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뜬세상의 아름다움 ㅣ 태학산문선 105
정약용 지음, 박무영 옮김 / 태학사 / 2006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정약용 지음.
태학사 펴냄.
2004년 2월 10일 씀.
히말라야산맥 같이 우뚝 솟은 인격, 태평양과 같이 넓은 도량을 지닌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 1762~1836)을 만났다. 다산은, 당파 시절에 다른 당의 사람의 입에서 조선 근세의 단 한 사람, 중국에 내놓아도 밑질 것 없는 사람이라는 고백을 하게 했다고 한다.
그런데 ‘뜬세상의 아름다움’에서 만난 그는 현실 개혁에 대한 불굴의 의지를 불태우며 5백 권이라는 방대한 저서 ‘여유당전서’를 집필한 개혁자이자 위대한 사상가가 아니었다. 19년이란 오랜 세월 동안 유배지에 갇혀 지내면서 고향에 남아 있는 아내의 안부를 걱정하는 따뜻한 남편의, 폐가로 낙인 찍힌 불행한 가문을 지키고 있는 두 아들의 장래를 걱정하는 사려 깊은 아버지의 모습이었다.
책 제목이기도 한 ‘뜬세상의 아름다움’이란 산문에는 유배에 처해 몸은 묶여 있지만 마음은자유롭고 세상을 달관한 듯한 여유를 보여주고 있다. 이 글은 화순에서 30년 넘게 산 ‘나경’이란 노인의 말로 시작된다. 노인은 자신을 ‘부부자(浮浮子=둥둥 떠다니는 사람)라고 하고, 자신이 사는 집을 부암(浮菴=떠다니는 집)이라고 부른다. 이것은 우리의 삶이란 것이 끝임 없이 떠다니는 것이 슬픈 일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런데 노인은 곧 사면되어 고향으로 돌아갈 것으로 보이는 다산이 꽃모종을 내고 약초를 심고 샘을 파고 도랑에 바위를 쌓는 모습을 보며, 무엇 때문에 그렇게 하느냐고 묻는다.
이에 다산은 천하가 온통 떠다니는 것이 자연스런 이치며, 떠다니는 것은 전혀 슬픈 일이 아니라고 말한다. 예를 들어 어부는 떠다니면서 먹을 것을 얻고 상인은 떠다니면서 이익을 얻듯이. 또 덧붙여 “공자 같은 성인도 또한 떠다닐 뜻을 말씀하신 적이 있으셨던 것입니다. 생각해보면, 떠다닌다는 것도 아름답지 않습니까? 물에 떠다니는 것도 그런데, 어찌 땅에 떠 있는 것을 가지고 상심하겠습니까?”라고 되묻는다.
옮긴이는 이 글에 대해 “꽃이 진다고 해서 아름답지 않으며, 꽃이 진다고 해서 사랑하지 않으랴? 지고 말 꽃이기에 더욱 아름답고 더욱 사랑스럽다. 집착할 것도 한탄할 것도 없이, 그저 충분히 가면 될 뿐이다”라고 말한다. 뜬세상은 허무한 것이 아니고 덧없기에 또 아름답다는 것이다. 역설적인 이 글에서 세상을 달관한 다산의 모습이 투영되어 있는 것이다.
책 후반부에는 자신보다 먼저 자식들을 떠나 보내는 한 없는 슬픔과 회한이 토로되어 있고, 두 아들이 올곧게 성장하기를 바라는 아버지의 한결 같은 심정도 절절이 배어 있다. 폐족 처지인 만큼 더욱 학문에 힘쓰고 친척들에게 예의를 다할 것을 간절히 호소하기도 하고, 아들들이 기대에 못 미칠 때에는 엄하게 질타하기도 한다. 또 학문을 넓히기 위해서는 어떤 책을 읽어야 하고 어떻게 공부해야 하는지를 자상하게 가르쳐 주기도 한다. 유배에 처해 있지만 편지를 통해 아들에 대한 교육을 어떻게든 이어가고 있다.
오늘날을 사는 청년들이 자식들에 대한 가르침을 마음으로 읽고 받아들인다면, 거대한 이상을 심어주고 커다란 일깨움을 심어 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