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공주 해적전 소설Q
곽재식 지음 / 창비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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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해만사(行解萬事)"

즉 무슨 문제든지 말만 하면 다 풀어준다는 뜻이었다.

그저 부럽다. 무슨 문제든지 말만 하면 다 풀어준다는 이가 나에게도 나타났으면 하는 속없는 생각을 하며 일기 시작했다.

 

p.16

"본시 힘들여 일해야 한다는 이야기는 따르기 싫은 법이요, 마음 놓고 지금 놀아도 된다는 말은 솔깃하여 따르고 싶은 법이지. 사람들이 그대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는 것도 그럴 수밖에."

 

그렇게 우유부단하며 성실한 한수생과의 만남이 시작된다.

 

p.25

"본시 사나운 기세로 여러 사람이 힘을 합쳐 일어서게되면, 중간에 그게 아니다 싶은 느낌이 들 때가 있어도 그냥 그 기세에 눌려 일을 저지르게 되는 수가 많은 법이오. 더군다나 자신은 현명하여 세상의 이치를 잘 아는데 주위에는 멍청한 자들뿐이라고 믿고 함부로 말 떠들기 좋아하는 놈이 한둘만 섞여 있으면 일이 험악해지는 것은 더 쉬워지기 마련이오."

 

한수생이 살던 마을사람이나 상잠같은 이들은 그렇게 늘 큰 소리로 앞장서며 현명하지 못하고 남에게 탓을 돌려 자신의 이익과 관련된 부분을 반드시 쟁취하는 못된 일을 한다. 그러나 그것은 때론 인간본성이라고 치부되기도 한다. 그렇더라도 사람으로 태어났으면 사람답게 살아야 한다는 그 간단한 이치를 《신라 공주 해적전》에서 또 한번 깨달았다.

 

p.110

"그대는 '항해만사', 무슨 일이든 말만 하면 들어준다는 나를 잊었는가?"

 

p.177

바다에 나와보니, 동굴 속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무도 알지 못할 정도로 그저 햇빛이 밝고 한가롭게 파도 찰싹거리는 소리만 들렸다.

 

p.188

"만사를 모두 다 풀어주는 낭자가 오늘도 우리를 구하는구나."

 

p.191

"나무를 비벼 불을 붙이는 것은 쉽지 않소. ······ 그만 애를 쓰고 포기하도록 하시오. 그리고

(p.192) 그저 가만히 기다리다가 추워서 몸이 굳게 되면 그것이 마지막인가보다 하고 쉬도록 하오."

그러자 한수생은 장희의 노래를 부를 때 가장 좋아했던 대목으로 대답한다.

 

p.193

그리고 한수생은 나무 도장을 비비고 또 비비다가 두 손에 물집이 터져 진물로 범벅이 되고 손톱이 빠져나가도록 계속 그것을 비볐는데, 그러다 마침애 불이 붙었으니 그때부터 세사람을 따뜻하게 비추어주었다고 하더라.

 

한수생은 그런 사람인 것이다. 영군도 그러했지만, 자신의 사람이라고 믿는 공주와 백제를 저버리지 않고 끝까지 자기 할 일을 묵묵히 해내는 사람인 것이다. 한수생을 우유부단하고 답답하게만 보던 차에 맺음에서 한수생의 진가가 나오니 정말 또다른 진한 감동이 생겼다.

 

한번 손에 잡으면 놓을 수 없는 그 재미와 감동과 후련함마저《신라 공주 해적전》충분히 가지고 있는 매력있는 책이다.

 

사전서평단으로 먼저 읽는 재미와 작가를 알려주지 않아 읽는 내내 괜히 더 궁금해지게 만드는 묘한 재미도 느끼며 시원하게 읽어 더욱 좋았던《신라 공주 해적전》이었다. 

어떤 모습으로 출간될까 궁금했던 차에 책 표지를 보니 속지에 있던 것을 색도 잘 어울리게 곱게 치장하고 나온 모습이 왠지 대견하게 느껴지고, 먼저 읽어본 사람으로 뿌듯함이 크고 통쾌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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