웅철이의 모험 풀빛 동화의 아이들
주요섭 지음, 유성호 그림 / 풀빛 / 2006년 8월
평점 :
품절


 토끼들과 함께 달로 향하는 아이의 벌어진 입과 크게 뜬 눈은 놀람으로 가득 차 있다. 이 책표지에 연필로 세밀하게 스케치된 삽화는 이 '웅철이의 모험(주요섭 글, 유성호 그림, 풀빛 출판사)'이 아이의 환상과 꿈을 통한 모험임을 짐작하게 한다.

'웅철이의 모험'은 웅철이가 이웃집 누나가 들려주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듣다가 낮잠이 들면서 꾸게 된 꿈속의 모험담이다. 웅철이는 꿈속에서 토끼의 인도에 따라 땅속, 달, 해, 별의 나라를 구경하면서, 각 나라에서 여러 삶의 모습을 보고 느끼게 된다. 이 이야기가 발표된 시기가 1930년이기는 하지만, 저자가 사용하는 '나무새기', '조박지', '오독독' 등과 같은 토속적인 순 우리말과 '땡강땡강','휘딱' '도르르 탁탁', '훌훌훨훨' 등의 풍부한 의성어, 의태어는 한편으로 순수하고 순박한 웅철이의 모험담을 더욱 생동감 있고, 맛깔나게 하고 있다. 또한 저자는 각 나라별로 적절하게 옛 설화인 '별주부전'이나 '토끼와 거북이 경주' 등을 조화시켜서 새로운 이야기의 배경지식으로 활용하는 재치를 보이고 있다.

이 작품은 1937년 4월에서 1938년 3월까지 약 1년간 잡지<소년>에서 연재되었다고 한다. 아이들을 위한 동화여서 현실에 거리를 두었겠다고 생각하기에는, 저자가 나름의 장치를 통해 그 일제강점기라는 시대적 현실을 어떻게 반영했는지가 은근하게 드러나고 있다. 그것은 땅속나라에서 꽃정령과 개미와의 전쟁, 달나라에서 불개들과 토끼들의 싸움을 통해 은유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특히 토끼들의 이웃나라에 사는 불개들이 사신을 통해 전하는 국서의 내용과 불개나라의 묘사는 일본이 행하는 횡포를 풍자와 유머로 표현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이 작품은 당대의 억압과 침략에 고통받는 현실만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웅철이가 땅속나라에서 본 장님 쥐와 눈뜬 쥐의 관계, 해나라에서 본 원숭이와 사람 그림자의 모습은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부와 권력의 어두운 면을 비판하고 있음을 알게 한다. 특히, 해나라에서 식량인 개구리가 넘쳐나서 썩는데도, 굶주린 사람들과 나누지 않는 탐욕스런 원숭이의 모습은 현재의 부패한 권력층을 떠올리게 하고, 동쪽, 서쪽 패를 갈라 누가 더 양반인지 싸우는 그림자들의 모습은 허세에 가득차 쓸데없는 싸움을 일삼는 어른세대를 비꼬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저자는 왜 이런 현실의 비판과 풍자를 동화에 담아냈을까? 그것은 한편으로 일제강점기의 탄압을 교묘히 피하기 위한 것이었을 거란 추측과 함께, 저자가 한 나라의 미래인 아이들을 위해 그들의 눈높이에 맞춰 일제 강점기와 그 시대 현실을 이해시키기 위함이었을 거라 생각한다. 그리고 시대의 아픔과 고난은 깨어지는 꿈처럼 지속되지는 않음을, 더 나아가 희망찬 별나라의 모습처럼 이상적인 나라로 바뀔 수 있다는 희망을 얘기하고 싶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70여년전 어려운 시대에 태어난, 한국 판타지 동화의 기념비적인 작품이라 평가받는 '웅철이의 모험'. 일제 강점기에 대한 비판과 풍자를 은밀하게 녹아내어 그 시대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그리고 지금의 현실과도 결부할 수 있는 이야기는 시대를 초월하여 지금의 독자에게도 많은 생각거리를 남겨준다. 이렇듯 한편의 동화가 보여준 꿈속 여행은 우리의 아픈 역사와 우리가 발딛고 있는 현실을 되돌아보게 하면서 영원한 생명력을 갖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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