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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장고의 여름방학 ㅣ 제멋대로 휴가 시리즈 1
무라카미 시이코 지음, 하세가와 요시후미 그림, 김숙 옮김 / 북뱅크 / 2014년 6월
평점 :
으아, 덥다. 끈적끈적 무더위에 땀은 삐질 나는데, 바람은 파리 똥 만큼도 안부는 지독한 여름이야. 이런 때면 일하느라 지친 어른들은 이제나 저제나 여름휴가만을 기다린단다. 학교랑 학원 공부에 바빴던 너희들도 여름 방학을 손꼽아 기다렸지? 산으로, 바다로, 수영장으로 여기 저기 떠나는 여행계획으로 마음도 들떠 있겠구나.
여기 여름방학을 기다린 사람이 또 하나 있어. 아니, 사람이 아니지. 바로 겐이치네 냉장고야. 하루도 쉼 없이 1년 365일 8,760시간을 부지런히 일하면서 우리에게 시원한 음식을 주는 냉장고 말이야. ‘에이, 말도 안 돼. 무슨 냉장고한테 여름방학이야?’라고 너희들 피식 웃니? 이런, 상상력이 바닥이다 못해 뚫고 지구 속까지 닿겠다. 잠시 있는 힘을 다해서 상상력을 끌어 올려 보렴. 그러면 너희 집 냉장고도 살아 움직일지 몰라.
어느 날 겐이치네 냉장고가 갑자기 작동을 안 하는 거야. 시원한 맥주가 인생 최고의 낙인 아빠가 그 사실을 제일 먼저 발견하고, 냉장고 안에 복권에 스타킹까지 집어넣은 엄마랑 티격태격 싸우는데, 너희 엄마 아빠 모습하고 비슷할 거야. 그런데 그때 눈이랑 코랑, 커다란 입이 생긴 냉장고가 우물쭈물하다가 수줍게 한마디 하네.
“저기, 저도 여름휴가 받아 수영장에 한 번 가보고 싶어서요.”
엄마 아빠랑 겐이치는 어이없었지만 부탁을 들어주기로 했어. 한 술 더 떠서 냉장고는 자기가 여자애라며 비키니 수영복까지 빌려 입고 엄마 자존심까지 건드리는 거 있지? 이 냉장고 소녀를 데리고 수영장에 갔는데, 사람만 들어갈 수 있다고 매표소 아저씨가 가로 막네. 이걸 어째? 하지만 걱정 마시라. 아줌마 정신으로 똘똘 뭉친 엄마 덕분에 겐이치는 냉장고와 함께 무사히 수영장으로 들어가서 즐겁게 놀지. 게다가 냉장고가 수영 못한다고 겐이치를 놀리는 못된 아이도 혼내 주고, 헤엄까지 치게 만들어 주거든, 마치 겐이치 누나 같이.
수영장에서 재밌게 휴가를 즐기고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엄마가 냉장고에게 이제 일을 해달라고 했어. 하하, 그런데 이게 웬걸? 냉장고가 살이 타서 아프다며 사흘만 더 쉬겠다는 거야. 하긴 사람도 휴가는 3박4일이잖아? 냉장고에게도 여름휴가 하루는 너무 짧지. 어쩔 수 없이 또 부탁을 들어주자, 냉장고는 수영장에 있었던 일로 잠꼬대를 하며 침 흘리고 누워 자네. 사흘이 지나면서 손, 발, 눈, 입, 코가 하나둘 사라지고 예전의 냉장고로 돌아왔어.
시원한 맥주랑 아이스크림 못 먹은 가족들이 불만이 많았겠다고? 무슨 소리! 겐이치 엄마가 너그럽게 한마디 한 걸 들려줄게. “겨우 사흘인데. 우리가 조금만 참으면 되는 걸 가지고. 우리 냉장고도 뭔가 사는 즐거움이 있어야 하지 않겠냐고.” 이런 여유와 배려가 더위로 치솟는 불쾌지수도 잡아줄 것 같아. 단, 책 그림이 전부 컬러가 아니라 흑백이 섞여 아쉬워. 하지만 아이가 그린 듯 엉성하고 서툰 느낌의 삽화가 이야기의 재미를 더해준단다. 특히 냉장고 소녀의 모습은 웬만한 코미디언 저리가라 할 정도로 웃음을 자아내.
덥지? 지치지? 요즘 어른들은 번 아웃(burn-out) 증후군을 겪고 있는데, 과도하게 일해서 생기는 심한 신체적, 정신적 피로감을 말해. 너희도 공부 때문에 그렇다고? 방학을 해도 빽빽한 시간표 때문에 번 아웃될 것 같다고? 그러면 너희도 즐거움이 될 만한 일을 해봐. 게임 말고 딱히 없다고? 잠시 주변을 둘러 봐. 집에서 말없이 연중무휴 일하는 물건들을 찾아보렴. 너희처럼 물건들도 지쳤을 테니 휴식을 주자. 약간의 상상력을 발휘해서 겐이치네 냉장고처럼 물건에 생명을 불어넣어. 너희도 물건들도 번 아웃되기 전에 유쾌한 상상 속으로 신나게 여름휴가를 함께 떠나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