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짓기 시간 아이세움 그림책 저학년 11
알폰소 루아노 그림, 안토니오 스카르메타 글, 서애경 옮김 / 미래엔아이세움 / 2003년 3월
평점 :
절판


  아이는 지그시 눈을 내려뜨고 커다란 흰 종이를 두 손에 들고서 뭔가를 읽고 있다. 커다란 아이의 모습 옆으로 대조적으로 작게 그려진, 총을 든 4명의 군인들이 서있다. 이렇게 표지에서는 암울한 느낌이 강하게 배어나오면서  팽팽한 긴장감이 맴돌고 있다.

'글짓기 시간(안토니오 스카르메타 글, 알폰소 루아노 그림, 출판사 아이세움)'는 군부 독재 아래 어른들과 자신의 일상을 아이의 시선을 통해 담담하게 묘사하고 있는 작품이다. 주인공 페드로는 동네에 왜 군인들이 쫙 깔렸는지, 왜 어른들이 밤마다 라디오에 귀기울이는지, 친구의 아버지가 왜 군인들에게 끌려가는지, 반독재가 무엇인지 이해하기에는 어리고, 단지 축구를 좋아하고, 가죽 축구공을 갖는 게 소원이다. 이런 천진한 페드로의 모습과 군부 독재의 억압이 자행되고 있는 상황은 글보다는 사실적이며 절제된 그림을 통해 그 긴장감과 두려움을 강하게 증폭시키고 있다. 특히, 마치 사진같이 사실적인 느낌이지만, 대상의 크기 조절을 통해 강조하고, 페드로와 아이들의 시선에 초점을 둔 묘사는 어린이 독자들이 자신의 관점으로 그림에 담긴 의미와 주인공의 마음을 더 쉽게 공감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다.

축구를 좋아하고, 생일날 가죽축구공이 아닌 고무공을 받아 불만인 페드로에게 군부 독재의 등장, 그리고 밤마다 라디오를 듣는 어른들의 모습은 이해할 수 있는 대상도 아니고, 흥밋거리도 아니다. 하지만 어느날 페드로의 일상에 군부 독재의 실상이 파고든다.페드로는 친구 다니엘과의 대화를 통해 그의 아버지가 반독재를 해서 잡혀간다는 것을 알게되고, 이로 인해 자신의 부모님이 슬퍼하는 모습과 아버지와의 대화를 통해 어렴풋이 독재와 반독재의 의미를 느낀다. 이것은 페드로가 부모님의 잔소리가 싫고, 슈퍼주인이 된 다니엘이 과자를 갖다 줄거라는 아이다운 기대를 하는 천진스런 모습은 여전하지만, 반독재활동을 하는 자신의 부모님도 다니엘의 아버지처럼 군인들에게 잡혀갈 수 있겠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군부 독재의 교묘한 간계는 페드로의 학교에서 일어난다. 군부는 '우리 식구가 밤마다 하는 일'이라는 주제로 글짓기대회를 실시하여, 아이들이 자신도 모르게 부모를 고발하게 하려한다. 이미 반독재활동이 들켜서 한 가족이 붕괴되는 현장을 경험한 페드로은 이 글짓기 난관이 최대의 위기임을 직관적으로 알게 된다. 페드로는 부모님이 라디오를 듣는 사실보다는 체스를 둔다는 거짓말과 자신은 잠자기 때문에 그 이후는 모른다는 사실을 조합하는 기지를 발휘한다. 하지만 가죽축구공을 갖고 싶은 소원을 드러낸 알림을 통해, 페드로의 글의 대상이 군부가 아니라 바로 자신의 부모님이었음을 알게 되는 대목은 정말 기막힌 반전이다.

 페드로처럼 아이들이 군부나 독재, 억압의 의미를 정확히 알고 이해하기는 힘들다. 하지만 아이들은 페드로의 시선을 따라가면서 최소한 독재와 억압이 한 가족을 어떻게 아프게 하고, 불행하게 하는지를 자연스럽게 느낄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페드로가 사실대로 글을 써서 장군에게 메달을 받는 것보다 자신의 가족을 지키기 위해 거짓 글짓기를 한 의미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즉, 자신의 소중한 가족과 일상을 구한 아이다운 영리함과 기지를 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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