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분
파울로 코엘료 지음, 이상해 옮김 / 문학동네 / 200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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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서점 가에서 불티나게 팔려나가는 책들에 그다지 관심을 가지지 않는 편이다. 이런 책들은 대개 내가 흥미를 가지고 있지 않은 경영, 처세, 판타지나 추리소설 분야가 많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11분’역시 큰 인기를 끌고 있는 모양인데, 별 망설임 없이 구입했다. 그것은 우연히 텔레비전에서 책 소개 프로그램을 보다가 정신병력을 비롯해 젊은 시절 많은 고뇌를 경험하고 뭔가 깨달음을 얻은 듯한 파울로 코엘류라는 작가의 인터뷰를 본 것이 계기가 됐다.

분명 무엇인가 깊은 메시지가 있을 것 같은 기대를 안고 책을 들었다. 우선 성교의 지속시간을 말하는 ‘11분’이라는 제목 자체가 참 엉뚱하기도 하고 신선하기도 하다고 생각했다. 작가는 텔레비전 인터뷰에서 “책은 작가가 쓰는 것이 아니라 저절로 술술 쓰지는 것”이라고 말했는데, 그의 책은 술술 읽혀졌다. 그가 책을 통해 헌사를 했다는 헤밍웨이를 닮았는지 짧고 간결한 문장에다 영화 시퀀스처럼 단락을 나누어 흥미진진하게 이야기를 풀어간다.

더구나 작가의 내공이 부족하면 자칫 삼류소설로 전락할 가능성이 큰 소재-한 브라질 출신 창녀의 모험과 삶-를 성과 사랑에 대한 진지한 이야깃거리로 창조했다. 그것은 흥미로운 이야기 속에 성과 사랑, 인생에 대한 작가 자신의 깨달음과 담론들을 주인공 마리아와 그의 정신적 동반자 랄프의 대화와 생각 속에 간간이 채색했다.

작가는 매춘의 역사를 통해 성을 성스러운 측면과 세속적인 측면으로 나누고, “성의 성스러운 측면에 대해 쓰려면 그것이 왜 그토록 세속화되었는지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밝히고 있다.

어린 시절 성과 사랑에 대해 서툴던 브라질 처녀가 모험을 찾아 스위스 제네바를 찾아간다. 그런데 젊음의 불안과 희망, 혼동과 의지의 모순이 머리 속을 가득 채우고 있는 그녀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창녀의 길이다. 그런데 마리아는 자신의 부푼 꿈을 날려버린 창녀라는 최악의 삶 속에서 끊임없이 고민하고 책을 읽을 읽는다. 그리고 성을 비롯해 인생의 많은 것들을 달관한 랄프라는 젊은 화가를 운명적으로 만남으로서 성과 사랑, 인생의 참된 의미와 희망을 발견하게 된다.

마리아라는 이름은 성의 양면을 동시에 보여준다. 마리아라는 이름 자체는 예수의 어머니, 즉 성녀를 뜻하지만 주인공 마리아는 창녀의 삶을 경험한다. 그래서 작가는 누구나 성의 성스런 측면과 세속적 측면을 가지고 있으며, 결국 성스런 측면에 진실한 의미가 있고 사랑이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저자는 성과 사랑과 인생에 대해 상당히 통달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남녀가 만나 다른 한 사람이 없으면 못살 것 같다가도 결혼을 하고 살아가다 보면 삶에 매몰되는 경향이 있다. 사랑에 대한 절실함이 없고 섹스도 점점 의무감으로 다가오고 그러면서 점차 불행 속으로 접어들게 된다.

작가는 이러한 현실에 경종을 주고 싶어하는 것 같다. 사실 책을 읽으면서 나 스스로도 예전에 비해 사랑에 대해 얼마나 무감각해져 있는지, 얼마나 노력을 안 하고 있는지 되돌아 보게 되었다.

그러나 위의 미덕에도 불구하고 파울로 코엘료의 책은 이것이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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