이념의 회복을 주장함으로써 자신의 소임을 수행합니다.
사회주의가 인류를 위해 기여를 하고자 한다면 이러한 원칙들에 기반을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현실 사회주의, 실은 국가 자본주의 국가들은 그러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이러한 원칙들을 암살하고자 했으며 이 원칙들이 암살된 자리에 서서 스스로를 진정한 사회주의로 사칭하였습니다. 이 책은 암살되었던 사회주의의 원칙들의 부활을 시도합니다. 그런 면에서 보면 이 책은 사회주의가 인류의 역사에 다시 동참하는 미래를 예비하는 책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우리가 사회주의를 사면 복권 시킨다면 사회주의는 어떤 식으로든 인류에게 기여하는 바가 있을 것입니다. 또한 이 사회의 정신박약아 수준의 정치적 IQ를 비약적으로 향상시키는 데에도 크게 기여하는 바가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