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수에 찬 눈빛과 수려한 외모 그리고 영혼을 울리는 진실된 연기로 홍콩을 넘어 아시아 전체를 사로잡은 배우 장국영. 그런 그가 2003년 4월 1일 만우절 거짓말처럼 우리 곁을 떠난 지 벌써 8년째가 되었다.

<영웅본색(1986)>과 <천녀유혼(1987)>으로 스타덤에 오르며 한국에서도 수많은 팬을 모았던 장국영은 이후 수많은 영화에 출연하면서 단순히 미소년같은 아름다운 외모만이 아닌 탁월한 배우로서의 재능을 인정받았다. 연기 뿐만 아니라 노래에도 출중한 재능을 지녔던 그는 1989년 은퇴 고별 공연을 할 때까지 알란 탐과 쌍벽을 이루는 가수이기도 했다. (사실 그는 배우보다 가수로 먼저 데뷔했다.) 한국에서는 주로 <영웅본색2>의 주제가 "당년정(當年情)"처럼 그가 직접 부른 영화의 주제곡들이 보다 널리 알려져 사랑받고 있다.

하지만 최고의 스타로 그의 삶이 화려하고 아름다워 보였을지라도 사실 그의 내면은 외롭고 고독했다. 그는 '강인한 척 하면서도 여리고, 마음 가득 차오른 사랑을 드러내지 못 영화 <아비정전>의 주인공 아비가 자신과 가장 많이 닮았다'고 말하기도 했다. 누구보다 섬세한 감수성을 지녔으며 그만큼 영화에 무섭도록 몰입하는 그는 열정적이고 철저한 예술인이었던 한편으로 한 개인으로서는 행복하지 못했는지도 모른다.

마치 그가 연기한 <패왕별희>의 데이처럼 예술과 사랑 속에 파란만장한 삶을 살아온 장국영. <아비정전>에서의 대사에 나오는 '발 없는 새'처럼 그는 죽음을 통해 안식을 찾아갔지만, 세계 각국의 팬들은 지금도 여전히 그를 기억하고 그리워하고 있다. 트위터와 각종 블로그, 인터넷 커뮤니티 등에는 그를 추억하는 이들의 발걸음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으며, 국내 장국영 팬클럽 ‘장국영 사랑’은 2003년부터 매년 4월 1일  추모 영상회를 개최하고 있다.  

 

"단순한 연예인이 아닌, 한 시대를 풍미한 문화의 아이콘이자
영원한 '꺼거(장국영의 애칭)'로 사람들의 마음에 각인되어 있을 장국영을 그리며,
그의 8주기를 추모합니다."
  

  

 

 

장국영 (1956.9.12~2003.4.1)

장국영은 홍콩의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났지만 부모님의 이혼 등으로 행복한 유년시절을 보내지는 못했다. 아버지의 바램에 따라 영국으로 유학을 갔다가 귀국한 장국영은 1976년 친구가 그의 이름을 적어내어 ATV 주최 아시아 뮤직 콘테스트에 참가해 2등상을 받으면서 연예계에 발을 들이게 된다. TV에서 인기를 얻어 1978년 <홍루춘상춘>으로 영화계에 입문. 작은 역들을 맡다가 1986년 오우삼 감독의 <영웅본색>으로 주목받으며, 이후 오우삼, 첸 카이거, 왕가위 등 중국과 홍콩을 대표하는 감독들의 영화에 출연하면서 홍콩을 대표하는 영화배우로 발돋움 했다.

 

 

  * 대표작

영웅본색 (英雄本色, 1986)… 아걸 역
감독: 오우삼
주연: 주윤발, 적룡, 장국영

피비린내 나는 암흑 세계를 사나이들의 우정과 의리를 감동적으로 펼친 오우삼의 대표작. 새로운 홍콩 느와르를 탄생시켰으며, 주윤발과 장국영을 스타로 올려놓았고, 이후 총격전으로 대표되는 홍콩 액션물들의 수많은 아류작을 만들었다. 장국영은 조직에 있는 형 때문에 자신의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생각에, 정의로운 경찰이 되고자 하는 마음을 먹고 누구보다도 우애가 좋던 형과 갈등관계에 놓이는 동생 역할로 풋풋한 매력을 발산한다.

영웅본색2 (英雄本色 II, 1988)
감독: 오우삼
주연: 석천, 주윤발, 적룡, 장국영

전편의 흥행에 힘입어 나온 속편으로, 전편에 버금가는 명장면들을 탄생시키며 역시 흥행에 성공했다. 자신의 형제 친구 혹은 소중한 사람들에 대한 믿음, 신의를 지키기 위해서 어떤 고난이나 굴욕도 참을 수 있었던 사나이들의 의지와 용기, 그것이 죽음이라고 할지라도 웃으며 뛰어들 수 있었던 우정과 믿음을 강조하며 소위 ‘남자들의 로망'의 대명사격인 영화. 아이를 낳은 아내와 통화하면서 죽어가는 장국영의 전화박스 씬은 주윤발의 성냥개비를 물고 쌍권총을 난사하는 씬과 함께 홍콩 영화사에 기록될만한 명장면이었으며, 장국영이 부른 주제가 '당년정' 역시 함께 널리 사랑받고 있다.

천녀유혼 (倩女幽魂, 1987)… 영채신 역
감독: 정소동
주연: 왕조현, 장국영

중국 청조 때의 괴담집 ‘요재지이(聊齋志異)’에 실린 ‘섭소천’편을 바탕으로, 세금수금원과 아름다운 귀신과의 사랑을 그린 SFX 영화. 흥행에 큰 성공을 거두면서 속편과 3편이 이어졌으며, 1997년엔 서극 감독이 애니메이션 작품으로 제작하기도 했다. 중국 문화의 신비함이 전편에 배어나며, 주연을 맡은 청순하고도 섹슈얼한 아름다움을 지닌 신예 왕조현과 미소년같은 장국영 모두 이 영화로 일약 주목을 받으며 스타덤에 올랐다. 국내에서도 다시 보고 싶은 장국영 영화로 <천녀유혼>이 2년 연속 1위를 차지할 정도로 왕조현 뿐만 아니라 장국영의 팬에게도 잊을 수 없는 작품.

아비정전 (阿飛正傳, 1990)… 아비 역
감독 : 왕가위
주연 : 장국영, 유덕화, 장만옥

- 제10회 홍콩금상장영화제 (1991)  남우주연상 수상

1960년에서 61년까지의 홍콩을 배경으로 정지한 1분의 시간 속에서 세 명의 남자와 두 명의 여자가, 그리고 또 한 명의 남자가 교류하는 엇갈린 사랑을 그렸다. 왕가위 매니아들 사이에서는 최고의 영화로 꼽히지만 너무나 서정적이고 지루한 구상으로 인해 흥행에는 참패한 영화. 하지만 발 없는 새처럼 정착하지 못하고 날아다닐 수 밖에 없는 '아비'를 연기한 장국영은 이 영화로 연기력을 인정받게 된다. 영화 팬들에게는 장국영이 맘보 춤을 추는 유명한 장면으로도 기억되는 영화이다.

패왕별희 (覇王別姬, 1993)… 데이 역
감독 : 첸카이거
배우 : 장국영, 장풍의, 공리

- 일본 영화 평론가협회 외국영화 최우수 남우주연상 수상

장예모와 함께 중국 5세대 감독의 선두주자로 불리는 첸 카이거는 중국의 문화혁명이란 역사와 그속에서 입은 상처를 두 경극배우의 인생과 사랑을 통해 드러낸다. 그는 20세기 초 격동의 중국의 역사, 세 남녀의 사랑과 갈등, 인간의 얄팍한 심리 등 다양한 코드를 잘 버무려 상업적이면서도 품격이 떨어지지 않는 '작품'을 완성해냈다. 제인 캠피온 감독의 <피아노>와 함께 제46회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공동 수상, 1994년 골든 글러브 외국영화상, 아카데미 외국영화-촬영상 노미네이트. 장국영은 어릴 때부터 여자 역할의 배우로 혹독한 훈련 속에 키워져, 언제나 단짝으로 붙어다닌 동성친구에게 우정 이상의 사랑을 품은 '데이'역을 섬세하고 절절하게 표현해냈다.

백발마녀전 (白髮魔女傳, 1993)… 탁일항 역
감독 : 우인태
주연 : 임청하, 장국영

- 제30회 대만금마장 (1993)  주제가상 수상

김용과 더불어 팬층이 두터운 인기작가 양우생의 무협소설 '백발마녀전'을 원작으로 하는, <천녀유혼>과 비슷한 환타지 무협 멜로물. 장국영은 그와 함께 홍콩 영화의 전성기 시절을 풍미한 여배우 임청하와 아름답고도 슬픈 사랑을 연기한다. 오해로 사랑하는 이에게 배신당했다는 참담한 마음에 머리가 하얗게 세어버린 '마녀'와 그런 그녀를 계속 기다리는 남자주인공의 애절한 사랑으로 국내에도 많은 팬들을 거느린 영화.

동사서독 (東邪西毒, 1994)… 구양봉 역
감독 : 왕가위
주연 : 장국영, 임청하, 양조위, 장만옥, 양가휘, 장학우

- 제1회 홍콩 영화 평론가협회 최우수 남우주연상 수상

김용의 <사조영웅문>을 토대로 왕가위는 주인공들의 나이를 60대로 설정하고 그들의 과거에 얽힌 기억으로서의 영화를 만들었다. 왕가위의 표현에 의하면 ‘어쩔 수 없는 숙명’에 관한 영화라고 하며, 무협이 인물들의 정서를 더욱 잘 설명해 내도록 하기 위해 각 인물마다 다른 원칙에 따라 무협장면들을 연출했다. <패왕별희>를 끝낸 장국영과 이 장르로 최고의 인기를 달리던 임청하, 장만옥, 양가휘, 장학우 등 화려한 배역진을 갖추었지만 완성되기까지 우여곡절 또한 많았던 영화. 영화가 나온 지 14년만인 2008년, 왕가위 감독은 스스로 임청하의 새로운 장면을 추가하고 후반부에 새로운 컷들을 삽입한 재편집 버전인 <동사서독 리덕스>를 선보였다.

야반가성 (夜半歌聲, 1995)… 송단평 역
감독 : 우인태
주연 : 장국영, 오천련

1930년대를 무대로 한 오페라 가수와 그의 연인과의 사랑이 사회적 가치관에 의해서 비극적으로 희생되는 내용으로, 중국판 '오페라의 유령'이라고 불리며 최근까지도 리메이크가 계속된 유명한 고전이다. 장국영은 유명한 오페라 가수였으나 부잣집 딸과 금지된 사랑을 나누다 결국 사랑도 잃고 추악한 몰골로 변해 폐허가 된 오페라관에 숨어 사는 송단편 역을 열연했다. 그는 극중에 쓰인 노래들을 직접 만들고 불러 연기력뿐만 아니라 그의 음악적인 역량까지 선보였다.

풍월 (風月, 1996)… 충량 역
감독 : 첸 카이거
주연 : 장국영, 공리

20세기 초 격동의 중국 현대사에서 팡씨 집안의 네 남녀가 구시대의 몰락과 새시대의 등장 속에서 펼치는 갈등과 애증을 조명한 영화. 아편에 날린 퇴폐적이고 자극적인 삶이 처음부터 끝까지 어두운 화면을 가득 채운다. 중국 내에서는 상영금지됐지만 1996년 칸 영화제와 뉴욕 영화제 등에 초청되었다. 퇴폐적이고도 허무감이 가득한 장국영의 연기를 볼 수 있으며, 역시 그가 부른 재즈풍의 주제가 "A Thousand dreams of you"도 명곡.

해피 투게더 (春光乍洩, 1997)… 보영 역
감독 : 왕가위
주연 : 장국영, 양조위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떠도는 두 남자의 동성애와 이별, 희망을 그린 작품. 이른바 '왕가위 스타일'로 불리는 왕가위 감독 특유의 영상미와 그에 어우러진 감각적인 음악, 두 배우의 파격적인 연기로 화제가 되었다. 제50회 칸 영화제에 <해피투게더>라는 제목으로 경쟁 부문에 진출하여 감독상을 수상했으며, 장국영은 대만금마장, 홍콩금상장 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에 노미네이트 되었다.

성월동화 (星月童話, 1999)… 가보 / 다츠야 역
감독 : 이인항
주연 : 장국영, 토키와 타카코

사랑의 상처를 가진 두 남녀의 운명적인 만남을 그린 멜로 영화. 장국영과 일본 톱스타 토기와 타카코가 만난 합작영화로 화제가 되었다. 장국영은 다정하고 섬세한 성격의 일본인과 거칠고 과격한 홍콩비밀경찰요원으로 1인 2역을 소화했다.

이도공간 (異度空間, 2002)… 짐 역
감독 : 나지량
주연 : 장국영, 임가흔

- 연예동력대장 최우수 남우주연상 수상

장국영의 유작. 영적인 존재와 그들이 얽힌 과거의 문제라는 동양적인 정서를 간직한 호러물. 장국영이 슬픈 사랑의 기억을 간직하고 과거의 악몽에 시달리는 정신과의사로 나온다. 이 영화에서의 연기에 몰입하여 그가 더욱 우울증을 심하게 겪었다는 설과 함께, 자신을 쫓아오는 혼령을 피해 고층건물 옥상에서 투신자살을 하는 영화의 마지막 장면 때문에 그의 죽음과 연관하여 많은 의혹과 추측을 낳기도 한 작품이다. 이 영화로 장국영은 대만금마장, 홍콩금상장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에 노미네이트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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