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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이 우리를 삼키기 전에! - 청소년을 위한 ‘전쟁과 평화’ 이야기 생각하는 돌 2
게르트 슈나이더 지음, 이수영 옮김 / 돌베개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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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괴물이 우리를 삼키기 전에>는 돌베개에서 나온 ‘청소년을 위한 전쟁과 평화 이야기’다. 저자는 전쟁에 관한 책을 쓰기로 하고 어떤 식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갈지 고민했다. 전쟁의 역사는 쓰고 싶지 않았다. 그런 책은 많았다. 어느 해 어느 곳에서 어떤 전쟁이 발생했는가 보다는 전쟁이 일어난 원인과, 무엇보다 전쟁이 보통사람에게 미친 영향을 중심으로 서술하고 싶었다. 우리는 사실관계를 나열하거나 분석하는 것으로 지난 전쟁을 알 수도 있겠지만 이것으로 전쟁을 이해할 수는 없다. 전쟁의 원인을 분별할 수 있을 때, 또 그것이 원인과 거의 상관없는 보통 사람들의 삶을 어떤 식으로 흔들었는지를 상상할 수 있을 때, 비로소 겪어보지 않은 전쟁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야기는 200만 년 전 아프리카에서 물웅덩이를 놓고 일어난 다툼에서부터 시작한다. 최초의 무기는 돌과 몽둥이였다. 이것은 차츰 활과 화살, 창과 검, 화차와 투석기, 대포, 총, 전투기, 핵폭탄, 로켓과 미사일로 발전했다. 인류는 어떤 대의명분을 내세우곤 했지만 대게 정복, 권력경쟁, 자원, 식민주의, 헤게모니와 세계관, 맹목적인 신앙 때문에 싸웠다. 원인은 다양해보이지만 이기심과 불신으로 요약할 수 있다. 그리고 전쟁이 오랜 기간 지속되면, 전쟁 수행자들은 애초의 원인을 잊는다. 무엇을 위한 싸움인지도 모르는 채 목숨을 걸어야 하는 것, 상대방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도 파괴시키는 것이 보통사람들이 겪는 전쟁이다. 

 

책의 특별한 서술 방식은 전쟁에 대한 찬반토론과 4대에 걸쳐 전쟁에 참가하는 슐테 가족 이야기다. 특히 슐테 가족이 보여주는 참전 전의 애국심, 전쟁터에서 참담한 심정으로 가족에게 보내는 편지, 전쟁 후 겪는 트라우마와 후유증은 전쟁당사자와 독자의 심리적 거리를 좁힌다. 이것은 작가가 구성한 허구지만, 사실보다 더 진실한 이야기다.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전쟁이 일어나고 심지어 한국은 전쟁의 위협 속에 있으면서도 그것에 무감각하다. 전쟁을 몰라서가 아니다. 실시간 일어나는 사실을 스크린을 통해 편안하게 볼 수 있는 상황에서 그 참상을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8월 새로 나온 책 <괴물이 우리는 삼키기 전에>는 TV, 영화, 게임 등으로 전쟁 장면에 익숙해져 있지만, 전쟁을 이해하지 못하고 그것이 주는 폐해에 무감각한 청소년들에게 상당히 유익한 책이다. 무감각한 사람은 청소년만이 아니다. 어른들 또한 마찬가지다. 교과서처럼 딱딱하게 정보를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구어체와 이야기가 전개하는 책은 어렵지도 또 가볍지도 않다. 또 교과서보다 재밌게 세계사의 흐름을 이해할 수 있는 기회기도하다. 직접 전쟁을 경험하기 전에, 괴물이 우리를 삼키기 전에, 사실을 넘어 진실을 이해할 시간을 가지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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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개념정원 

 

인문학은 인간의 정신과 문화에 대한 학문이다. 자신을 대상으로 생각하는 능력은 인간과 동물을 구분한다. 수학을 못한다는 사람도 일상에서 셈을 하듯이 인문학에 문외한이라는 사람도 실은 인문학적인 사유를 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때 인문학은 위기를 맞았다. 신자유주의가 세계를 휩쓸었을 때, 그것이 제시하는 미래는 정글이었고, 위기에 처한 사람의 최고목표는 생존이었기 때문이다. 여전히 자본주의 질서에서 많은 이들의 미래는 밝지 않지만 사람들은 다시 세계와 자신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대중매체와 신간목록 등이 이를 방증한다. 하지만 관심의 증가와 별개로 많은 이들이 인문학에게 골치 아프다는 편견을 갖고 있는데, 그 원인은 개념에 있다.

     

  

인문학개념정원  

 

나는 고등학교 때 ‘개념원리’라는 학습서로 수학공부를 했고, 대학생 때는 ‘개념 없다’는 소리를 꽤나 들었다. 지금은 의무감으로 ‘컨셉(개념)’에 대해 생각한다. 개념은 항상 알 것 같으면서도 모호하고, 머릿속에 떠오르는 느낌을 언어로 표현하기란 어렵다. 그렇지만 포기할 수 없다. 수학의 개념을 모르면 문제를 풀 수 없고, 개념이 없으면 상식을 공유하지 못하며, 개념(컨셉)이 안 잡히면 과제는 산으로 간다. 인문학도 마찬가지다. 개념이 낯설면 어려울 수밖에 없다. 그런 의미에서 인문학개념정원을 읽는다는 것은 다른 책읽기를 위한 책읽기다. 금세 휘발되는 정보가 아니라 앞으로도 지속할 인문학 공부를 위한 개념잡기가 책의 존재의의라 생각되기 때문이다. 

   

   

인문학개념정원 

 

우리는 쾌락주의자라 배운 에피쿠로스는 자신의 집 정원에 학교를 세우고 자기 사상을 가르쳤다. 학교라고는 하지만 그가 추구했던 것은 우애를 나누는 일이었다. 그는 쾌락을 최고선으로 보았지만, 이것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쾌락과는 차원이 다르다. 동요하지 않는 평정한 마음상태다. 어쨌든 에피쿠로스는 자신의 정원에서 친구들과 마음의 평정을 나누었다. 그리고 서영채는 인문학개념정원에서 인문학의 매력을 나누려한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이 책의 형식은 인문학의 주요 개념들을 추리는 것이다. 그것은 물론 나 자신의 공부를 위한 것이기도 했다. 하지만 내심 내가 쓰고 싶었던 것은 인문학의 세계가 얼마나 매력적인지, 뼈대만 있는 사전이 아니라 원전의 문장들과 함께 노는 일이 얼마나 행복한지에 대한 것이었다. 

 

전작이 주로 평론이나 학술서임에도 글이 쉽고 재밌다. 좋은 책을 읽은 것에 더해, 호감 가는 저자의 발견이 기뻤던 독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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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작은 회사에 다닌다 - 그래서 혹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정래.전민진 지음 / 남해의봄날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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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말 출간된 김난도 교수의 <아프니까 청춘이다>가 꾸준히 베스트셀러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아프니까 청춘이다>는 청춘을 지나온 ‘멘토’가 불안한 미래와 외로운 청춘을 보내고 있는 젊은 세대에게 보내는 위로와 격려의 메시지다.

 

20대의 경제활동 참가율이 60%밖에 되지 않는다고 한다. 이 소식은 갑갑하지만 한편으로는 나를 덜 외롭게 만들었다. 나는 제대로 된 구직활동을 해보지 않았음에도 막연히 겁을 먹고 있었다. 뉴스에서는 실업률, 특히 청년 실업률에 대해 연신 문제 삼는데, 취업이라는 좁은 문을 통과하기에 내가 가진 능력은 너무나 보잘 것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공포는 일종의 괴담과 같다. 원하는 직업과 그 직업이 요구하는 구체적 능력을 알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나는 무엇이 두려웠던 걸까?

 

 

<그래서 혹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작은 회사에 다닌다>는 멘토가 멘티에게 전하는 위로 혹은 격려와는 대조된다. 이 책의 핵심독자는 나를 포함하는 20대 중후반과 30대 초반의 젊은이다. 우리 또래의 저자가 또래의 인터뷰이들의 이야기를 또래의 독자에게 소개한다. 각박한 세상에 대한 이야기는 하지 않는다. 저자를 통해 소개되는 13명의 친구들에게 세상은 그리 각박하지 않다. 좋은 배경을 가졌다거나 유난히 영특하다거나 특별하게 운이 좋아서가 아니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보기에 그것은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을 좋아하는 것과 같았다.

 

 

책은 여섯 개의 챕터로 구성된다.

01. 나는 자유롭고 싶다

02. 나는 출근하는 아티스트

03. 나는 회사와 함께 자란다

04. 나는 조금 다른 길은 간다

05. 나는 나눔의 힘을 믿는다

06. 나는 일이 즐겁다

 

많은 대학생들이 도서관에 앉아있는 이유가 대기업에 가기 위해서인 작금의 세태에서 작은 회사에 다닌다는 건 일종의 패배로 보일 수 있다. 그렇지만 그들은 작은 회사를 '선택'했다.

유자살롱(유유자적살롱: 히키코모리 청소년들이 음악을 통해 사회에 적응할 수 있게 도와주는 사회적 기업)의 고서희씨는 사범대를 졸업하고 임용고시를 ‘포기’했다고 표현했다. 하지만 지금 자신의 일을 즐기고 그곳에서 보람을 얻는 그녀역시 유자살롱을 선택한 것 아닐까?

 

<그래서 혹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작은 회사에 다닌다>는 낭만적인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책을 읽는 중, 저자와 인터뷰이들의 이야기를 듣는 중에도 불쑥불쑥 나의 이야기가 침범한다.

 ‘나도 그렇게 생각해’, ‘우와 너 멋있다’고 말해주고 싶은 욕망!

 

이 책과 열세명의 친구들을 같은 고민을 하는 많은 친구들에게 소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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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 모노레일
김중혁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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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칙과 속임수가 허용되는 게임. 모노는 문득 이런 게임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헬로, 모노레일'이라는 게임을 만들어낸다. 게임은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고 모노는 성공한 사업가가 된다. 모노의 친구 고우창과 고우창의 아버지 고갑수는 모노의 회사에서 일하는데, 어느 날 고갑수가 회사 돈 5억과 함께 사라진다. 소설은 그의 행방을 쫒으면서 전개된다.

고갑수는 '볼스 무브먼트'라는 종교에 심취해 있었다. 볼스 무브먼트는 우주자를 섬기며 볼(ball,球)을 숭배하는 종교인데, 현실의 실력자에 의해 타락되어가는 것에 대해 고갑수는 저항한다. 우여곡절 끝에 고갑수의 '순교'로 이야기는 끝이 난다.

 

간단한 줄거리였다.

'모두 다 그럴 거라고 생각하겠지만, 런던아이가 실제로 존재한다는 사실 외의 소설 속 모든 이야기는 허구다.'_김중혁

<미스터 모노레일>은 작가가 '놀았던' 흔적 같다.

 

소설 속 게임 '헬로, 모노레일'과 소설 <미스터 모노레일>은 공통점이 있다. 둘 다 유럽을 무대로 한다는 것과 어느 도시에서 어떤 도시로 어떻게 이동하게 될 지는 주사위가 던져지기 전까지 모른다는 것, 그리고 반칙과 속임수가 허용 된다는 것이 닮았다.

소설 속에서 주사위는 다양한 기능을 하는데, 행운의 상징이기도 하며 운명의 결정자이기도 하다. 게임의 캐릭터들은 주사위의 결과에 따라 움직이다. 소설 속 인물들은 징표를 따라 움직인다.

 

하지만 그 징표들이란 그 자체의 객관성보다는 인물들이 부여한 의미이다. 현실에서 많은 일들이 마치 어쩔 수 없는 일처럼 여겨지지만 사실은 자신이 그렇게 되게끔 받아들이기로 한것은 아닐까?

 

'노는 작가' 김중혁이 <미스터 모노레일>에서는 주사위를 가지고 놀았다. 소설을 쓰면서 작가가 얼마나 많이 주사위를 던졌을까 상상해 본다. 소설 속 캐릭터를 정할 때, 인물들이 가게 될 도시를 선정할 때, 그는 아마 많은 고민을 하기보다 반짝 하는 아이디어에, 상상력이라는 주사위에 의지하지 않았을까?

 

작가가 던지는 상상력이 이끄는 이야기의 말을 따라가다 보면 기발하다!고 느낀다. 약간의 재미도 있다. 그러나 소설의 전체적인 완성도는 조금 아쉽다. 소설의 시작인 '헬로, 모노레일'의 탄생과 결말인 고갑수의 죽음 사이의 개연성은 희박하다. 주사위 던지기라는 것이 애초에 계획하고 구상할 수 있는 것이 아님에서 비롯되는 한계일까 아니면 작가의 의도적 메시지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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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의 자리
아니 에르노 지음, 임호경 옮김 / 열린책들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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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은 부모님께 정식 교사가 되었음을 알리고 부모님은 아주 기뻐한다. 작은 동네에서 카페 겸 식료품점을 하고 계셨던 그녀의 아버지는 그로부터 두 달 후 돌아가신다. 아버지의 장례를 치른 후 첫 발령지를 기다리는 동안 그녀는 아버지와 그의 삶에 대해, 그리고 소녀 시절의 그녀와 그들 사이에 찾아온 그 ‘거리(距離)’에 대해 쓰고 싶어진다. 그녀는 아버지의 삶을 재료로 재밌거나 감동적인 소설을 쓰려하지 않았다. 다만 아버지의 삶에 나타난 객관적인 표징들을 따라감으로써 한때 ‘우리’였던 ‘그들’의 삶을 장식 없이 담백하게 써간다.

 

 

남자의 이야기

 

농사일을 하던 남자는 전쟁이 끝난 후 공장의 노동자가 된다. 그는 결혼을 했고 착실하게 돈을 모아 작은 식료품 가게를 열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먹고 살기'가 어려웠고 다시 공장 일을 해야 했다. 그는 반은 노동자, 반은 상인인 채로 자리를 잡아간다. 남자는 열심히 일했고 차츰 더 많은 것들을 소유할 수 있게 되었다. 그들은 양껏 먹을 수 있었고, 그들의 딸은 괜찮게 사는 집의 딸들만큼이나 인형이며 옷가지, 학용품 등을 가지고 있었다.

소유물들은 근면함의 대가이자 행복의 증거였지만 그들에게는 취향이랄게 없었다. 욕망을 위해 욕망했을 뿐이다. 동경하는 세계를 흉내 내는 것 외에 무엇을 원할줄 알았을까? 남자는 노동자 보다는 상인처럼 보이고 싶었다. 그것은 먹고사는 문제와는 별개였다.

 

그들 사이에서 언어에 관련된 것은 언쟁의 동기가 되었다고 딸은 기억한다. “엄마, 아빠는 항상 그렇게 엉터리로 얘기하면서, 어떻게 내가 선생님한테 혼나지 않길 바라는 거야!” 딸은 흐느꼈고 남자는 침울했다. 그의 식구들은 서로 쥐어짜는 어조 외에는 다른 대화법을 알지 못했다. 점잖아 보이고 싶어 했던 남자는 말을 아끼고 언어 사용에 조심스러웠지만 정중한 어조는 긴장 속에서만 가능했다. 딸이 교양 있는 언어를 자연스럽게 사용하게 됐을 때 그들 사이의 거리는 확보된 사실이 되어버렸을지 모른다.

 

남자는 딸의 학교 공부에 관심이 많았다. 딸이 자기에게 문제를 내는 것을 좋아했고, 자신도 철자법을 잘 알고 있다는 걸 증명하기 위해 받아쓰기 문제를 내보라고 시키기도 했다. 그러나 딸이 ‘시민사회’에 편입될수록 그들은 서로 낯설어져 간다. 남자는 더 이상 딸에게 자기 어린 시절의 이야기를 들려주지 못했고 딸 역시 더 이상 공부에 대해 얘기하지 않았다. 다만 남자는 딸이 공부에 대해 불평을 하거나 수업을 비판할 때면 화를 냈는데, 딸이 결국 성공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두려움을-어쩌면 그렇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늘 품고 있었다.

 

딸은 그가 자랑스러워하는 모습으로 성장했고 그가 소망하던 ‘예의 바른 사람’과 결혼했으며 그들의 세계를 떠났다. 그리고 그가 삶을 더 사랑하게 됐을 때 쯤 병이 찾아왔다.

 

 

행복과 소외 사이의 좁은 길

 

작가는 이제는 자신의 것이 아닌, 한 때 그녀가 속했던 세계를 회상하며 이렇게 적는다.

 

“이 글을 쓰고 있자니 왠지 좁은 길을 아슬아슬 걷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사람들이 천하다고 여기는 삶의 방식에 대한 명예 회복과 이런 작업에 수반되는 소외에 대한 고발 사이에 낀 좁은 길 말이다. 이러한 삶의 방식은 우리의 것이었고 심지어는 우리의 행복이기도 했지만 또한 우리의 조건을 둘러싼 굴욕적인 장벽들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간단히 말해서 행복인 동시에 소외이기 때문이다. 아니, 그보다는 이렇게 표현하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다. 이 모습의 이쪽에 닿았다, 저쪽에 닿았다 하며 흔들흔들 나아가는 느낌이라고 말이다.” (57p)

 

그녀는 아버지에게 더 이상 할 말이 없어졌을 때 이 글을 쓰기로 했다. 어떤 말로도 변경이 불가능한 박제된 과거가 되었기에, 그리고 이제 그녀는 완전히 그 세계 밖에 있기에 이토록 담담하게 아버지와 자신의 이야기를 담을 수 있지 않았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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