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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우리 옛글 백가지
조면희 지음 / 현암사 / 2005년 5월
평점 :
품절
'옛글'이라면 먼저 한자 표기를 떠올리고 갑갑함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 이 책은 요즘 갈래로 따지면 수필에 해당되는 100편의 글을 싣고 있다. 우리 선인들이 한문으로 남긴 글들 중에서 한시와 성리학적 이론을 표현한 글을 빼고 필자 나름으로 번역한 것 중에서 골랐다고 한다. 저 신라 말의 고운 최치원의 글에서부터 조선 후기 실학파인 연암 박지원의 글에 이르기까지 실려 있다.
이 책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옛글의 형식적인 다양성이다. 전(傳), 설(說), 서(書), 기(記), 시축서(詩軸序), 제문(祭文), 소(疏), 행장(行狀), 계(啓) 등의 다양한 형식을 보여주는데 지금의 수필보다 훨씬 풍부한 형식적 외연을 가지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설(說)은 구체적인 사물에 관하여 자기의 의견을 서술하면서, 사리를 설명하여 나가는 문장을 말한다. 중학교 국어 교과서에 실린 이규보의 '슬견설( 犬說)'과 강희맹의 '도둑의 교훈(盜子說)'이 여기에 속한다.
아주 특이한 제목의 글로 눈에 띈 것은 최항의 '비해당 시축서(匪懈堂詩軸序)'이다. 비해당은 세종의 셋째 아들 안평대군 이용의 호로써, 자는 청지이며 서예가로도 이름이 높았다고 한다. 그러니까 이 글은 비해당이 쓴 시첩의 서문이다. 요즘 시집의 서문격에 해당한다고 여겨진다.
알다시피 제문(祭文)은 제사 때 죽은 이를 조상하는 글이다. 그런데 그 대상이 아내, 작은형, 친구, 소실 등으로 다양하다는 게 놀랍다. 그 예로 김종직의 '아내를 제사지내며', 김일손의 '중형인 매헌공을 제사지내며', 정철의 '율곡을 제사하는 글' 등이다. 이시발의 '측실을 애도하며'는 소실의 죽음을 애도하는 제문으로 당시 가족제도를 반영하고 있어 색다른 느낌으로 읽을 수 있다.
옛글을 읽으면서 '글은 곧 그 사람이다.'라는 말을 순간순간 떠올리게 된다. 글을 읽으면 바로 글을 쓴 사람의 됨됨이를 알 수 있다는 말이다. 달리 말하면 우리 선조들이 자신의 글에 최선을 다했으며, 그 속에는 글쓴이의 향기가 가득 담겨 있다고 느껴진다. 최근에 지나치게 짧고 가벼운 글들이 상업적으로 팔려나가는 현실을 되짚어 보게 하는 면도 있다.
최항이 <비해당시축서>에서 '이 세상 기예(技藝)에는 모두 자연의 이치가 숨어 있다. 그러므로 그 이치를 터득하면 반드시 신묘한 경지에 도달하게 된다.'라고 짧은 두 문장으로 예술론을 펼치고 있다. 이렇듯 간명하게 나타낼 수 있다는 것은 글쓴이의 예술적 안목이 나름으로 일가를 이루었음을 짐작하게 해 준다.
강희맹의 설(說)이 세 편 실려 있는데, 자식과 후손들에게 바른 가르침을 주고자 하는 간절한 마음이 공통된 바탕이다. 이런 글을 통해 볼 때 우리 선조들은 후손들이 바른 생각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음을 알 수 있다.
김종직의 '아내를 제사지내며'는 아내의 죽음을 애통해하는 제문이다. 죽은 아내를 못 잊는 마음이 절절하게 나타나 있다. 또한 이 글은 옛날의 장례 절차를 엿보게 한다. '점필재 선생의 부인 조씨는 성종 18년, 선생 52세 때인 4월 30일 사망, 그해 11월 20일 금산 미곡에 안장되었다.'는 주를 볼 때, 사람이 죽으면 임시로 매장을 했다가 일정한 기간이 지난 뒤에 장례를 치렀음을 알 수 있다.
이 책을 통해 과거 시험이 단순치 않음을 알게 되었다. 또, 양반의 집안에 태어나 과거에 급제하는 것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점도 짐작이 되었다. 번역자의 자세한 주를 통해 이런 점을 더 잘 알 수 있다.
조선 시대의 과거는 초시-복시-전시의 단계를 거쳐 최종 합격자가 정해진다고 한다. 초시에는 관시(館試)·한성시(漢城試)·향시(鄕試)가 있었다. 시험을 보는 시기에 따라서는 식년시, 알성시, 별시 등으로 나뉜다. 문과의 경우 최종 합격자가 33명인데, 식년시만 치른다고 보면 3년에 33명을 뽑게 된다. 오늘날 사법시험 연간 합격자 수 비교하면 하늘에 별따기임을 알 수 있다.
한꺼번에 다 읽지 말고 시간을 두고 천천히 읽으면서, 옛글의 향기에 취해보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