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의 세계화와 신자유주의 - 이론신서 7
김성구 외 지음 / 문화과학사 / 199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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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민주노동당 후보로 출마한 권영길씨의 부인은 유복한 가정에서 어려움을 모르고 자라났다고 합니다. 권 후보의 부인은 빨치산으로 활동하다가 사살당한 부친의 기억을 거쳐 노동 운동에 투신한 권 후보를 만난 다음에야 그녀가 몰랐던 절반의 세계를 이해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녀가 권 후보에게 했다는 말, 당신 덕분에 몰랐던 세계를 알게 되어 감사한다는 말이 시도 때도 없이 삭발 투쟁을 해야 했던 권 후보에게 늘 큰 힘이 되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어찌 유복하게 자라난 권 영길 후보의 부인만 세상의 반쪽을 모르고 살았겠습니까. 기나긴 노동 시간에 시달려야 근근히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우리들에게는 전혀 잡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이 자본주의 체제에서는 분명히 대량 생산하고 있다는 루이 뷔통과 BMW와 억대 연봉을 흠모하느라 본의 아니게 자본주의의 광신도로, 자본주의의 사수대로 나날이 전락해 가고 있는 대부분의 우리들에게도 모르고 살아가는, 혹은 인정하고 싶지 않은 세상의 반쪽이 있습니다.

이 분야의 학문을 전공하시는 분들에게는 이 책에서 언급하고 있는 내용들이 그다지 새로울 것이 없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처자식을 먹여 살리고 늙은 부모를 봉양하리라는 소박한 희망조차 잃지 않기 위해서는 자본주의에 대한 크나큰 기대를 하고 살아갈 수 밖에 없는 보통의 불쌍한 소시민들에게는 이 책이 내용이 가슴 아프게 다가올 것입니다. 하지만 현실을 알아야 그 현실을 타개할 길도 보이는 법이니 부디 이 책을 일독하시고 모르고 살아온, 혹은 인정하고 싶지 않은 세상의 반쪽을 발견하시고 또 인정하시기 바랍니다.

전문 연구자들이 쓴 글이라 가끔 전문 용어들도 나오긴 하지만 읽기에 껄끄러운 편은 아닙니다. 각각의 글 들도 길지 않고 번역글이 아니라 문장도 자연스럽습니다. 이 분야의 책들을 몇 권 읽어 보지는 못했습니다만 이 책 정도면 부피와 가격에 비해 경쟁력 있는 영양가를 갖추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뿐만 아니라 이 책에는 “결론만 대, 결론만!” 이라고 외치실 분을 위해 이 사람들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도대체 무엇인지를 간결하게 잘 정리해 놓은 글도 있습니다. “증거를 대, 증거를!” 이라고 외치는 분들을 위한 증거들도 없지는 않습니다만 좀 더 손에 잡히는 구체적인 증거(?)를 원하신다면 당대에서 나온 “빈곤의 세계화” 를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이 책까지 읽고 나시면 자본주의라는 것이 장난이 아님을 더 잘 느끼시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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