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곶감과 수필 ㅣ 태학산문선 301
윤오영 지음, 정민 엮음 / 태학사 / 2008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흔히 붓 가는 대로 쓰는 것을 수필이라고 한다. 사물을 보고 마음에 떠오르는 것이나 생활을 반추하며 느낀 점, 세태를 바라보는 시선 등을 자기만의 색깔로 쓰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수필의 재료는 흔히 접하는 사물이나 자연 현상부터 개인의 소소한 경험, 시대의 변화 등에 이르기까지 무궁무진하다. 단, 이처럼 다양한 재료들을 그저 사실적으로 기술하는 것에 머물러서는 안 되고 꼭 필자의 목소리가 깃들어야 하는 것이다.
문학 장르에서 볼 때는 시처럼 고도로 압축된 언어를 사용하는 것도 아니고 소설처럼 거대한 이야기를 만들 필요도 없다. 하지만 시 못지 않게 아름다운 운율이 마음을 울릴 수 있고, 소설을 능가하는 교훈이나 메시지를 담을 수 있는 것도 수필이다.
또 수필은 누구나 쓸 수 있다. 문학의 문외한이 시나 소설을 쓰겠다고 덤벼들기는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다. 더구나 문학성을 떠난다 하더라도 왠지 모르게 부담감이 앞선다. 하지만 우리가 일기를 쓰듯이 자연스럽게 시작할 수 있는 것이 수필일 것이다.
그런데 붓 가는 대로 쓴다고 다 수필일까. 그저 신변잡기만 늘어놓는다면 차라리 잡기라는 표현이 더 정확할 것이다. 잡기는 다른 사람과 공유하는 것보다는 글쓴이 혼자서 간직하는 쪽이다. 이에 비해 수필은 붓 가는 대로 쓰되 격조가 있고 읽는 사람의 마음에 여운을 남기고 그들의 생각을 일깨우는 것이다.
학창시절 국어 교과서에서 ‘방망이를 깎던 노인’이라는 수필로 만난 윤오영. 방망이를 깎는 일은, 길 가는 사람들이 볼 때는 대수롭지 않게 보이지만 노인에게는 더 없이 더 없이 소중한 생업이자 천직인 것이다. 이 글은 아무리 하찮게 보이더라도 누구에게나 생업은 소중하고 가치 있다는 것을 일깨워 주었다. 책 속에서 다시 읽다 보니 학창시절의 감동이 다시 살아나는 듯했다.
윤오영의 수필은 소재의 다양성이 먼저 눈에 띈다. 달밤, 붕어, 농촌, 찰밥, 염소, 치아, 넥타이……. 어쩌면 이런 재료들로 글을 쓸 수 있을까 싶다가도 읽다 보면 작가의 기발한 생각, 남다른 경험 등이 잘 녹아 있는 것이다. 그래서 부담 없이 또 재미 있게 읽을 수 있었다.
그렇다고 술술 읽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수필 한편의 분량이 불과 몇 쪽이 되지 않지만, 그 속에는 동서고금을 넘나드는 선철들의 말씀과 사상, 따뜻한 인간미와 멋들어진 풍취, 선비처럼 맑은 정신 등이 고루 담겨 있다. 편안하게 다가오면서도 결코 그냥 지나칠 수 없게 만드는 메시지와 사색의 자료를 남겨 주는 것이다. 모름지기 수필은 이렇게 써야 한다고 가르쳐주는 것이다.
그는 ‘곶감과 수필’이란 글에서 수필이 되기 위한 조건으로 문학성을 필수적인 요소로 들고 있다.
“문학 수필과 잡문은 근본적으로 같지 않다. 수필이 잘 되면 문학이요, 잘 못되면 잡문이란 말은 그 성격을 구별 못 한데서 온 말이다. 아무리 글이 유창하고 재미있고 미려해도 문학적 정서에서 출발하지 아니한 것은 잡문이다. 이 말이 거슬리게 들린다면 문장 혹은 일반수필이라고 해도 좋다. 어떻든 문학 작품은 아니다.”
그는 수필을 곶감에 비유한다. 절묘한 비유를 감상해보자.
“감나무에는 아름다운 열매가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그 푸른 열매가. 그러나 그 푸른 열매는 풋감이 아니다. 늦은 가을 풍상을 겪어 모든 나무에 낙엽이 질 때, 푸른 하늘 찬 서리 바람에 비로소 붉게 익은 감을 본다. 감은 아름답다. 이것이 문장이다. 문장은 원래 문채(文彩)란 뜻이니 청적색(靑赤色) 이 문(文)이요, 적백색(赤白色) 이 장(章)이다. 그 글의 찬란하고 화려함을 말함이다.
그러나 감이 곧 곶감은 아니다. 그 고운 껍질을 벗겨야 한다. 문장기(文章氣)를 벗겨야 참 글이 된다는 원중랑(袁中郞)의 말이 옳다. 그 껍질을 벗겨서 시득시득하게 말려야 한다. 여러 번 손질을 해야 한다. 그러면 속에 있던 당분이 겉으로 나타나 하얀 시설(枾雪)이 앉는다. 만일 덜 익었거나 상했으면 시설은 앉지 않는다. 시설이 잘 앉은 다음에 혹은 납작하게 혹은 네모지게 혹은 타원형으로 매만져 놓는다. 이것을 곶감을 접는다고 한다. 감은 오래 가지 못한다. 곶감이라야 오래 간다.
수필은 이렇게 해서 만든 곶감이다. 곶감은 시설은 수필의 생명과도 같은 수필 특유의 것이다. 곶감을 접는다는 것은 수필에 있어서 스타일이 될 것이다. 즉 그 수필, 그 수필 마다의 형태가 될 것이다. 그러면 곶감의 시설은 무엇인가. 이른바 정서적, 신비적 이미지가 아닐까. 이 이미지를 나타내는 신비가 수필을 둘러싸고 있는 놀과 같은 무드다. 수필의 묘는 문제를 제기하되 소설적인 테마가 아니요, 감정을 나타내되 시적 이미지가 아니요, 놀과도 같이 아련한 무드에 쌓인 신비로운 정서에 있는 것이다.”
잡기라도 부지런히 적어 보자. 혹시 언젠가는 수필 같은 글이 한편은 될 수도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