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모든 순간이 시였다
박신규 지음 / 미디어창비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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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모든 순간이 詩라니..

이 말이 정말 멋지잖아..


그래서 본 책 <당신의 모든 순간이 시였다>


낙타  * 신경림


낙타를 타고 가리라, 저승길은

별과 달과 해와

모래밖에 본 일이 없는 낙타를 타고.

세상사 물으면 짐짓, 아무것도 못 본 체

손 저어 대답하면서,

슬픔도 아픔도 까맣게 잊었다는 듯.

누군가 있어 다시 세상에 나가란다면

낙타가 되어 가겠다 대답하리라.

별과 달과 해와

모래만 보고 살다가,

돌아올 때는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은 사람 하나 등에 업고 오겠노라고.

무슨 재미로 세상을 살았는지도 모르는

가장 가엾은 사람 하나 골라

길동무 되어서.


예전같으면 이런 시를 그냥 시큰둥하며 내가 아직 살 날이 많은 내가 무엇으로 이걸 읽어야 하는지 하며 그리 생각했을 법한 이 詩 낙타

정말 소중한 이를 떠나보내고 난 이 나이의 내가 읽는 낙타는 묻는다.


너는 낙타를 타고 갔느냐. 그 저승길을


가장 가엾은 사람 하나 골라

길동무 되어서 그렇게 그렇게 다시 올 수는 없고?라며 어리석게 묻는다.


낙타야.. 그리 그 저승길에 낙타를 타고 갔느냐.. 그러니 또 내 눈에 물 같은 것이 고이고.. 

그리움은 사는게 힘들다며 징징대는 친구 선후배들을 만날 때마다 낙타를 읽어보라고 그리 말해줄 수 있을 것만 같다.


오늘밤 내리는 가을비를 정갈히 받아두었다가 이듬해 황홀하게 국화가 피어나는 밤 해를 묵힌 가을비로 오래오래 먹먹토록 먹을 갈아...


가을비를 정갈히 받아두었다니까.. 그 가을비 내리는 풍경마저 놓쳐서는 안될 것만 같은 생각이 든다. 가을비로 연서를 쓴다니 이런 운치에 젖어드는 시어가 얼마나 멋스러운지..

마치 그 옛사람이 되어 오늘이 없고 어제 그제만 사는 사람이 되어버린 내가 떠오른다.


'국화는 가을비를 이해하고 가을비는 지난해 다녀갔다'


이런 멋진 문장의 완결을 보고 질투가 난다. 나는 왜 먼저 저 말을 생각해내지 못했단 말인가? 

국화는 가을비를 이해하고 가을비는 지난해 다녀가고,  이제 국화와 가을비는 이 시에서처럼 가을비 내리는 밤 국화 옆에서 옛날을 들여다보며 홀로 국화술에 취하리..


절로 취하리.. 국화술에 취하리.. 삶에 국화향이 나고 나는 그 가을 비를 정갈하게 받아둘 수 있으리.. 그러면 내 삶이 조금은 덜 고단하고 더 기꺼이 살아내리..



나는 어릴적에도 그렇고 나이들어서도 그렇고 이 시 묵화를 읽으면 우리 할머니 생각이 난다. 아마 누구라도 시골에서 할머니와 함께 한 그 기억의 끝트머리 한 자락이 있다면 그리 생각날 사람이 많을 것이다.


그 시골에 할머니와 소는 서로를 위로한다.


이 하루도

함께 지났다고,

서로 발잔등이 부었다고,

서로 적막하다고,


그리고는 내 주위에 살겠다고 살아내겠다고 발버둥을 치는 사람들 속에서 또 하루를 그렇게 견녀낸 모든 이들이 떠올라 가슴이 저리고 그 고단한 사람들 모두에게 박수를 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당신의 모든 순간이 시였다>는 詩이고, 生이고, 我였다.




★창비에서 책을 제공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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