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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직장인은 글쓰기가 두렵다
임재춘 지음 / 북코리아 / 2005년 7월
평점 :
한국의 직장인은 글쓰기가 두려운가? 맞다. 나는 물론이고 주위를 둘러봐도 보고서나 기획안 등을 작성하는 것을 식은 죽 먹기처럼 척척 해내는 사람은 찾아보기 힘든 것 같다. 그저 마음 먹고 정신을 집중하면 금새 해치울 것 같은데, 막상 써다 보면 막히기가 일쑤다. 오자나 탈자를 바로잡는 마무리까지 하자면 꽤나 시간이 걸린다.
최근에 책을 쓰겠다는 결심을 했다. 늦어도 3년 내에 한권을 쓸 작정이다. 오래 전부터 마음 속에 간직하고 있었던 주제가 한가지 있다. 원래 계획은 30대에 많이 읽고 열심히 배워서 충분한 내공을 쌓은 뒤 40대에 부끄럽지 않을 정도의 책을 펴내는 것이었다. 그런데 벗과 대화를 나누고 뭔가 변화가 필요한 내 일상을 돌아보면서 계획을 대폭 수정했다. 일찌감치 책 쓰기에 도전하는 것이 훨씬 더 체계적이고 깊이 있게 배울 수 있겠다는 이유다.
요즘 관심사가 이렇다 보니 책 쓰기와 관련한 생각이 많아졌다. 주제가 너무 큰 이야기는 아닌지, 어떻게 하면 알기 쉽게 주제에 접근할 수 있을까, 분량은 어느 정도가 좋을까 라는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그리고 인터넷을 뒤지며 책을 쓴 사람들의 이야기나 비결을 찾던 중에 이 책의 저자를 알게 됐다.
저자는 흔치 않은 이력을 갖고 있었다. 과학기술부 원자력국에서 국장으로 근무하던 중 글을 못써 그 자리에서 물러났고, 이 일을 계기로 미국에서 파견근무를 하면서 ‘기술글쓰기의 원리’를 배웠다. 그리고 나서 <한국의 이공계는 글쓰기가 두렵다>라는 책을 썼고, 대학에서 글 쓰기 강의를 하고 있다고 한다. 자신에게 독이 되었던 글 쓰기를 약으로 바꾸어 놓은 셈이다. 이처럼 뼈저린 경험을 거쳐 글 쓰기 비법에 도달한 사람의 말이라면 충분히 믿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바로 책을 주문했다.
저자는 미국에서 초등학교 때부터 널리 글쓰기 방식으로 보급돼 있는 ‘힘글쓰기(The Power Writing)’라는 기법을 소개하고 있다. 이 기법은 문학적인 글쓰기와는 달리 실용적인 글쓰기를 다루고 있는데, ‘효과적인 의사전달’을 목표를 추구하는 글쓰기다. 이에 따르면 주제/주장-근거(주로 방법/이유)-증명(주로 자료/의견/사실/사례)-주제/주장의 순으로 글을 쓰는 것이, 글을 쓰기에도 쉽고 편리하며 읽은 이들도 쉽게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글쓰기 과정을 POWER(Pre-writing=글쓰기 준비, Organization=글의 구조, Writing=쓰기, Editing=글 고치기, Re-Writing=다시 쓰기)로 나타내고 있다. 저자는 책 속에서 ‘힘글쓰기’ 기법와 실전을 보여줄 뿐 아니라, 이를 뒷받침하는 이론적인 배경과 문장공학에 대해서도 간략히 소개하고 있다.
저자는 문장공학을 이렇게 정의하고 있다.
“우리글이 세계 최고의 효율을 갖게 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글을 쓸 때 글의 구조, 글의 문단구조, 문장구조를 표준화하여 이에 맞추어 기계적으로 글을 써야 한다. 이렇게 하면 정보전달이 빠르고 언어조차 자동화가 이루어진다. 이것이 문장공학이다.”
글에 왠 공학을 들먹일까. 얼핏 생각해 보면 글과 공학은 전혀 어울리지 않는 만남이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면 문장공학이란 말이 익숙하지 않아서 거부감이 들 뿐이다. 사실 글을 서론-본론-결론으로 나누거나 기-승-전-결로 나누는 것처럼 문장을 나누거나 분석하는 것은 초등학교 때 이미 배웠다. 그런데 문제는 그냥 지나치거나 제대로 배우지 않은 것이다. 아름다운 글을 감상하고 이해하는데 대부분의 시간을 할애한 것이다. 영어를 배울 때는 문장의 기본 형식에 대해 꼼꼼하게 배우지만 우리 글을 배울 때는 문장의 기본 형식을 철저하게 배우지 않은 것 같다.
책을 다 읽고 나서 마음이 홀가분해졌다. 문학적인 글쓰기 어차피 나와 인연이 없지만 실용적인 글쓰기라도 좀더 자신감을 갖고 쓸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건물을 지을 때 설계를 하고 조감도를 그리는 것처럼 글을 쓸 때도 먼저 구조와 형식에 대해서 고민을 하자. 그 고민이 잘 결실을 맺는다면 글을 쓰는 것도 결코 힘들지 않을 것이 틀림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