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들의 웃음판 - 한시로 읽는 사계절의 시정
정민 지음, 김점선 그림 / 사계절 / 2005년 5월
평점 :
절판


울 가에선 아내가 방아를 찧고

나무 그늘 아이는 책을 읽는다.

우리 집 못 찾을까 염려 마시게

거기가 다름 아닌 내 집이라네.

장혼(張混, 1759~1828)의 답빈(答賓)

 

오랜만에 소나기가 내렸다. 무척이나 반가웠다. 보름 이상 계속된 무더위와 열대야를 단번에 시원하게 날려주니 고맙지 않을 수 없다.

푹푹 찌는 여름의 도시는 숨막힌다. 더위를 식혀줄 시원한 숲이나 물을 찾기가 점점 힘들어지니 말이다. 물론 에어컨을 팡팡 켜 놓고 사무실에서 틀어박혀서만 지낸다면 더위를 피해갈 수 있다. 그러나 사무실에서만 지낼 수는 없는 노릇이니.

꽃들의 웃음판은 무더위 속 소나기 같은 책이다. ‘한시로 읽는 사계절의 시정이란 부제를 달고 나왔는데, 정민 선생이 봄 꽃, 여름 숲, 가을 잎, 겨울 산으로 나눠 한시를 풀이한 것이다. 거기다 김점선씨가 알록달록한 그림들을 책 안팎에 예쁘게 넣었다. 그래서 정민이란 이름과 예쁜 책 표지를 보고 주저하지 않고 선택했다.

여름 숲편에 있는 위의 시는 시골에서 사는 여유와 낭만이 절로 배어있다. 아내가 방아를 찧고 아들이 나무 아래서 책 읽는 모습을 보며 지내는 시인의 마음을 평화와 여유로 가득 찬 모양이다. 각박한 세상사에 얽매이지 않고 큰 욕심 부리지 않고 자연을 벗삼아 살고 싶다고 누구나 한번쯤 꿈꿀 것이다. 3, 4구는 늘 1, 2구처럼 살고 있다는 시인의 삶은 뒷받침 해줄 뿐 아니라 은근히 손님에게도 자랑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정민 선생이 머리말에서 시는 고도로 농축된 언어다. 금강석처럼 단단하다. 시는 압축 파일이다. 물에 담가 두면 마구 불어나는 미역 같다라고 말한다. 나는 평소 시를 잘 읽지 않는데다 한자투성이인 한시는 더욱 어렵게만 느껴왔다. 그런데 정민 선생의 명쾌한 해설을 읽으면서 한시에 담긴 멋과 해학, 감정과 정신을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어서 즐거웠다.

이번에는 무더위를 식혀줄 방랑 시인 병연(=김삿갓, 1807~1863)이란 시를 감상해 보자. 밤새 함박눈이 내려 온통 은세계로 변한 세상을, 가히 범인들이 생각하지 못한 시선으로 노래하고 있다.

 

하늘 임금 죽으셨나 땅의 임금 죽었는가

푸른 산 나무마다 모두 소복 입었네.

밝은 날 해님더러 조문하게 한다면

집집마다 처마 끝엔 눈물이 뚝뚝 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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