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네트워크>와 <12명의 노한 사람들> 등을 연출했으며 영화계의 '시대의 양심'이라 불리던 영화감독 시드니 루멧이 2011년 4월 9일 림프종으로 타계했다. 향년 87세.

시드니 루멧은 1924년 미국으로 이주한 폴란드 유대인 집안에서 태어나 뉴욕에서 성장했다. 연극배우이던 부모의 영향으로 네 살부터 아역 연기자로 나서기도 했으며, 제2차 세계대전 중 인도와 버마에서 레이더 수리병으로 근무한 뒤 뉴욕으로 돌아온 루멧은 친구인 율 브린너의 소개로 CBS TV의 드라마 조연출자로 발탁됐다.

그의 영화감독 데뷔작인 <12명의 노한 사람들(12 Angry Men)>은 그가  TV 연출자로 활약하던 시절 찍은 법정 드라마를 직접 스크린으로 옮긴 것으로, 명배우 헨리 폰다가 주인공을 맡아 19일만에 완성한 작품이다. 12명의 배심원단 가운데 11명이 유죄로 의심한 소년 피의자를 두고 나머지 1명이 끈질지게 무죄를 설득해나가는 과정을 그리며 배심원 제도의 맹점을 통렬히 비판한 이 작품으로 시드니 루멧은 베를린 영화제에서 그랑프리 금곰상을 수상하고 아카데미 감독상 후보에 올랐다.

그는 <에쿠우스> <밤으로의 긴 여로> 등 연극의 영상화에 관심을 쏟는 한편 사회적 문제를 다루는 데에도 심혈을 기울였다. <페일 세이프>에서는 사고로 발생한 핵전쟁을, <형사 서피코>에서는 경찰의 부패를, <뜨거운 오후>에서는 동성애 문제를 다루었으며 청춘의 아이콘 리버 피닉스가 출연했던 <허공에의 질주>에서는 반전운동을 하며 도망 중인 급진주의자들의 삶을 보여준다. 방송산업을 비판적인 시선으로 바라본 <네트워크 (1976)>는  시드니 루멧의 대표작으로 꼽히며, 아카데미 10개 부문 후보에 올라 4개 부문(남우주연, 여우주연, 여우조연, 각본상)을 수상했다. 하지만 정작 루멧은 아카데미 감독상 후보에 4차례나 올랐음에도 불구하고 한 번도 수상하지는 못하다가 2005년에 공로상을 받았다.

세계적 거장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이 “그분께 비하면 나는 아직 애송이다”라고 말하며 무한한 존경을 나타냈던 시드니 루멧 감독. 뉴욕타임스는 그의 부고 기사에서 “루멧 감독은 사회적 이슈를 자신의 정신적 자양분으로 흐르게 했으며, 그의 걸작 영화는 편견, 부패, 배신의 결과를 검증했을 뿐 아니라 용기있는 개인의 행동을 찬양했다”고 평했다. 

 


 

 

* 대표작 소개 

 12명의 노한 사람들 (12 Angry Men, 1957)
 감독 : 시드니 루멧
 주연 : 헨리 폰다, 리 J. 콥, 에드 비글리 등

 - 제7회 베를린국제영화제 (1957)  금곰상
 - 제10회 로카르노 영화제 (1957)  심사위원 특별상

베를린영화제 금곰상을 수상한 시드니 루멧 감독의 첫 데뷔작. 아버지를 죽인 혐의로 기소된 라틴계 소년에 대한 유죄 평결 여부를 놓고 논쟁하는 12명의 배심원들의 팽팽한 의견 대립과 무죄를 추론해 가는 과정을 논리정연하게 그린 법정 영화. 배심원 제도의 맹점을 통렬히 비판한 수작.

 형사 서피코 (Serpico, 1973)
 감독 : 시드니 루멧
 주연 : 알 파치노

뉴욕 경찰에 실제로 근무했던 위장 침투 전문 형사 프랭크 서피코(Frank Serpico)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피터 마스의 원작을 영화화한 작품. 거친 임무를 마다하지 않으면서 곧게 자신의 본분을 다하는 어느 형사의 이야기를, 지나치게 영웅화하지 않으면서 현실감이 넘치게 그려낸 형사 영화의 수작이다. 앞서 소개했던 마틴 리트나 노만 쥬이슨 감독과 함께 사회 문제를 파헤치는 데에는 일가견이 있는 시드니 루멧 감독의 깔끔하고 절제된 연출이 일품이며, 알 파치노가 가장 뛰어난 연기를 보여준 작품들 중 하나이기도 하다.

 오리엔트 특급 살인 사건 (Murder on the Orient Express, 1974)
 감독 : 시드니 루멧
 주연 : 앨버트 피니, 로렌 바콜 등

여류 추리소설가 아가사 크리스티의 원작으로, 열차에서 일어나는 살인 사건을 해결하는 벨기에 탐정 포와로 역을 알버트 피니가 맡고 숀 코너리, 재클린 비셋 등 쟁쟁한 배우들이 대거 출연한 작품. 알버트 피니가 아카데미상에 노미네이트되었고, 잉그리드 버그맨이 아카데미상을 수상했다.

 뜨거운 오후 (Dog Day Afternoon, 1975)
 감독 : 시드니 루멧
 주연 : 알 파치노

 - 제1회 LA 비평가 협회상 (1975)  감독상 / 작품상

대낮에 은행을 털로 들어간 2인조 범인과 이들을 포위한 경찰과의 숨가쁜 대립과 긴장감을 밀도있게 그린 작품. 1972년 뉴욕 브룩클린에서 일어난 실화를 바탕으로 한 범죄 스릴러물로, 시드니 루멧 영화에서처럼 실제로 매스컴을 타고 전국에 방송되었던 이 사건을 지켜보면서 영화로 만들 결심을 했다고 한다. 황당한 사건에 휴머니즘과 블랙 유머까지 겸비된 뛰어난 각본을 쓴 작가 프랭크 피어슨은 그해 아카데미 각본상을 수상했다.

 네트워크 (Network, 1976)
 감독 : 시드니 루멧
 주연 : 페이 더너웨이, 윌리엄 홀든, 피터 핀치, 로버트 듀발

 - 제34회 골든 글로브 시상식 (1977)  감독상
 - 제2회 LA 비평가 협회상 (1976)  감독상 / 작품상

시청률을 얻기 위해서라면 그 어떤 도덕적 규범도 희생하는 텔레비젼 산업의 부정과 폐해를 다룬 블랙 코미디. TV 방송국의 피도 눈물도 없는 시청률 전쟁을 그린 고발 드라마의 명작으로 1976년 아카데미 4개 부문(남우주연, 여우주연, 여우조연, 각본상)을 수상했다.

 

 에쿠우스 (Equus, 1977)
 감독 : 시드니 루멧
 주연 : 리처드 버튼, 피터 퍼스

국내에서도 무대에 올려져 최장기 공연 기록을 세울 만큼 히트했던 피터 셰퍼의 동명 희곡을 영화화한 작품. 말의 눈을 잔혹하게 찔러 죽인 소년과 그를 치료하는 정신과 의사를 통해서 현대 문명의 어두움을 비판한다.

 도시의 왕자 (Prince Of The City, 1981)
 감독 : 시드니 루멧
 주연 : 트리트 윌리엄스, 제리 오바치, 리처드 포론지

 - 제38회 베니스국제영화제 (1981)  파시네티 어워드 감독상
 - 제46회 뉴욕 비평가 협회상 (1981)  감독상

뉴욕의 마약 전담 형사로 활동했던 실제 인물 로버트 루치의 삶을 다룬 로버트 데일리의 책을 영화화. 영화사상 탁월한 성격 탐구를 보여준 것으로 평가받는다. 단독 수사를 포함한 모든 권한을 부여받아 '도시의 제왕'이라고 불리는 뉴욕 시경 특수부 마약과의 형사인 주인공은 경찰 내부의 불미스러운 관행에 휘말려들며 갈등의 기로에 서게 되는데...

 심판 (The Verdict, 1982)
 감독 : 시드니 루멧
 주연 : 폴 뉴먼, 잭 워든

폴 뉴먼 주연의 대표적인 법정 영화 중 하나. 거의 무채색으로 처리된 화면을 통해 은유적으로 보여주는 세상의 황폐함과 정의의 부재 등의 메시지 전달이 뛰어난 연출력을 엿보게 한다. 연기대결 또한 압권. 제임스 메이슨과 폴 뉴먼의 불꽃 튀는 열연은 이 영화를 더욱 훌륭하게 만들어 주고 있다.

 허공에의 질주 (Running on Empty, 1988)
 감독 : 시드니 루멧
 주연 : 리버 피닉스, 크리스틴 라티

항상 사회문제나 인간성의 깊은 면을 예리하게 해부하는 수작들을 발표해 온 숨은 거장 시드니 루멧 감독이, 60년대 격렬한 반전 학생 운동의 선두에 섰던 부모와 쫓겨다니는 한 가족의 뜨거운 사랑과 어쩔 수 없는 갈등, 미래와 자유에 관해 진솔하게 펼친 뛰어난 드라마. 아카데미 남우조연상 후보에까지 올랐던 18살 시절의 리버 피닉스를 비롯해서 부모 역의 허쉬와 라티, 그의 동생역들, 연인 플림턴 등 모든 출연진의 뛰어난 연기의 조화가, 여류 작가(내오미 포너)에 의해 쓰여진 섬세하기 그지없는 각본과 잘 어우러졌다.

 악마가 너의 죽음을 알기 전에 (Before the Devil Knows You're Dead, 2007)
 감독 : 시드니 루멧
 주연 : 필립 세이무어 호프만, 에단 호크

시드니 루멧 감독의 마지막 작품으로 쫓기는 남자의 초조함과 절망감을 실감나게 묘사하면서 1990년대의 부진을 딛고 호평을 얻었다. 마약 중독에 분식회계로 돈이 궁한 앤디. 그의 동생 행크는 자녀 양육비조차 제대로 대지 못해 더 심각한 상태다. 그 와중에 회계 감사에 압박을 느낀 앤디는 행크에게 부모님의 보석 가게를 털자고 제안을 하고, 역시 돈이 필요한 행크는 망설임 끝에 동의를 한다. 계획 실행 당일. 소심한 행크는 과격한 친구 바비를 끌어 들이게 되고, 모든 비극은 거기서부터 출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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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11-04-11 19: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좋아하는 감독 하나가 또 세상을 떴군요. 명복을 빕니다. 암튼 이 감독 영화 버릴게 하나도 없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