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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대생은 바보가 되었는가 - 지적 망국론 + 현대 교양론
다치바나 다카시 지음, 이정환 옮김 / 청어람미디어 / 2002년 11월
평점 :
절판
바보가 무언지를 알기 위해 그 반대 개념을 상정해 보자. 바보의 안티는 스스로 공부하는 교양이다. 바보의 특징은 편협함으로 구체화된다. 교양은 편협하지 않음이다. 지금의 동경대생은 '스스로' 공부 할 줄 모른다. 저자의 주장을 거칠게 요약하면 바보가 되어 버린 동경대생에게 스스로 학습법을 가르치자는 것이다. 주전자가 물을 부어주기를 기다리는 찻잔을 바보의 비유로 삼는다. 동경대생이 바보가 아니라 바보가 되었다는 점에 주의하라. 도쿄대생이 바보가 된 건 그들의 탓이 아니라 멍청한 문부성 때문이다.
교육의 목표는 기존 제도의 추종자가 아니라 비판자를 만드는 것이다 (콩도르세). 그러나 일본은 국가를 위한 교육, 즉 관학을 목적으로 삼았다. '나폴레옹'을 술 이름으로만 아는 사람을 만들어 낼 수 밖에 없는 구조이다. 그 다크 사이드에 문부성의 중앙집권적인 교육이 있다. 이는 제도피로에 빠진 일본의 또 다른 상징일수도 있다. 구조적으로 문제를 풀어야 한다. 저자가 내놓는 대안은 문(文)이(理)과 구분 폐지, 입시에서 선택과목 폐지, 추첨으로 동경대생 뽑기 이런 거다. 어이가 없겠지만 그 공통점은 제너럴의 강조다.
주지하다시피 '제너럴'이란 다양하게 많이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의 교육체계는 데카르트식의 기계론적 사고에 기반을 두고 있다. 이는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아주 부분적인 역할에만 충실하라는 사회적 요구다. 인간으로서는 상당히 불쾌하게 느껴야 할 대목이다. 저자의 방대한 사고 체계는 교양에서 나온다. 교양은 컬티베이팅(cultivating)의 번역으로 경작된 농작물과 같은 것이다. 플랜테이션(단일경작)으로 피폐화된 식민지 농업을 보라. 농업에도 다양성이 필요하듯 앎에도 다양성이 필요하다. 인간으로서 모든 가능성을 실현하기 위해서 스스로 생각하고 스스로 학습하라. 좋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