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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행
제이미 제파 지음, 도솔 옮김 / 꿈꾸는돌 / 2003년 5월
평점 :
품절
인생의 어느 시점에서 부탄으로의 여정을 시작하는 제이미 제파의 결정은 과감했다. 결혼을 약속한 남자친구와 박사 진학을 포기하고, 신문 한 귀퉁이의 작은 광고에 그녀의 인생 행로를 틀어버렸으니까.
사실 인생이란 예측한 대로 진행되지 않으며, 나의 욕망조차도 시시때때로 변화함으로써 나의 인생이 어디로 흘러갈지 알 수는 없다는 것을 이 책을 읽는 이들도 잘 알고 있다. 단지 살면서 그 순간을 맞이할 때까지 깨닫지 못할 뿐.
내가 이 책을 사랑하게 된 것은 그녀의 여행이 나의 여행과 너무나도 닮아 있기 때문이다. 어쩌먼 나의 여행의 추억을 ... 잊고 있던 세세한 기억까지 다시 꺼내 놓았기 때문일지도. 처음 인도 델리에 도착해서 대한민국의 어느 후미진 지역의 버스 터미널 같은 델리 공항을 보면서 이 여행이 나의 상상력 이상으로 험란한 여정일 될 것이란 것을 그때서야 제대로 깨달을 수 있었다. 문명의 이기에 완전히 익숙해져 버린 나의 몸과 눈과 소리는 새로운 교통수단과 사람들, 시끄러운 경적소리와 뒤섞인 소와 개의 울음소리, 흙길 등의 온갖것을 무시하고, 거부하고 싶었다. 당장이라도 깨끗하고 잘 정돈된 집과 도시와 나의 생활 공간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그렇지만 돌아갈 수 없었고, 막상 갈 곳도 없었다. 그냥 계속 나아가는 수 밖에.
부탄인들은 기도를 하기 시작했다. 도로가 무너져내리든지, 트럭이 기울어지면서 모두가 벼랑으로 굴러떨어지든지, 아니면 내 방광이 터질 것 같았다. 그중에서 내가 무엇을 가장 두려워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세상의 끝을 향해 달려가는 순간, 죽음이 눈 앞에 있다고 생각되는 순간 밤세워 버스를 타고 가면서 나는 인생에 대한 어떤 변화가 일어났음을 느꼈다. 그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는 모르겠으나 난 예전의 나와는 조금 다른 내가 되어 있었다.
수없이 물리던 벼룩과 쉽게 끊어져 버리던 전기, 도무지 먹을 수 없을 것 같았던 음식들에 내가 적응 했듯 그녀도 적응 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혼자 책을 앞에두고 웃을 수 밖에 없었다. 그녀는 차츰 부탄에 적응하기 시작하면서 자신이 24년간 살아왔던 캐나다, 서구의 문화와 부탄의 문화사이의 차이와 갈등을 경험한다. 그리고 자신이 속해있던 서구 문명에 대한 비판적 자세를 갖기 시작하며, 새로운 곳의 문화에 대한 이해, 한 발짝 더 가까이 다가가기를 시작한다. 한사람의 이방인으로 그 공간에 침투하면서 그 공간을 자신이 의도하든 하지 않든 변화시키게 되고, 그 변화의 과정에서 사람들에게 해를 끼쳤던 자신 행동을 인지하는 것은 뛰어난 성찰의 과정이다.
이곳에서 시간은 무서운 속력으로 앞으로 달려나가지 않는다. 변화는 매우 천천히 일어난다. 할머니와 손녀는 같은 옷을 입고, 같은 일을 하고, 같은 노래를 알고 있다. 손녀는 자신의 할머니를 상대하기 귀찮고 지루한 과거의 유물로 생각하지 않는다. 할머니의 이야기는 손녀를 짜증나게 하지 않고, 손녀가 원하는 것은 할머니가 그 나이 때 원하지 것과 다르지 않는다.
시간이 빠르다는 것은 변화하는 순간 순간에 대한 적응의 기회가 없다는 것과 같은 의미이며, 어느 순간 우리는 익숙해지지 않은 채로 삶을 보낸다. 하지만 '부탄식 시간의 휘어짐'을 경험한 그녀는 그것이 그녀가 속했던 곳의 문화며, 삶의 방식이지 이것이 모든 곳에서 적용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진정으로' 이해하게 된다. 그렇다면 그런 삶을 동경하고 사랑하는 것은 단지 그곳에 잠시 머물다 가는 사람이기 때문일까? 그런 채로 살아야 한다고 하면 그 삶은 더 이상 동경의 대상이 되지 않을까? 부탄에서의 삶을 사랑하고, 그곳에서 계속 살고 싶은 제이미 제파에게 이 질문은 그 결정이 내려진 순간에도 계속 풀리지 않는다. 아니, 이미 그녀는 결정을 내렸지만 주변 사람들은 그녀의 그런 선택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이 글은 낯선 곳을 여행하는 인류학자의 필드노트같은 글이다. 자신이 살던 곳, 아이들을 가르치던 곳, 주변 인들에 대한 상세한 묘사와, 자신의 변화를 성찰해가고 있는 그녀의 글은 여행의 가치를 잘 담아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