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다한 주제에 대해 여러 잡지에다 15편정도 에세이를 쓴 다음 그걸 다시 책으로 묶는다. 일관된 어떤 주제를 위해서라면야 인정해야한다. 그러나 대부분 불순한 의도다. 에디터는 대중을 위해 쉽게 읽히도록 조작하기도 한다. 이 책은 그렇게 구성되었다. 그러나 쉽게 단언하지는 못한다.러셀의 서문은 말하고 있다 '잘못된 방향이라도 정력적 행동이라면 그 자체가 존경할만한 하다는 믿음 때문에 세계가 고통을 받는다' 나찌와 니체, 칼라일, 피히테(얘가 시조다)를 상대로 말하는 것이다. 삶에는 의지보다는 '목적'이 훨씬 중요하다는 말이다. 우리는 목적에 대해서는 말하지도 교육하지 않고 도구만 이야기하고 교육한다. 그래서 충돌한다. 부산서 서울 가는 가장 빠른 길을 찾는게(효율성; Efficient) 중요한게 아니라 내가 서울로 가는지 평양으로 가는지 (효과성; Effective)가 훨씬 중요하다는 이야기다러셀은 러셀이다. 경탄스런 시각이 도처에 깔려 있다 이 책이 나온게 1920년대이다. 케인즈가 절약의 역설을 이야기했을 것이다. 시간의 우선을 따질수는 없으나 러셀도 소비는 악이 아니라고 말한다.(러셀은 생산이 반드시 선(미덕)일 수가 없다고 주장) 4시간만 일하면 충분하다. 당시 기술로도 가능하다는 말이다. 노자의 탁견처럼 불필요한게 많아지면 세상이 혼란스러워진다. 아무일 없이 싸움만 하거나, 남들 일 시키는 게 일의 전부인 이런 사람들 때문에 세상이 혼란스러운 것이다. 러셀도 똑같다. 필요한 것만 생산하는데 집중하고 나머지는 여가(이게 인생이다)를 철저히 지키자는 것이다 사람들이 실제로 하는 취미 대신에 보기만 한는 취미(영화든 연극이든 스포츠든)를 가진것도 일에 정력을 다 빼앗겼기 때문이다. 노동없이 사는 사람들이 노동의 잉여물을 탐내지만 않는다면 1시간만 일해도 된다. 굶어죽는 농민은 있어도 굶어죽는 군인이나 정치인은 없었다 조금 일하고 자기가 원하는 여유를 즐기는 거다. 물론 여유에는 교양이라는 이름의 훈육이 필요하다.책을 읽으며 줄곳 느낀 것은 잡독의 폐해이다. 탁월한 지성의 식견에 신경쓰기에도 인생은 너무 짧다는 거다. '그래 좋아, 그런일이 얼어날지도 모르지. 하지만 그게 어쨌다는 거지' 죽음을 극복하는 러셀의 전략이다 (춤추는 죽음에 의하면 서양인의 죽음 극복 전략은 기독교의 영생론과 낭만주의다.)어쨌든 살아가는게 가장 중요한 문제이다 무용한 지식과 유용한 지식, 현대판 마이더스, 이성의 몰락편은 아주 읽을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