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치무라 간조의 인물일본사
우찌무라 간조 지음, 조양욱 옮김 / 아침바다 / 2003년 12월
평점 :
절판


일본은 1868년 [메이지유신]을 통해 바쿠후(幕府) 체제를 무너뜨리고 통일국가를 형성하게 된다. 이 무렵 서양 여러 나라의 제도와 문물을 받아들이며 근대화에 성공한 일본은 자신감을 가지고 당당히 자신들을 세계에 알리기 시작한다.

일본 기독교의 대표적 지도자인 우치무라 간조(內村鑑三)가 영어로 쓴 [인물 일본사]도 일본을 서양에 알리기 위한 노력의 하나로 볼 수 있다. 우치무라는 퀘이크 교도로 잘 알려진 유명한 사상가 함석헌 선생과 종교인이자 교육자였던 김교신에게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전해진다.

우치무라는 이 책에서 일본 역사를 통틀어 가장 위대하다고 생각하는 다섯 명의 인물의 삶과 사상을 소개하고 있다. 책은 영웅전이라고 보기에는 역사적인 사실과 현실을 바탕으로 인물을 탐구하고 있으며, 평전이라고 하기에는 분량이나 자료가 턱 없이 부족하다. 그래서 영웅전과 평전의 중간쯤 자리잡은 형식으로 쓰여졌다.

다섯 인물은 부패한 기성불교를 파절하고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를 부르며 말법의 민중을 구제하는 길을 연 니치렌(日蓮) 대성인, 메이지유신의 일등공신이자 마지막 사무라이인 사이고 다카모리(西鄕隆盛), 최고의 개혁주의자로 꼽히는 에도시대 말기의 다이묘 우에스기 요잔(上杉鷹山), 에도시대 말기의 탁월한 농정가(農政家) 니노미야 손토쿠(二宮尊德), 일본 양명학의 시조로 일컬어지는 최고의 유학자 나카에 도쥬(中江藤樹)다.

먼저 니치렌 대성인.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우치무라가 독실한 기독교인이었지만 니치렌 대성인의 삶과 사상에 대해 놀라울 정도의 이해를 가지고 있으며, 존경의 마음도 감추지 않고 있는 점이다. 우치무라는 불교 역사에서 말법시대에 접어들어 일본 불교의 온갖 부패 속에서 석존의 예언대로 니치렌 대성인이 탄생해 생명을 걸고 홀로 권력과 싸우며 민중을 위해 일어선 점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

우치무라는 수차례에 걸친 대난을 겪으면서도 민중을 위한 투쟁을 멈추지 않았던 대성인의 삶을 이야기하며 {대한 사업이란 항상 이런 식으로 탄생하는 법이다. 불굴의 정신과 그것을 탄압하는 세상, 그 사이에 영원히 위대해질 무엇인가가 탄생하게 된다. 20세기 사람들은 이 인물의 가르침은 차치하더라도, 그의 신앙과 용기를 먼저 배워야 하리라}라며 힘주어 말한다.

사이고 다카모리. 젊은 시절부터 양명학의 진보적이고 적극적인 가르침에 심취한 그는 세계적인 시야를 가지고 일본을 유럽과 어깨를 견줄 수 있는 국가로 만들기 위해 온 힘을 기울였고, 그 결과 메이지 유신을 통해 일본은 통일국가의 기반을 닦았다. 치명적인 과오는 일본의 국익을 위해서 한반도 정복을 주장한 것을 비롯해 일본의 침략과 팽창을 부추긴 점이다. 그러나 개인적인 욕망이 없고 인재의 중요성을 꿰뚫어 본 점 등을 높이 평가할 수 있다.

우에스기 요잔. 누구보다도 철저하게 사제(師弟)의 길을 지킨 우에스기 요잔은 에도시대 말기에 쇠락해가는 우에스기 가문을 개혁을 통해 다시 부흥시켰다. 백성의 행복을 정치의 최우선 과제로 삼은 그는 스스로 검약을 실천했으며 봉건제 사회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민주적인 사고방식과 행정으로 백성들에게 풍요로운 삶과 행복을 되돌려 주었다. 더욱이 지도자로서 조금도 흠잡을 데 없는 인간성으로 평생 백성들의 존경을 받았으며, 죽음의 순간에도 수만 명의 애도 행렬이 거리에 넘쳐흘렀다고 한다.

나카야마 손토쿠. 가난한 농민의 자식으로 태어났지만 오직 지극 정성으로 황무지를 개간하며 몰락한 집안을 일으켜 세웠으며, 해박한 농업지식을 바탕으로 일본 농촌을 풍요롭게 만들었다.

나카에 도쥬. 일본 양명학의 시조인 그는 스승과 부모, 주군을 깊이 존경해야 할 삼위일체로 삼았다. 신분 차이를 넘어선 인간의 내면적 평등성을 강조함으로써 농민들로부터 성인으로 추앙 받았다. 일곱 살 때부터 ‘四書’를 공부한 그는 많은 저술과 강의로 민중에게 인간의 길을 가르쳤으며, 학자는 이름이나 학문이 의해서가 아니라 덕을 갖추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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