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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줄도 너무 길다 - 하이쿠 시 모음집
류시화 옮겨엮음 / 이레 / 2000년 3월
평점 :
절판
단 한 줄짜리 시에서 이렇게 많은 말을 듣게 되다니. 그래, 본래 시란 한 마디도 내뱉지 않으면서 다 말하는 비밀을 숨기고 있으니까. 하이쿠, 단 한 줄 말하고 나머지는 여백으로 비워 둔다. 조금만 있으면 그 여백이 나를 가득 채워 울린다. 빗줄기 퍼붓는 칠흑 어둠에서 세상을 비춰주는 찰나의 번개로 오기도 하고, 생의 깊은 샘에서 길어올린 맑은 예지로 오기도 하고, 저녁 안개마냥 막을 수 없는 외로움으로 번지기도 하고, 천지 자연과 하나 되어 노는 즐거움으로, 허무로, 놀라움으로, 그렇게 차 오른다. 그래, 단 한 줄 읽고 가만 놔 두어라. 그러면 모르는 새, 내 안에 세상 하나가 또렷할 것이다.
나비가 사라지자 / 비로소 내 혼이 / 내게로 돌아왔다 -와후(84쪽)
나비와 내가 따로 없는 하나됨의 세계, 그런 막힘없는 영혼을 엿보는 즐거움을 ‘하이쿠’를 통해 누려보자. “저녁에 생각하고, 아침에 생각하라. 하루가 시작될 무렵과 끝날 무렵에는 여행을 중단하라.”-바쇼가 썼다고 전해지는 ‘방랑 규칙’(171쪽) 그러면 맑은 영혼의 소리를 당신도 듣게 될 것이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