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영화거장전

- 잉마르 베리만의 자장 아래서 -
  

일시 : 2011.8.11(목) ~ 8.17(수)
장소 : 아트하우스 모모  

 

"잉마르 베리만을 찾아서: 스칸디나비아 시네마 배낭여행"의 세번째 행사.
현재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세계 영화계의 대표적인 감독들 가운데
평소 잉마르 베리만으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밝혀온 이들의 작품을 뒤돌아본다.  

 

 

  

 

 

- 상영작 -  

  

  

잉마르 베리만은 여러 종류의 감정적 결핍증을 앓고 있는 감독이며, 그것이 고스란히 자신의 영화들을 통해 드러나고 있다. 잉마르 베리만이 6부작 TV 영화로 연출한 <결혼풍경>에서 영감을 얻은 <5x2>에서 프랑수아 오종은 그러한 감정적 결핍 가운데 부모/자식 또는 여타의 관계가 아니라 부부 관계에 있어서 결핍된, 혹은 불완전한 사랑을 특화하여 묘사하고 있다. 두 사람의 사랑, 결혼, 출산, 불륜, 이혼 등 다섯 가지 에피소드를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며 이야기하는 이 영화의 키워드는 ‘완결(혹은 완성)되지 않는(혹은 될 수 없는) 사랑’, 또는 ‘사랑의 불완전함’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오종의 영화는 시간을 역으로 따라가며 완벽한 '사랑'의 형태가 변화하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고, 베리만의 영화들에서도 마찬가지로 완전무결한 사랑은 절대 등장하지 않는다.

  

우디 앨런은 자타가 공인하는 잉마르 베리만의 후계자이자 <사랑과 죽음> <인테리어> <또다른 여인> 등 많은 작품에서 베리만의 영향력을 드러냈다. 베리만 타계 이후 우디 앨런이 ‘뉴욕타임스’에 기고한 글의 제목은 ‘심오한 질문을 던진 인간(The Man Who Asked Hard Questions)'였으며, 이는 잉마르 베리만 멀티미디어 설치전의 제목이 되었다. <매치 포인트>는 우디 앨런의 최근작 가운데서 베리만과 가장 밀접한 교집합을 이루는 영화다. 신분상승의 욕구로 가득찬 런던의 테니스 강사 크리스는 부유한 집안의 아들 톰과 만나고 그의 여동생 클로에와 결혼하면서 승승장구한다. 그러나 그는 섹시하고 매혹적이면서도 자신과 마찬가지로 결핍과 콤플렉스로 가득한 미국 출신의 배우 지망생 노라를 만나 불륜을 저지른다. 현실의 굴레에서 탈피하고자 하는 열망, 도덕과 통념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육체의 욕망, 범죄와 범죄자, 기만과 위선, 은폐와 무사안일 등 복잡한 테마들이 어우러져 있는 <매치포인트>는 잉마르 베리만의 영화 세계와 교묘히 중첩되면서도 색다른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우디 앨런은 그들이 고통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 신분과 출신적 배경, 이들을 둘러싼 인물관계 등을 결합해 이들이 단순한 ‘요부’나 ‘희생양’이 아니라 삶 속에서 자신들이 욕망하는 바를 추구해 나가는 적극적인 인물로 묘사한다.

  

베리만의 영화에선 가장 가깝다고 생각되는 가족이 소통의 부재로 갈등이 심화되는 구조가 자주 그려진다. 가깝기 때문에 오히려 소통하려 하지 않고, 자신의 기준에서 모든 것을 생각하기 때문에 갈등과 오해는 점점 커져가는 것 아닐까? 장만옥의 칸영화제 여우주연상 수상작 <클린>은 추락한 록가수의 여자친구이자 가수가 되고 싶어 하는 한 여성이 마약 경력 때문에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아들을 되찾고 평범한 삶을 살고자 하는 이야기다. 베리만의 영화가 가족의 소통 부족을 그려냈던 것과 마찬가지로, 이 여화에서는 아빠의 죽음에 관련된 오해로 아들이 오랜 기간 떨어져있던 엄마를 원망하게 된다. 하지만 결국 모자의 만남이 이루어지고, 대화를 통해 오해가 풀리며 서로의 진심이 전달된다. 프랑스 영화잡지 ‘카이에 뒤 시네마’의 평론가였던 올리비에 아사야스는 1990년 잉마르 베리만 다큐멘터리를 연출한 스티그 비요르크만 감독과 함께 <베리만과의 대화>라는 책을 출간했다. 아사야스는 “프랑스 영화의 모든 곳에 베리만의 유산이 남아 있다”고 말할 정도로 열렬한 베리만의 추종자였다.

 

라스 폰 트리에가 추진한 덴마크의 영화운동 ‘도그마 95’의 원칙에 따라 만들어진 세 번째 작품으로, 베를린영화제 심사위원 특별상 수상작. 코펜하겐에서 안정된 미래가 보장된 한 청년이 고향 시골 농장으로 돌아가 정신지체 장애아인 형을 돌보면서 벌어지는 이야기. 베리만이 일생을 걸쳐 영화에 담아낸 ‘여성’의 존재는 베리만의 영화적 전통을 이어받은 스웨덴의 감독 소렌 카우 야콥슨 또한 영화 <미후네>에서 성적 매력을 무기로 살아가는 콜걸 출신의 여성을 등장시켰다. 소렌 카우 야콥슨은 베리만의 유산을 이어받되, 욕망의 동요 앞에 무기력하고 성적 기능에 복종할 것을 강요받는 여성들에서 나아가 보다 적극적인 이미지로 그려려내고 있다. 칼 드레이어와 잉마르 베리만의 유산이 도그마 95를 거치면서 어떻게 현대화되었는지, 북유럽 영화의 전통을 살펴볼 수 있는 작품이다.

 

로버트 알트만은 그의 작품 세계가 많은 잉마르 베리만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언급해 왔다. <내쉬빌>의 한 장면에서 <산딸기>를 염두에 두고 베리만의 이름을 극중 인물의 대사를 통해 직접 언급했으며, 베리만의 여성 드라마에 착안해 <세 여인>을 연출했다. 이런 로버트 알트만 감독의 유작이 되어버린 작품이 <프레리 홈 컴패니언>이다. 이 작품은 실제 현재도 미국에서 인기리에 방송 중인 <프레리 홈 컴패니언>이라는 라디오 쇼의 가상의 마지막 생방송 현장을 보여주면서 사라져 가는 것들의 아쉬움을 슬프게 말하진 않는다. 알트만 감독의 유작이 되어 버린 이 작품에서 감독은 ‘사라짐’, ‘죽음’ 이라는 요소를 무겁지 않고 덤덤하게 풀어가고 있다.

  

영화는 1970년대 기독교주의가 만연한 스코틀랜드의 한 마을, 베스와 얀의 결혼식으로 시작한다. 신혼의 달콤함도 잠시, 일터에 나간 얀은 전신마비가 되어 돌아온다. 삶이 흔들리는 순간마다 신과 소통하며 자신의 행동을 검열하고 다그치는 베스는 얀을 여전히 사랑하고 있음을 증명하기 위해 견디긴 힘든 희생도 마다하지 않는다. 자신의 희생에 대한 대가가 그를 점점 살아나게 한다고 믿는 베스는 점점 자기파멸에 이르게 된다. 감독 라스 폰 트리에는 항상 잉마르 베리만으로부터 가족적 연대감을 느꼈다고 말했었는데, 영화의 몇몇 장면들과 베스의 내면적 갈등 구조는 베리만 영화의 그것들과 교묘하게 닮아있다.

  

베르톨루치의 1970년작 <거미의 계략>은 보르헤스의 단편 소설 ‘영웅과 배신자에 관한 논고’을 원작으로 한 영화이다. 영화는 반 파시즘의 영웅인 아토스 마냐니의 아들인 주인공이 이제 막 도착하는 열차에서 내리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그는 이 조용한 마을에 아버지의 정부인 드라이파 부인의 부름을 받고 암살당한 아버지의 죽음의 진실을 밝히고자 왔다. 젊은이가 없는 마을은 종종 정지된 그림처럼 보여 지고 그 속에서 주인공은 아버지의 죽음에 숨겨진 진실에 다가간다. 영화는 과거 회상장면에서도 현시점의 배우들이 그대로 등장하는데 주인공은 젊은 시절 아버지로 등장한다. 청년이 없는 마을 타라에서 유일한 청년은 위대한 영웅 마냐니와 그의 아들이다. 그 유일한 청년인 아버지와 아들은 결국 꼭 닮은 선택을 한다. 그리고 그 선택에 이르는 과정에서의 고민들은 보르헤스의 작품에서 보다 나아간다. 문학에서만 가능한 고민들을 영화 안에 끌어온 베리만을 보면서 자란 베르톨루치는 문학작품을 바탕으로 그 보다 더 나아간 심오한 질문들을 제기하고 있다. 이제는 우리가 그의 작품을 보면서 더 나아간 질문을 제기해야 할 때이다.

  

이안감독은 연이은 대작영화 연출로 받은 스트레스를 <브로크백 마운틴>을 통해서 해소했다. 영화는 감독의 취향과 의지대로 만드는 과정을 통해서 스스로에겐 치유가 된 것이다. 잉마르 베리만은 처음으로 흥행과 상관없이 만들고 싶은 대로 만든 영화로 <페르소나>를 말했다. 베리만에게 이 영화를 만드는 과정이 곧 치유의 과정이 되었다. 베리만이 살았던 포뢰 섬의 집에 마지막으로 공식 방문한 후배 영화감독인 이안은 베리만에게서 영화적 사유에 대한 영향을 받았음을 공공연히 밝혔다. 두 감독에게 치유가 된 영화들은 전혀 다른 두 사람의 관계 속에서 인생과 사랑에 대해 말한다. 한 가지 덧붙인다면 <페르소나>는 1966년 작품으로 동시대가 배경이고 <브로크백 마운틴>의 배경은 1963년이다. 요즘 유행하는 평행이론에 기댄다면 놀랍게도 두 감독은 같은 시대 배경의 영화를 만들면서 치유의 과정을 겪었다. 두 작품을 다시 본다면 관객은 더 많은 평행이론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베리만의 삶과 영화에서 빼놓을 수 없는 가장 중요한 키워드 중 하나는 바로 여성일 것이다. 6명의 여자와 결혼했으며 평생 동안 어머니에게 집착한 그는 자신의 영화에 등장하는 여성 캐릭터들에게 끊임없이 어머니의 이미지를 투영했다. 스페인의 감독 페드로 알모도바르와 잉마르 베리만의 공통점은 바로 '어머니'라는 주제에서 시작한다. 베리만이 그의 영화를 통해 여성에 대해 폭넓게 다루었다면 알모도바르의 영화는 좀 더 직설적으로 어머니라는 존재에 집중한다. 알모도바르의 영화 속 여성들은 <내 어머니의 모든 것>(1999)의 마누엘라, <귀향>(2006)의 라이문다, <브로큰 임브레이스>(2009)의 주디트 등 강인한 어머니의 모습을 보여왔다. 가장 최근작인 <브로큰 임브레이스>는 알모도바르의 뮤즈 페넬로페 크루즈가 주연을 맡은 영화로 시력을 잃은 한 남자가 과거 영화감독이었던 시절 이루지 못한 사랑과 불운한 사건을 이야기하는 내용이다.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이야기가 전개되는 이 영화에 대해 알모도바르는 언어의 활용과 클로즈업 촬영에 있어서 베리만의 영향력을 언급한 바 있다. "<화니와 알렉산더>(1982)"에서 거의 10분에 달하면서도 전혀 지루하지 않은 클로즈업을 기억한다. 내가 익스트림 클로즈업을 사용할 때 나는 항상 베리만을 생각한다." 또 화면을 가득 채우는 페넬로페 크루즈의 아름다운 모습은 마치 <페르소나>(1966)에서 비비 안데르손과 리브 울만의 클로즈업을 연상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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