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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에 대하여 - 가오싱젠의 미학과 예술론
가오싱젠 지음, 박주은 옮김 / 돌베개 / 2013년 6월
평점 :
창피하지만 나는 가오싱젠을 몰랐다. 그의 소설을 읽은 것도 아니고 창작활동을 하는 것도 아닌 내가 <창작에 대하여>를 통해 그의 문학론을 만난 건 우연이다. 하지만 그냥 스치고 지나가 다시 볼일 없는 만남은 아닌 것 같다. 나는 그의 글로 말미암아 꽤 많은 생각을 한다.
의미와 메시지에 천착하는 경향이 있다. 작품을 볼 때 그 자체로 감상하기보다는 작가의 의도를 찾거나 작품의 사회적 의미를 억지스럽게 해석한다. 그리곤 메시지가 내 입맛에 맞느냐의 여부로 작품을 좋아하거나 싫어한다. 이것이 작가에게 폭력적이라고 생각하지만, 지성인인 작가의 사회적 책임을 운운하며 자신을 변명한다. 이 태도는 내가 20대 초반부터 지녔던 것으로, 당시에는 나름의 고민을 가지고 취했다. 그러나 어느 시점부터는 아무 고민 없이, 왜 그래야하는지 자신조차 설득하지 않은 채 생각하던 대로 생각하고 판단하던 대로 판단했다. 다른 생각을 접하지 않았기에 배척할 기회조차 없었다. 그러다가, <창작에 대하여> 30페이지에서 아찔한 문장과 마주쳤다.
“사실 혼잣말이야말로 문학의 시작입니다. 세상과의 소통은 그다음입니다.”
문학의 역할을 당위처럼 여기며 그 이유를 생각하지 않았기에, 저 문장은 뜻밖의 반격이었다. 가오싱젠은 말한다.
“정치적 올바름에 순응하는 문학은 시간이 흐르면 그냥 종이 쓰레기가 될 뿐입니다. 문학은 현실의 이해관계 너머에 있어야 합니다. 작가는 삶의 진실을 대면할 뿐 가치관 같은 것을 만들어낼 필요가 없습니다.”
나는 얼마나 정치적 올바름과 삶의 진실을 혼동하고 있나. 한때는 정치적 올바름이야말로 삶의 진실이며, 그것을 내가 살 이유로 삼겠다며 철없이 다짐했다. 살다보니 별 이유 없이 살고 있다. 사는 것 자체가 이유라는 쪽이 차라리 솔직하다. 이상은 쑥스러운 과거가 됐다. 세상을 향한 포부였던 내 정치적 올바름은 그저 개인적 가치관으로 변했고, 지금은 그마저도 지나간 유행처럼 느껴진다.
나는 지금, 그러면서 내가 삶의 진실까지 싸잡아 폐기처분하려 하진 않았는지 묻고 있다.
“문학은 사람들에게 알려져 있지 않은, 혹은 사람들이 발견하지 못한 어떤 실상을 발견하고 드러내는 데 그 가치가 있습니다.”
이 문장이 덩그러니 있었다면 나는 실상이란 것을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왜곡하고 곡해한 것이라 오해했을 거다. 하지만 가오싱젠이 발견하는 실상은 정치와는 무관한 삶 자체의 곤경이다.
“문학은 이런저런 주의의 속박에서 벗어나 인간 삶의 곤경으로 돌아왔지만, 삶의 곤경을 크게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아마도 이 곤경은 문학의 영원한 주제가 될 것입니다.”
정치나 경제, 역사와 무관하게 인간 삶이 처한 곤경이 있다. 이것은 처음부터 벗어나지 않도록 기획됐을 것이다. 벗어날 수 없으며, 벗어날 필요도 없고, 벗어나서도 안 되는, 우리 운명의 속성으로 포함된 어떤 곤경.
“역사라는 긴 강은 결코 진보하기 위해 흘러가지 않습니다. 우리는 우리 시대의 문학이 고대 그리스의 문학보다 더 진보했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인간 본성이 그때에 비해 한참 나아졌다고 말할 수도 없고요. 그때나 지금이나 인간 세상은 존재하고, 문학은 그 세계를 인식하고자 노력할 뿐입니다.”
가오싱젠의 문학이론이 단지 창작론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생각한다. 삶을 보는 관점이다. 인류는 진보하지 않는다. 나는 이 명제를 인정하면서 삶의 방향을 상실했다. 혹은 이것을 내 불안한 삶의 핑계로 삼았다. 지금 이 순간이 더 나은 다음을 위해 있는게 아닌데도 말이다. 이 순간의 진실을 발견하고 마주하는 용기를 가져야겠다.
그의 작품을 읽어보지도 않았지만, 가오싱젠의 창작은 세태소설을 쓰는 것보다 훨씬 더 괴로운 작업일거란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