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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과 구름과 비 1부 1
이병주 지음 / 들녘 / 2003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역사를 대체하였다는 말은 사실과 다르다. 역사를 대체하는 소설은 이야기의 발단부터 대체되어야 한다. 이문열의 <우리가 행복해지기까지>가 그렇고 복거일의 <비명을 찾아서>가 그렇다. 그러나 이병주의 <바람과 구름과 비>는 대체가 되지 않는다. 그냥 역사소설로 읽힌다. 글의 대강은 역사를 그대로 따라간다.
후반부로 갈수록 역사기록에 치중한다. 출발은 소설로 산뜻하였으나 그 도착점은 애매하다. 최천중과 수 십년간 규합된 그의 동지들의 삶은 무엇을 보이기 위함인가. 당시 서민들? 배고픔이 없다. 당시의 재야정치세력? 정부의 핍박이 보이지 않는다. 저자의 의도는 모르겠으나 열 권을 두고 보면 등장인물이 너무 많다. 물론 저자가 방대한 체계를 세웠지만 완성할 수 없었다는 변명을 인정하면 10권 이후부터가 화려한 상상력이 전개될 것이다.
원정대(동지)를 규합하고 드디어 반지의 전쟁을 시작하려는 영화 반지의 제왕 1부는 2부, 3부가 버티고 있으니까 1부의 지루함이 인정되지만 이 소설은 동지규합이 10할이 되어 버렸다. 고로 미완성의 작품이다. 단순히 당시의 참상을 기록할 목적이었다면 역사의 변두리에서 방관하는 사람의 인생 또는 당시 역사를 상징화 시킬 수 있는 가족사를 선택하였을 것이다. 저자의 호기는 필시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신문에 연재를 해 갈수록 그 의기가 달라졌을 것이다. 고금을 막론하고 전개되는 방대한 지식과 한시는 저자가 역량있는 작가였다는 반증이다. 시도하고 실패한 혁명같이 쓰다가 그만둔 소설도 그만큼의 의의는 만들어 내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