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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인 이야기 1 ㅣ 김명호 중국인 이야기 1
김명호 지음 / 한길사 / 2012년 6월
평점 :
15년쯤 전에 들었던 농담 중에 이런 게 있다. 만약 중국인을 모두 무등을 태운다면 지구에서 달까지 갔다 돌아올 수 있다는 것이다. 그만큼 중국에 사람이 많다는 우스갯소리이다. 그런데 도대체 저렇게 많은 사람들 중에 과거 이태백처럼 달을 따려다 물에 빠져 죽었다는 낭만적인 인간이라던가, 죽림칠현 같은 우아한 선비들은 도대체 어디로 사라져버린 것일지 궁금하곤 했다.
홍위병 운동에 말려들어 구시대는 완전히 현대 중국에 안녕을 고한 것일까. 금기서화(琴棋書畫)라고 고금, 서예, 바둑, 그림을 즐기던 구시대 우아한 선비들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경제적 동물인 현대 중국인의 인상만 있는 듯싶었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 나에게 중국인의 인상은 이러했다.
<중국인 이야기>라는 제목이 호기심을 자극한 것은 사실이었다. 그러니까 사전 정보가 많이 없는 상태에서 인터넷 서점의 신간소개를 보던 중 발견한 이 책은 무엇에 대한 책이란 말인가. 현대 중국을 건설한 인물들이라는 점에서 일단 흥미를 느꼈고, 내가 잘 모르는 중국 근현대사에 대한 호기심 때문에 일단 읽게 되었다.
책을 읽은 결론부터 말하자면 내가 중국인에 갖고 있는 선입견이 많이 깨졌다는 것이다. 홍위병 운동 때 과거 문명을 완전히 때려부순 듯하고 구시대 인물들이 모두 사라져버린 듯하였건만, 이 책에 등장하는 낯설디 낯선 많은 인명들을 통해 과거의 문화유산이 절대 사라진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발견했다.
<중국인 이야기>는 현대 중국을 만든 근대와 현대의 인물에 대한 책이지만, 중국 문화에 대한 책이기도 하다. 현대 중국이 어떻게 건설되었는지에 대해서 인물들을 통해 저자는 보여주고 있다. 마오쩌둥이 중국 고전에 해박했고 고전을 중시 여기는 사람이었다는 사실은 현대 중국이 갑자기 역사 속으로 튀어나온 사람들이 아니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현대 중국은 마치 사생아처럼 뚝 하고 떨어진 국가가 아니라 과거의 중국의 위에 성립된 국가였던 셈이다.
신해혁명 직전의 시기 19세기 말부터 20세기까지 약 백여 년에 가까운 세월에 불과한데도 중국에 이렇게 멋진 인물들이 많았다는 것을 이제야 안 것이 아쉽게 느껴진다. 저자가 소개하는 인물들은 마오쩌둥, 장제스, 린뱌오 같은 정치가와 군인부터 한국에선 군벌의 대명사인 위안스카이, 정보원인 리커눙, 쉬베이홍, 친바이스, 네얼 같은 예술가까지 다양하다. 심지어 장제스와 짝처럼 따라나오는 송메이링 대신 그의 전처인 천제루를 대신 탐구하는 엇나감의 미학조차 보여준다.
정치, 역사, 문화, 중국 현대사의 근원인 사람에 대해 탐구하고 그들에 대해 독자가 파악할 수 있게 재미있는 일화를 들어 그들이 어떤 사람들이었고 그 시대에 어떤 행적을 벌여 역사에 이름을 남기게 되었는지 보여주고 있다. 당시 시대가 격변기였던 만큼 가슴 두근거리게 만드는 모험과 감동이 생생하게 살아 있다. 소설보다 더 소설 같고 더 박진감 넘치기도 하고 소설로 썼다고 해도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기적적인 일화도 있다. 이 어찌 재미있지 않을 수가 있단 말인가.
리커눙, 옌바오홍 같은 인물들의 삶은 소설보다 더 스릴 있기까지 하다. 그리고 위대한 인물들의 조력자였던 부인에 대한 묘사도 역시 재미있기 그지없다. 후스의 문맹인 부인이나, 장제스의 숨겨진 여인 천제루, 마오쩌둥의 세 번째 부인인 허쯔전 등에 대한 이야기는 슬프기도 하고 감동적이기도 하다.
이야기가 스스로 살아 움직이는 소설처럼, 역사 속 인물들이 저자의 붓끝에서 살아나 독자에게 자신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처럼 생생하게 느껴진다. 저자는 인물 하나하나에 정성을 기울이는데 추론보다는 정확한 사실과 객관성을 유지하려 한다. 그러나 그들에 대한 호의를 절대 숨기려 하지 않는다. 장점보다 단점이 더 많이 알려진 사람조차 저자는 애정을 갖고 기술하고 있다. 어쩌면 실제 인물보다 더 매력적으로 그려내는 것이 아닐까 의심하는 마음마저 들 정도이다.
장제스가 천안문에 모여 있는 공산당을 폭격해서 분명 반격의 기회가 있을 수도 있었다는 것도, 진먼다오에서 짜고 치던 고스톱도 언제나 하나의 중국을 목표로 하던 장제스와 마오쩌둥도 흥미진진하게 그려지고 있다.
역사책에서 몇 줄에 기술되었을 중국과 미국의 외교 수교 등의 뒷얘기까지 왜 이리도 재미있는 일화들이 많은지. 중국과 미국이 수교하는 과정은 정말 재미있게 그려내고 있다. 단순히 죽의 장막이 열렸다 정도로만 묘사되는 일 뒤에 이런 재미있는 일화가 숨겨져 있었다니.
정말 포복절도하다가 울다가 웃다가 어떤 소설보다 더 재미있었다. 540여 쪽의 꽤 두꺼운 책인데도 이런 마술 같은 저자의 글솜씨에 일단 빨려 들어가면 그냥 달리는 것밖에 없다. 그야말로 단숨에 읽게 만드는 마력이 있다. 한 쪽만 더 한 쪽만 더 하다보면 어느새인가 꽤 시간이 지나가 있다.
이 책을 보는 가장 큰 재미 중 하나는 다양한 사진 자료들이다. 마치 이제 팝아트로 더 익숙해진 마오쩌둥의 젊은 시절부터 나이들어서까지, 미남이었던 저우언라이, 아름다운 여인들까지 사진을 보는 재미가 있다.
인물 하나하나의 흥미도도 물론 마오쩌둥 같은 정말 역사에 다시없을 인물에 대한 자세한 기술은 물론이고 이런 사람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다양한 인물들을 통해 중국 근현대사를 조망하고 있다.
단순히 열전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인간사의 모든 감정들이 용광로처럼 이글거리던 격정적인 시대를 살다간 중국인들의 로망과 모험이 살아 있는 대하역사소설에 가깝다. 그 인물들이 모여서 하나의 흐름인 현대 중화인민공화국을 형성하니 이것 역시 상당히 흥미진진한 역사 기술일 것이다.
단순하게 인물 소개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보여주기 위해 한 줄 한 줄에 저자가 담아낸 노력을 단순히 눈으로 좇아가는 게 미안할 정도이다. 책 뒤에 실려 있는 참고문헌을 보면 저자가 얼마나 신경을 많이 써서 이 글을 저술했나 확인할 수 있다.
속된 말로 떼놈이라고 할 정도로 사람이 많은 중국. 산아제한으로 인구수를 줄이기 위한 정책을 세울 정도인 나라의 가장 큰 보물은 사람이 아니었을까. 그 사람들이 있었기에 현대 중국이 있었다. 이 책의 많은 인물들은 사람이 가장 큰 재산임을 다시 한 번 역사 속에서 증명해 내고 있다. 중국 근현대사에 대한 어떤 책보다 이 책에서 더 다양하고 많은 걸 배웠다.
한 인물을 시작하기 전에 표제로 그 인물과 관련된 문장을 뽑아놓은 것도 그 인물을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된다. “천하를 놓고 싸울 때는 한몸과 같았지만 천하에 군림하자 남은 건 결별이었다.” 이 한 마디 문장에 담겨 있는 역사에 전율을 느낀다.
만약 근현대 중국사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 책을 읽는 게 어떤 역사책보다 더 흥미진진하면서 손쉽게 중국사에 접근할 수 있을 거라고 소개해 주고 싶다.
개인적으로 가장 매력적인 인물은 차이어(蔡鍔)였다. “실패하면 죽음이 있을 뿐 망명은 하지 않겠다”는 말을 해서 위안차이의 황제가 되겠다는 계획을 좌절시켰던 사람. 역사책에선 한 줄로 지나간 많은 이런 인물들이 있었기에 현대 중국이 존재했음을 다시 깨닫게 된다.
그리고 나 자신에 대한 반성도 하게 된다. 대학을 졸업한 뒤에 일을 한다고 해서 배움에 대한 열의가 너무 없었던 것이 아닌가. 치열하게 오늘을 살았던 그들을 바라보면서 너무 안일하게 사는 게 아닌가 싶은 생각마저 들었다. 중국이라는 나라가 단순히 사람이 많은 나라가 아니라 사람이 많은 만큼 위대한 사람 역시 많이 나온 역시 대국이라는 생각마저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