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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실의 시대, 동양과 서양이 편지를 쓰다 - 혁명의 딜레마, 고객이 된 시민, 지식인의 브랜드화
자오팅양.레지 드브레 지음, 송인재 옮김 / 메디치미디어 / 2016년 5월
평점 :
절판
이 책은 2011년 프랑스 트레이에서 열린 프랑스-중국 문화 원탁회의에 참여했던 레지 드브레와 자오팅양이 회의에서 서로에게 감응받아 주고 받은 이메일 토론을 책으로 엮은 것이다. 한국어판의 제목은 “상실의 시대, 동양과 서양이 편지를 쓰다”이고, “혁명의 딜레마, 고객이 된 시민, 지식인의 브랜드화”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한국어판 서문’을 보면, 이 책의 프랑스판의 제목은 “하늘과 땅 사이”로 하늘과 땅 사이의 큰 문제를 다루었다는 의미이고, 중국어판 제목은 “두 얼굴의 개념”, 부제는 ‘혁명 문제에 관한 통신’이라고 한다. 제목에 관해 언급하는 것은, 이 책은 전혀 다른 분야의 학자들이- 드브레는 ‘매체학’ 전공자라고 하지만 체 게바라와 쿠바에서 함께 투쟁했던 혁명투사로 더욱 잘 알려져 있다- 주고받은 서신이기 때문에 전문적인 논의가 들어있다기 보다는 시대에 대한 전반적인 문제제기일 수 밖에 없으며, 그런 이유로 저자 개인들의 문제의식은 각 나라에서 부각된 책의 제목으로 가장 일차적으로 드러나지 않겠는가 싶어서이다.
서신을 주고받았다고 하지만, 책을 보면 자오팅양이 먼저 장황하게 문제를 제기하면 그에 대해 레지 드브레가 답을 하거나 반론을 펼치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자오팅양은 보다 관념적으로 자기의 생각과 의견을 제시하는데, 그의 사유는 많은 중국 지식인들의 사유가 그렇듯 자국의 전통에 대한 자부심을 엿보이는 고전 인용과, 그가 인용하는 서구 사상가들의- 지젝도 수차례 언급된다- 경구들을 보면, 중국 지식인들의 얼마나 서구를 의식하고 있는지 엿볼 수 있다. 자오팅양은 한국에 번역되어 있지만 나는 읽어보지 못한 『천하체계』(길, 2015)라는 시스템 내에서 말을 건네고 있는 듯 하다. 그는 자신의 존재론이 데카르트로 상징되는 서구의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이원론과 다른 “나는 행동한다, 고로 존재한다(facio, ergo sum)”로 설명한다. 이는 중국적 사유가 가진 현세적 성격, 즉 “지금 이 곳도 알 수 없는데, 저 곳(죽음)을 어떻게 알겠느냐”고 물었던 공자의 사유의 연장이며, “인간이 세계의 초월적 본질을 사유할 수 없는 것은 세계는 인간이 창조한 것이 아니며, 인간은 생활세계의 창조자”(109)여서 초월적인 일을 사유할 수 없다는 태도이다. 자오팅양은 “관계이성”라는 말을 쓰면서 “‘관계’가 기본 분석 단위가 되면 보편 가치를 더 합리적으로 정의할 수 있을 것”(111)이라며 서구와는 다른 새로운 보편성을 정의하려고 한다.
자오팅양이 서구와는 다른, 그러나 근본적으로, 끊임없이 서구를 의식한 사유를 전개해 나간다면, 서구 전통에 대한 레지 드브레의 태도는 보다 “쿨”하다. 드브레는 서구의 전통이나 철학 보다는, 그러한 것들이 만들어내는 꿈과 공동의 이상에 더욱 관심을 보인다. 그는 “오늘날 민주주의가 혁명을 대신하는 키워드로 등장”(56)했지만, “유토피아에 대한 신념이 없다면 사회는 썩을 뿐만 아니라 무료하고 변화없는 사회가 될” 뿐이어서 “혁명은 현대 사회 공간에서 희열에 도취하는 최후의 원천이자 보루”(55)라고 말한다. 드브레는 혁명적 이상을 위해서는 동물로서 인간이 가진 한계와 특성을 긍정하며(52), 사회와 민족이 움직이기 위해서는 심장과 감정이 들어있는 “진실과 거짓을 뛰어넘어 쉽게 구상되고 누구와도 공유될 수 있는 신화”를 통해 역량을 계발해야 한다고 주장(165)하는 리얼리스트이다. 그는 국제 사회의 힘의 냉혹함을 알고, 아름다운 거짓말이 ‘진실’한 효과를 낳는다는 마키아벨리적 지혜를 습득하고 있으며 그럼에도 유토피아로, 시대정신으로 나아가자고 주장하는 로맨티스트이다.
그러면 우리는 [한국어판의 부제가 가르키는 것처럼] 무엇을 상실한 세계에 살고 있는가? 우리는 이제껏 우리가 잘 살기 위해서, 올바르게 살기 위해서 추구해왔던 그 모든 가치를, 두 저자가 말하는 “혁명적” 가치를 모두 상실한 세계를 살고 있다. 드브레는 우리가 “시민이 아닌 고객이 되어 버렸고”, “지도 계층의 부패, 공동체 구조의 붕괴, 미래에 대한 불안감, 믿음에 대한 보편적 상실, 논리적 부작용으로서 합법성, 자기정체성의 위기까지(218)” 겪고 있다고 말한다. 지난 일백 년이 넘게 추구해온 모든 가치가 쓰레기가 되고, 애써 이룩해 놓은 성과는 “자본(주의)”이라는 새로운 괴물이 삼켜버린 시대가 도래한 것이며, 우리는 혁명 전야 보다 더 큰 혼돈에 맞부닥쳐 있는 것이다.
저자들은 혁명의 시대를 온전히 온 몸으로 거쳐온 이들이다. 그러면 혁명이란 무엇인가. 드브레가 지적하듯이, “프랑스어 revolution에 정치적인 혁명의 의미가 부여되기 전에는 하늘에서 별자리가 본래의 자리로 돌아가는 주기”(43)를 의미했다. 혁명이란 시간(객관)과 삶(주관)의 주기를 파악하는 일이다. “하늘과 땅 사이의 큰 문제들”을, “두 얼굴의 개념인 혁명 문제”를 다룬다는 것은 바로 우리의 삶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파악하는 문제와 크게 다르지 않은 것이다. 두 사람이 다루는 내용이 혁명이라는 국부적 주제에서 시작되어 민주주의와 자본주의, 관계이성과 매체학, 정치와 권력의 구조 변동의 문제를 다루는 것으로 확대되어 가는 것은 그러므로 자연스러운 과정인 것이다.
이 책에서 우리가 얻을 것은 어떤 지식이 아닐 것이다. 동서양을 대표하는 석학들이면서 혁명을 몸으로 치러온 혁명가들로서 그들에게서 듣는 현대의 문제, 자본주의의 문제나 그에 대한 해결책은 비슷한 류의 교과서나 문제작들에서 훨씬 더 자세히 다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이 가지는 의미는 혁명 세대들이 자신들이 가졌던 혁명이 아니라, 앞으로 도래할/도래해야할 또 다른 혁명의 의미에 관해 말한다는 것이다. 실체가 명확했던 타도의 대상이 있었던 시대에, 추구해야 하고 이루어야 할 것이 명확했던 시대에 혁명을 이루고자 했던 이들이 “(구세대가 쓰러지는) 혁명의 신화가 현대의 미신 중의 하나임을 발견하고, 혁명의 종교성이 혁명의 이성보다 강함을 발견하라”(83)고, 그리고 현대 자본주의 사회 속에서 “국가와 정부가 금융자본, 신기술, 대중매체, 인터넷과 같은 ‘무대 뒤의 권력’의 경리부서”에 지나지 않을 시대에서 진정으로 상실되고 있는 저 많은 진짜 문제들을 직시하라고 우리에게 말하고 있다. 혁명의 시대에 혁명의 전위에 서 있던 루카치가 "별이 빛나는 창공을 보고, 갈 수가 있고 또 가야만 하는 길의 지도를 읽을 수 있던 시대는 얼마나 행복했던가"라고 탄식했던 것처럼, 우리 각자가 대면하는 우리의 시대는 어둡고 혼란스러우며, 혁명의 시대는 항상 바로 '지금 여기'를 바꾸는 것이여야 하고, 혁명은 항상 계속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