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로테스크
기리노 나쓰오 지음, 윤성원 옮김 / 문학사상사 / 2005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이야기 속의 그녀들이 안타까웠다. 그렇게 아름답고 똑똑했던 그녀들의 허물어진 삶이 안타까웠다. 그녀들은 왜 이렇게 되어 버렸을까?

 '그로테스크(기리노나쓰오 지음)'는 일본 현대사회의 병폐와 구조적 문제가 어떻게 4명의 여성의 삶을 파괴했는지, 어떤 악영향을 끼쳤는지를 실제 있었던 도쿄 여회사원 살인사건을 모티브로, 일기와 르포, 범죄 진술서 등의 형식을 통해 여성의 심리와 삶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소설이다.

주인공'나'와 동생 유리코, 같은 학교 친구인 가쓰에와 미쓰루를 중심으로, 장제중, 기리마 부자, 중심인물들의 가족, 외할아버지, 직장동료 등 수많은 주변인물이 등장하여, 이야기를 풀어간다.  이야기는 중심인물과 주변인물이 가정, 학교, 직장, 사회 곳곳에서 얽혀가면서 일본 현대 사회의 병폐들-외모, 학벌, 파벌, 재력 중시, 지나친 경쟁의식 조장, 남성 중심, 신계급주의, 주류 중심, 매춘 성행 등-을 드러낸다. 이속에서 4명의 그녀들은 각기 자신의 방식대로 내부의 어두운 이면과 욕망, 이상심리를 표출한다. 특히 살해당하는 유리코와 가쓰에의 일기를 통해 그녀들의 타락과 빗나간 이상심리의 끝이 어디인지를 묘사한 부분은 섬뜩하고 안타깝고, 끔찍했다.

이러한 이야기들의 흐름이 주인공의 어린시절부터 중년시절까지, 그리고 굉장히 많은 인물들의 등장으로 내용이 다소 방대함에 불구하고 지루하지 않았던 것은, 이야기를 풀어가는 형식이 1인칭 관찰자이자 주인공 시점의 일반적인 서술형과 일기, 편지, 재판 진술서, 범죄 기록서 등 여러가지 형태를 취했기 때문이며, 이것이 독자로 하여금 여러 인물의 관점을(같은 사건이라도) 경험하게 할 수 있어서 지루하지 않게 했기 때문이다.

과연, 작가의 이야기처럼 그녀들을 이 현대 사회의 문제로 인한 피해자라고만 단정지을 수 있을까? 그녀들의 정체성이 이렇게 허물어질 수 밖에 없었던 것을 모두 사회의 폐단에 돌려야 되는 걸까? 그녀들은 과연 자신들이 행복해지기 위해 다른 선택을 할 수는 없었던 것일까? 이런 질문에 대한 대답을 작가는 주변인물인 가쓰에의 회사동료'야마모토'를 통해 하고 있었다.

야마모토 曰 "분명히 친구들은 우리 회사의 이름을 대면 좋은 회사에 들어갔다며 부러운 얼굴을 해요. 우리회사는 그중에서도 업계 최고로 해외에서도 유명하니까.급료도 다른 회사보다 많이 주죠. 업무도 그럴 마음만 있으면 비중있는 일을 시켜줄 거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난 공허해요. 우리에게 지워진 짐이 너무 무거우니까. 남자 사원이상으로 일해야하고, 여사원의 일도 해야 하고, 양쪽에 너무 신경을 쓰니까 지쳐요. 그러나 남자는 될 수가 없어요, 평생. 좀 이상하지 않아요? 하여간 나는 남자 같은 것은 되고 싶지 않아요. 그냥 일을 하고 싶었을 뿐인데, 이대로 가다가는 금세 무너져 버릴 것 같아요." (중략) 가쓰에 曰, "이 정도에서 결혼해서 가정에 파묻혀 버린다면 지는 거 아니에요? 참고 버텨야죠." 그러자 야마모토 曰 "그럴까요? 버티고 싶지 않아요. 왜나하면 처음부터 지는 게임이니까요. 회사라는 곳은 우리를 시험해 보고 있을 뿐이라는 느낌이 들어요. 시험당할 뿐이라는 것은 굴욕적이잖아요. 그렇다면 차라리 자신의 행복을 생각하면서 살아가는 쪽이 오히려 이기는 것 아닐까요?"

야마모토의 생각에 100% 동조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녀가 그래도 현명한 점은 자신의 행복이 무엇인지, 사회나 타인의 잣대에 상관없이, 오로지 자신의 주관으로 깨닫고 있다는 것이다. 그녀처럼이라면 적어도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지는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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