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호프가 보기에 인생에 초월적인 의미 같은 것은 없었다.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인류를 위하여 스스로 노력하고 모범을 보임으로써 제멋대로인 삶의 양상에 일관성을 부여하는 것뿐이다. "사람은 추구해야 한다. 스스로, 자신의 양심대로 혼자서 추구해야 한다." 이것이 유일하게 기댈 수 있는 신념이었다.

그는 `구원`이라는 개념 자체가 오해에서 비롯되었으며, 사람들을 현혹하여 물질적 조건을 개선하는 행동에 집중하지 못하도록 주의를 분산할 뿐이라고 생각했다. 도스토옙스키식의 묵시록적 시각도 그가 보기에는 요점을 빗나간 것이었다. 그는 우리가 멀리, 먼 미래나 내세를 내다보는 대신, 현재 처해 있는 그저 그런 보통 수준을 떨치고 벗어나기 위한 첫걸음부터 떼야 한다고 생각했다.

영웅적인 행위는 바로 그런 길 위에 있었다. 자신과 타인을 위해 일상의 삶을 개선하려는 작은 노력과 행동이야 말로 영웅적 행위임을 제대로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일단 첫걸음을 떼고 나면 그 걸음이 어디로 이어질지 누가 알겠는가. 체호프의 삶이 바로 그 증거였다. 그러나 우선 그 첫걸음부터 내디뎌야 한다. 그것이 바로 영웅적 행위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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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9년 다윈이 <종의 기원>을 출판한 후에도 시간 기준 문제가 일으키는 저항은, 자연선택설을 받아들이는 면에서 가장 큰 장애물 중 하나였다. 사람들은 이런 과정이 일어나는 긴 시간을 경험할 수 없고 그저 추론할 뿐이다. 어떤 상황에서 우리가 진화적 변화를 말할 때도, 이런 시간개념이 만들어내는 한계가 있다. 그래서 우리는 진화적 시간 기준으로 사고해야 한다. 독특한 역사적인 배경을 염두에 두고 생각해야 하는 것이다.

샤르댕은 `깊은 시간대(수천만년~수십억년의 흐름을 인식해낼수 있는)`로 들어가서 볼 수 있는 능력은 종에 새롭게 출현하는 잠재 능력이라고 말했다. 우리는 신체와 심지어 정신까지 구성하고 있는, 진화 역학과 관련된 거대한 시간개념에 대한 이해 방법을 막 배우기 시작했다. 샤르댕은 여기에서 매우 놀라운 유추 해석 방법을 사용한다.

어린이 발달단계에서 아이에게 처음으로 깊은 감각 능력이 생기는 시기가 있다. 그 전까지 어린아이는 모든 세상을 그저 평면적으로만 인식한다. 그런데 어떤 시점에 도달하면 눈으로 보이는 대상에도 깊이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사물이 3차원으로 보이기 시작하는 것이다. 샤르댕은 인간이 지금 시점에서 진화적 시간개념을 이해하는 것은, 어린아이에게 처음으로 공간지각 능력이 생기는 것과 비슷하다고 말했다. 진화가 발생하는 시간개념을 인지적으로 이해하기 시작한 것이다. 시간은 4차원적 개념으로 불린다. 우리는 4차원으로 볼 수 있는 능력을 막 개발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와 상황의 제약을 받는 시간의 눈가리개가 사라지면서, 우리는 우리가 아주 오래된 존재라는 놀라운 사실을 갑자기 이해할 수 있게 됐다. 그리고 그 오래된 존재는 모든 생명체 및 우주 전체와도 연결되어 있다. 인간은 계속 흘러가고 있는듯한 이 시간을 아주 먼 곳에서 관찰만 하는 존재가 아니다. 인간은 이 깊은 역사 속으로 연결되는 창의 역할을 한다. 인간을 통해 역사를 보면, 물질뿐만이 아니라 원시적으로 흐르는 거대한 시간의 흐름이 모여 개성 있는 순간이 만들어지는 것을 볼 수 있다.

새로운 형태의 직관성이 이것을 인지할 만한 내적 통찰력을 갖춘 사람들에게 나타나고 있다. 이런 내면적인 시간개념은 글이나 영화 같은 매체를 통해 강력하게 표현되기도 한다. 진화 혁명가들은 이런 시간개념이 순간적으로 통찰력이 발휘되는 인간의 의식을 통해서도 갑자기 생겨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인간의 의식이 깨어나면서 과거와 미래를 거시적으로 깊은 관점으로 보게 됐고, 인간은 의식과 문화, 생명체, 우주 등이 발전 과정이라는 새롭게 드러나는 본질과 연결되어 있다고 느끼고 있다. 초자연적인 심령의 개념이 후퇴하면서 보수적 고정성이 깨졌고 진화하는 세상에 대한 새로운 시각이 생기자, 일관성이나 통일성이 아닌, 유동성과 일시성이 가득한 `에피파니`가 쏟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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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부터 우리는 새를 정절의 상징으로 여겼다. 그러나 분자유전학의 발달로 새들의 숨겨져 있던 이야기가 드러났다. 암컷은 훌륭한 둥지를 갖고 있으며 매력적인 짝임을 알리는 모든 징후들을 뽐내는 수컷을 찾아다니며, 일단 교미를 하고나면 그녀는 다른 수컷에게로 눈을 돌린다. 새들의 디-엔-에이를 분석한 결과, 90퍼센트의 조류에서 암컷이 기르는 새끼의 일부가 그녀의 사회적인 짝이 아닌 다른 수컷의 새끼인 것으로 나타났다. 평균적으로 새끼의 11퍼센트는 또 다른 수컷의 자식이다. 이 분야의 최고는 호주의 예쁜꼬마굴뚝새다. 예쁜꼬마굴뚝새 암컷이 품는 알의 95퍼센트는 동트기 전 근사한 수컷 새의 보금자리로 몰래 찾아가 하는 짝짓기의 결과다.

암컷은 짝짓기에서 두 가지의 선택을 할 수 있다. 하나는 둥지를 짓고 함께 새끼를 기를 수 있는 사회적인 짝을 선택하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사회적인 짝 이외의 다른 수컷과 교미할지 여부를 선택하는 것이다.(생물학자들은 이것을 혼외정사라 부른다) 첫 번째 종류의 짝 선택으로 암컷은 새끼를 독립시키는데 필요한 자원이나 도움을 확보한다. 훌륭한 보금자리를 점유한 수컷들은 대부분 이러한 방식으로 교미를 하고 가족을 꾸린다. 암컷은 훌륭한 유전자 조합을 가진 매력적인 수컷과 혼외정사를 할수도 있다. 같이 사는 수컷이 유전적으로 평균 이하인 것처럼 보이면 암컷이 바람을 피울 가능성은 더욱 높아진다. 암컷이 혼외정사를 한다고 해도 자손 수가 더 늘어나진 않는다. 그러나 그녀의 새끼는 혼외정사를 나눈 수컷으로부터 좋은 유전자를 물려받아 생존과 번식에 더 잘 적응할 수 있다. 즉, 암컷 새를 뛰어난 펀드 매니저처럼 혼외정사를 통해 미래를 위한 가장 중요한 투자 대상인 새끼가 입을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다.

수컷도 그렇게 멍청하진 않다. 암컷이 산란 시기에 자리를 비우는 등의 바람을 피우는 낌새를 느낀 수컷은 새끼를 키우는 데 노력을 덜 쏟는다. 의심 많은 수컷은 암컷이 자기 새끼를 기르는 것도 방해한다. 어쨌든 엉뚱하게 다른 수컷의 새끼를 기르는데 시간과 노력을 쏟는 것은 진화적으로 무의미한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손뼉도 마주쳐야 소리가 나듯이, 일부일처제의 믿음을 무너뜨리는 데는 수컷도 일조한다. 다른 암컷과 혼외정사를 할 수 있는 수컷은 엄청난 적합도 보상을 누릴 수 있다. 알을 부화시키고 새끼를 키우는 노력 없이 더 많은 자손을 남길 수 있기 때문이다.

암컷의 두 가지 형태의 짝 선택(함께지낼 사회적 짝과 혼외정사할 짝) 때문에, 수컷에게는 강한 성선택압이 작용한다. 대부분의 수컷 새는 우열을 가리기 위해 신체적 경쟁을 하는 대신에, 암컷 앞에서 자신의 양육 능력이나 유전적 우수성을 뽐내면서 암컷의 눈에 들기 위해 경쟁한다. 이것으로 수컷 새가 동물 중 겉모습이 가장 화려한 반면에 암컷은 수수한 모습인 이유를 설명할 수 있다. 극락조 수컷의 화려한 꼬리깃, 금조류의 노래소리, 예쁜꼬마굴뚝새의 눈부시게 빛나는 푸른 깃털 등은 모두 암컷이 가장 화려한 수컷을 교미의 대상으로 선택하여 나타난 강한 선택압에 의해 진화한 산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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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우리 조상이 농업에 종사한 기간보다 수렵과 채집을 했던 기간이 백 배는 더 길지만, 몇몇 유행 다이어트 전문가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우리의 몸이 농사를 짓기 이전 홍적세에 완전히 고착되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된 인식이다. 자급자족 농업 경제는 비교적 최근에 나타난 것이긴 하지만, 진화유전학자에 따르면, 강한 자연선택이 작용하면 몇 세대 만에 큰 진화적 변화가 일어날 수 있다.

애벌레는 채 열 세대도 거치기 전에 탄수화물 함량이 높은 먹이에 적응하고 과도한 에너지를 사용하며 비만이 되지 않으려는 능력을 키운다는 사실이 실험적으로 증명되었다. 사람들도 당연히 농업에 따른 먹거리의 엄청난 변화에 맞춰 진화했다. 자연선택으로 가장 활기 없고 무력한 유전자가 사라지고 사람들이 새로운 환경에 더 잘 적응하도록 만드는 유전자가 선호되면 진화가 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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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 소녀와 소년의 비율이 소녀 100명 당 소년 106명을 초과하게 되면 성별 통제를 하는 증거로 볼 수 있다. 오늘날 세계 곳곳의 편향된 성의 예들은 다음과 같다. 베네주엘라의 성비는 107.5이고, 유고슬라비아는 108.6, 이집트는 108.7, 홍콩은 109.7, 대한민국은 110, 파키스탄은 110.9, 인도의 델리는 116, 중국은 117, 쿠바는 118, 카프카스 지역 국가인 아제르바이잔, 아르메니아 그리고 조지아는 120으로 가장 높다.

중국에서는 현재와 같은 성비가 지속될 경우 20년 내에 결혼 적령기의 여성보다 결혼 적령기의 남성이 1500만 명이나 더 많게 된다고 예측했다. 문제는 성비의 균형이 이렇게 깨지면 더 공격적인 사회가 된다는 것이다. 결혼과 가족이라는 사회화 작용 없이 남성이 추위 속에 남겨져 좌절하게 되면 폭력적으로 변할 수 있다. 따라서 남아 선호라는 개인적 결정은 결국 사회적인 걱정거리를 만들어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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