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우 없는 세계
백온유 지음 / 창비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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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경우 없는 세계.. 제목에 이끌렸다.


도무지 이 경우 없는 세계를 살아가는 내가 살기에 정말 어려움이 큰 그런 세상..

그런건가? 하며 펼친 세계


백온유 작가의 말에 나는 너무나 공감을 하고, 내가 고민한 그 지점을 만나는 순간 무너지는 마음도 사실이었다.


사랑을 받아본 사람이 사랑을 줄 수 있다는 말. 예전에는 그런 말들을 당연하게 생각했고 의문을 가지지 않았다. 양육자의 사랑과 신뢰를 경험하지 못했지만 그런 티를 내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며 살아가는 사람에게 '너는 사랑받고 자란 티가 난다'는 말은 칭찬으로 다가올까, 상처로 남을까. 스스로 던진 이 질문의 답을 오래도록 고민했다.

배려를 받지 못한 아이, 좋은 어른을 경험하지 못하고 자란 소년이 커서 성숙한 어른이 된다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일 것이다. 그러나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내가 늘 그렇게 부러워 한 삶은 그런 거였는지도 모른다. 사랑 받고 산 아이들에 대한 부러움.

내 부모에게서 못 받아본 그런 울컥함이 어느샌가 사그러진 듯 스며없어진 듯 그랬는데, 내가 어른이 되고, 부모에게 사랑받지 못하고 자란 억울함? 같은 치밈이 내 가슴에 고스란히 있어서 그것이 내 아이에게 전달되고 있을 때 나는 그렇게 속으로 울고 원망했다.


그리고 사랑받고 자란 티가 나는 아이처럼 사랑받고 자란 어른처럼 자라있는 내 모습이 있었다.


경우 없는 세계가 나에게 주는 것은 내가 기대한 것보다 더 크게 와닿는다.


1회 이상 가출한 적이 없고,

한달 이상 학교에 결석한 적이 없고,

밤에 건물 화장실에서 잔 적이 없다.

다른 사람의 물건이나 돈을 훔친 적도 당연히 없다.

돌아갈 가족과 집은 있었다.


그러나 돌아갈 가족과 집이 있었다고 그 집이 내가 돌아가야 할 그런 집은 아니었던 것, 그것은 누구보다 내가 잘 아는 그런 집이었다.

비난과 힐난과 덤터기와 싸움이 가득했던 그런 집에서 자라서 나는 불안이 늘 마음에 고스란히 있다.


사실 누구를 잘 책임져 줄 만큼 튼튼해보이지만 순두부보다 여린 마음으로 겨우 겨우 이 경우 없는 세계를 살아내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혼자 산책하며 잃어버린 내 동생을 기억하며 그렇게 아직도 우는지 모르겠다.

나의 사춘기 시절 나의 자존감을 내려앉게 하는데 일조했지만, 그렇지만 죽이 척척 맡게 잘 커서 잘 지낸 동생을 잃으면서 원망이 한켠에 켜켜히 쌓였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나와 차별하며 온갖 것을 다 해준 동생을 왜 잃게 되었을까?

저 위의 항목과 가까운 방황을 겪은 내 아까운 동생도 돌아갈 가족과 집이 있었는데, 힘들었을 것이라는 동조를 안할 수가 없다.


이제는 없고, 나는 건강하게 살아야 하는데, 내가 지금 건강하게 살고 있는 건지 잘 모르겠다.


사랑받지 못한 똥강아지는 그렇게 이 나이가 되어도 힘들다. 괴롭다.


백온유 작가의 경우 없는 세계를 읽고 작은 위안을 얻고 다시 건강하게 씩씩하게 잘 살아내는 것이 나의 목표가 되어 버렸다.


사고를 치지 않고 시절을 보낸 어른이지만 결코 쉽지만은 않았던 나쁜 유년시절, 청소년시절을 거친 것이 억울해서 내 아이들에게만은 따뜻한 사랑을 꼭 주고 싶다.


또다른 내가 될 어른은 만들지 말아야 하므로 그렇다.


나쁜 일을 하지 않고 다들 어떻게 사는 걸까. 반복되는 일상을 저버리지 않고 평화를 일구는 법은 누가 알려주는 걸까. 그런 게 체득이 되는 인간들은 다른 유전자를 갖고 태어나는 걸까. 동이 틀 무렵 창가에 어른거리는 고양이 그림자를 눈으로 좇으며 우리는 망했다고 홀로 중얼거렸다.


내가 내내 인생에서 마주하는 고민이다. 나쁜 일을 하지 않고 평화를 일구는 듯 살았지만 해소되지 않은 슬픔을 간직한 삶.


누군가 풀려 있는 운동화 끈을 묶어준 것에 대한 감사.


그것을 지탱할 수 있는 유일한 탈출구. 해방같은 것은 나의 할머니와 할아버지 나를 이뻐해주던 이모와 고모.. 그런 기억마저도 없었으면 어쩌면 나도 가족과 돌아갈 집을 튕겨나와 내 삶이라고 쥐어짜며 살았을지도 모른다.


운동화끈같은 기억으로 이마만큼 살게 해주는 내 주변에 감사한다.


어디선가 따뜻한 바람이 불어왔다. 나의 심연에서 바람이 휘돌며 서서히 내 몸을 녹였다. 이런 온기를 오래전부터 꿈꿔왔지만 막상 따스함을 느끼니 내게는 이런 안온함을 누릴 자격이 없는 것 같아 괴로워졌다. 하지만 익숙해지를 바랐다. 부디 한번 더 기회가 주어지기를. 햇볕을 쬐면 정화되기를. 경우 없는 세상에서도.


나의 깊은 바람이 담겨 있는 저 구절을 읽을 때는 미친사람마냥 꺼이꺼이 울었다.

서러웠다. 그래서 울고, 울고 나니 정화될 것 만 같았다. 거지같다고 믿었던 내 삶도. 경우 없는 세상에서도.


제목마저 감사한 경우 없는 세계.. 두고 두고 읽으며 정화되서 살아내기를.

내 삶에 용기를 주기를.


이 경우 없는 세상에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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