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정복한 남자 류비셰프
다닐 알렉산드로비치 그라닌 지음, 이상원.조금선 옮김 / 황소자리 / 2004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누구나 바쁘게 사는 시대다. 한가한 사람이 한 사람도 없는 것처럼 느껴질 때도 종종 있다.직장이라는 테두리에 묶여 있는 나 역시 시간이 남아돈다는 것은 좀처럼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과학은 점점 진보하고 세상은 점점 편리하고 효율적으로 바뀌고 있다. 사람이 해야 하는 일 중 많은 부분이 기계가 대신하게 되었고, 가정부 역할을 하는 로봇까지 등장하고 있는데 말이다. 왜 사람들은 시간부족에 시달리는 것일까. 세상이 복잡해지면서 그만큼 해야 할 일들이 많아졌다고도 볼 수 있다. 그렇지만 시간부족에 대한 물음을 완전히 해결해주지는 못할 것 같다.

그런데 ‘시간을 정복한 남자, 류비셰프’의 주인공 러시아 과학자 류비셰프는 어떻게 답할까. 아마도 “아니야. 사람들은 시간을 제대로 활용할 줄 모르고 헛되이 흘려 보내기 때문이야”라고 말할 것이다. 지금까지 내 인생 경험을 통해서 이렇게까지 시간을 제대로 쓰는 사람을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다. 류비셰프는 한마디로 불가사의한 사람이라고 밖에 할 수 없을 것 같다.

러시아 과학자들의 전기를 많이 쓴 다닐 알렉산드로비치 그라닌은 류비셰프의 삶을 파헤치는 과정에서 생기는 의문과 고민들을 솔직하게 고백하면서, 한 꺼풀 한 꺼풀씩 벗겨낸다. 류비셰프는 82세로 세상을 떠날 때 70여 권의 학술 서적과 1만2천5백 장에 달하는 논문과 연구 자료를 남겼다. 더욱이 이들 저작들은 곤충분류학, 과학사, 농학, 유전학, 식물학, 철학, 곤충학, 동물학, 진화론, 무신론 등 수 많은 분야에 걸쳐 있다. 그야말로 진정한 전방위 지식인이다.

그렇다고 평생 연구만 한 것도 아니다. 매일 8시간 이상 충분히 자고 산책과 운동을 한가로이 즐겼다. 단테와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줄줄 외우고 주요 공연과 전시도 빠짐없이 관람했다. 아울러 남들처럼 가족을 부양했고, 세미나나 국채 사업을 위해 한 해에도 몇 달씩 출장을 전국을 순회해야 했다.

놀랍기만 한 그의 삶에 대한 비밀은 바로 ‘시간 통계’ 노트에 담겨 있었다. 류비셰프는 만 26세가 되던 1916년 1월1일부터 1972년 세상을 떠나던 마지막 그날까지 무려 56년 동안 단 하루도 빠짐 없이 자신이 사용한 시간을 기록했다. 독서, 휴식, 산책 등에 소비되는 모든 시간을 계산해 일기에 빠짐없이 적었다. 전쟁이 나거나 병원에 입원했을 때에도 거르는 적이 없었다. 이렇게 해서 월 단위로, 연 단위로 각각의 항목에 사용한 시간에 대해 통계를 냈다. 뿐만 아니라 점차 ‘시간 통계’ 방법을 발전시켜 나중에는 5년, 10년 뒤까지도 정확히 계획을 세워 그대로 실행에 옮겼다. 계획한 시간과 사용한 시간의 오차는 10% 안쪽이었다. 그 이면에는 단 1분도 헛되이 보내지 않기 위해 버스를 타거나 기타를 타는 시간, 회의 시간, 줄을 서 있는 시간조차 아끼려고 했다.

그럼 기계인간이었는가. 인간이 어떻게 이렇게까지 치밀하고 계획적이고 빈틈이 없을 수 있는 것일까. 그런데 그는 자신이 부여한 ‘과학 탐구’라는 위대한 목표를 설정했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쉬지 않고 달려갔다. 그렇다고 학문의 노예가 된 것은 아니다. 그 연구와 노력 속에서 진정한 기쁨을 맛보았으며, 언제나 사람에 대한 애정을 져버리지 않고 낙관적으로 살았다.

한편 그는 세상의 어떤 권위도 인정하지 않았다. 스스로를 허무주의자라고 부른 그는, 제아무리 인정 받은 원칙이나 권위에도 늘 의문을 제기하고 집요하게 오류를 찾아내곤 했다. 그래서 사람들에게서 많은 비난을 받아 종종 위험에 처하기도 했다. 그는 자신을 “현실과 타협하는 자는 미래를 믿지 않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어쩌면 한 인간이 이렇게도 철저하고 계획적인 삶을 살 수 있을까 신기하기도 하고 충격적이기도 하다. 사람이 생각한 것을 고스란히 실행에 옮기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일이지만 가장 어려운 일이다.

류비셰프의 시간 통계 방법을 따라 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라 여겨진다. 그래도 그가 실천했던 일들의 일부분이라도, 또 시간을 아끼고 잘 관리해야 한다는 점이라도 배운다면 커다란 결실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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