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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한 책 - 2017 학교도서관저널 추천, 2015 아침독서신문 선정, 2015 오픈키드 좋은어린이책 목록 추천도서, 2014 학교 도서관저널 추천 ㅣ 바람그림책 25
존 라이트 글, 리사 에반스 그림, 김혜진 옮김 / 천개의바람 / 2014년 7월
평점 :
책 한 권에 영향을 받아 인생이 바뀌었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종종 듣습니다. 심지어 각계각층의 명사들이 ‘나의 인생을 바꾼 책’이라는 주제로 쓴 에세이 모음집도 있지요. 이것이 꼭 유명한 사람들에게만 국한되지는 않습니다. 작가 존 라이트의 <위험한 책>은 책이 평범한 사람의 삶에 영향을 준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회색 건물로 가득 찬 도시에 혼자 사는 도서관 직원 브릭은 어느 날 지하 서고에서 “읽지 마시오.”라고 적힌 금서들을 발견합니다. 책 속에서 한 번도 본 적 없는 꽃을 보고 그는 슬퍼집니다. 꽃이 하나도 없는 도시 때문이었지요. 꽃을 찾아 거리를 헤매다가 변두리 고물상에서 씨앗이 담긴 꽃그림 봉투를 산 그는 온 도시를 돌아다니며 긁어모은 먼지로 컵 하나를 채우고 씨앗을 심은 다음 물을 줍니다. 며칠 뒤 싹이 나고 쑥쑥 자라더니 꽃이 피었습니다. 하지만 일하러 간 사이에 방 청소를 하러 온 기계 때문에 꽃은 하루아침에 사라지고 맙니다. 펑펑 울던 브릭은 결국 또 다른 꽃을 찾기 위해 수많은 날을 헤매다 거대한 먼지 더미에서 자신의 꽃을 찾았습니다. 꽃 앞에 주저앉은 그가 ‘도시를 꽃으로 가득 채우려면 얼마나 걸릴까’ 라고 생각하면서 이야기는 끝을 맺습니다.
영국 웨스트민스터 대성당의 어느 대주교 묘비에는 내 자신을 먼저 변화시켰더라면 세상도 변했을지 모른다는 후회 섞인 비문이 쓰여 있다고 합니다. 평범한 한 사람의 노력이 과연 세상을 바꿀지 의문을 품는 이들에게 이 작품은 많은 생각거리를 안겨줍니다. 꽃이 왜 사라졌는지, 이 도시는 꽃을 담은 책을 왜 숨기고 읽지 말라고 했는지, 이 도시 사람들은 왜 표정이 없는지, 그 속에서 브릭은 왜 사람들과 다른 행동을 했는지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납니다.
브릭은 혼자서 꽃을 찾고 피우기 위해 수많은 시간과 노력을 쏟아 부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황무지에 40여 년간 묵묵히 나무를 심은 양치기 ‘부피에’처럼 브릭도 누군가가 알아주길 바라고, 보상을 받으려고 한 것은 아닙니다. 답은 바로 책이 그의 마음을 움직였기 때문입니다. 책 속의 꽃이 어떻게 그가 열정을 가지게 했는지 모릅니다. 다만 메마른 도시에 사는 그가 책을 통해 자기 안에 잃어버렸던 감정을 되찾은 것은 분명합니다. 그는 인생의 나침반이 되어준 책을 만나 남들과는 다른 삶의 방향으로 잠잠히 나아간 것이지요.
이 책은 몽환적인 삽화가 인상적입니다. 주인공이 사는 도시는 우중충한 잿빛 하늘에서 검은 비가 쏟아지고 무표정한 사람들이 일터를 기계처럼 오가고 있는 전형적인 디스토피아입니다. 사람들이 사는 공간도 마치 감옥처럼 답답하고 외로운 느낌을 줍니다. 대조적으로 작가는 주인공과 꽃에 생생한 컬러를 더해 의미를 부여하고 있습니다. 또 글로 마무리한 열린 결말에 대해 마지막 장면과 뒤표지 그림에서 읽는 이들에게 암시합니다. 브릭의 정성이 회색 도시에 어떤 변화를 가져왔는지 말입니다. 책 한 권이 한 사람의 생각과 행동을 바꾸고, 그 한 사람으로 인해 세상이 달라질 수 있음을 넌지시 알려주지요.
책은 언제든 펼쳐 보고 원하는 것을 얻어 가도록 우리가 놓아둔 그곳에서 기다립니다. 우연히 펼친 한 권의 책이 인생을 송두리째 흔들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변화를 만들어 내는 것은 책이 아니라 결국 우리 자신입니다. 한 번 새로운 변화를 향해 뻗어가기 시작하면 사람의 마음은 절대 원래 자리로 돌아오지 않습니다. 책이 동기가 되어 자기 삶을 바꾸려는 한 사람의 의지가 행동으로 이어질 때, 세상의 변화는 시작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