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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돌려다오 ㅣ 태학산문선 110
이용휴.이가환 지음, 안대회 옮김 / 태학사 / 2003년 11월
평점 :
품절
이용휴이가환 지음.
태학사 펴냄.
2003년 11월 18일 씀.
경제 불황과 대선 비자금 문제, 테러 위협과 이라크 파병 등 여러 가지 국내외적 문제를 둘러싼 논쟁이 뜨거운 때다. 어느 문제 하나 명쾌한 결론이 나지 않는 채 문제의 본질을 겉돌고 있는 모양새다. 시끄럽고 혼란스러운 현실 속에서 문득 조선시대 사람들은 어떤 고민을 하고 살았을까 생각해 본다.
그래서 여기에 18세기를 대표하는 문사(文士)들을 들먹여 본다. 기라성 같은 문사들이 즐비한 18세기 문단에서 작가로서 명성을 날린 이용휴(李用休, 1708~1782)와 이가환(李家煥, 1742~1801) 부자(父子). 인간과 세상의 본질을 예리하게 꿰뚫고 있는 이들의 빼어난 산문을 통해 우리가 잊고 사는 조선 후기 사람들의 고민을 들어보고, 이들의 글을 거울 삼아 오늘날의 혼탁한 현실을 비추어 볼 수 있을 것이다.
조선 후기 산문사에서 우뚝 솟은 성취를 일구어낸 이용휴, 이가환 부자는 일반에게는 낯설다. 부자는 당시 작가로서 명성을 날렸지만, 이용휴는 재야문단에 몸담았고 아들 이가환은 역적으로 몰려 죽임을 당한 이후 문단 전면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그러다 최근에서야 재평가 받기에 이르렀다.
이들의 산문은 매우 강렬한 메시지와 산문작법을 가지고 있다. 전업작가인 이용휴는 새로운 변화를 갈망하여 기존 산문에 대한 반발, 독특한 개성 추구, 새로운 산문의 창조를 실험했다. 성호 이익(李瀷)의 조카인 그는 경세학을 학문의 바탕으로 삼았으며 양명학, 불교, 도교에도 비상한 관심을 기울였다. 이가환은 관계에 진출했기 때문에 문학적 성취는 아버지에 비해 다소 떨어지지만, 그 수준은 어떠한 작가에 비해서도 우수하다.
정약용은 이가환의 묘지명에서 “혜환(이용휴의 호)의 명성이 한 시대의 으뜸이어서, 무릇 글을 새롭게 바꾸고자 수련하는 자들이 모두 와서 수정을 받았다. 몸은 포의(布衣)의 반열에 있으면서 손으로는 문원(文苑)의 권력을 30여 년 동안 쥐었으니, 자고 이래로 없던 일이다”라고 평가하고 있다.
‘나를 돌려다오’에는 이들 부자의 산문을 50여 편 가려 뽑아 원문과 함께 실려 있다. 이용휴는 일관되게 인간다운 삶을 말하고자 했는데, 그 내용은 신분이 낮은 사람에게서 발견되는 인간미, 중인 작가나 천민 작가에서 발견되는 천재성, 들에 사는 선비들의 경륜, 어린 아이의 순수성 등을 두루 다루고 있다.
이용휴의 ‘차거기(此居記)’라는 제목의 산문은 ‘기(寄)’라는 한 글자로 표현되는 그만의 글쓰기가 잘 드러나 있다.
“이 집은 이 사람이 사는 이곳이다. 이곳은 바로 이 나라 이 고을 이 마을이고, 이 사람은 나이 젊고 식견이 높으며 옛글을 좋아하는 기이한 선비다. 만약 그를 찾으려거든 이 기문(記文)으로 들어오라! 그렇지 않으면 비록 쇠신이 뚫어져라 대지를 두루 돌아다녀도 끝내 찾지 못할 것이다.”
★ 만족함을 아는 자는 하늘이 가난하게 만들기 못하고, 부귀를 추구하지 않는 자는 하늘도 천하게 만들지 못한다. 근심과 고생을 참는 일은 쉬우나 환락과 즐거움을 참는 일은 어려우며, 성냄과 욕지거리를 참는 일은 쉬우나 기쁨과 웃음을 참는 것은 어렵다.
남을 헐뜯는 자는 스스로를 헐뜯는 것이고, 남을 성공하게 하는 자는 자기도 성공한다.(59쪽)
★ 남의 견해를 세운 사람은 비루(鄙陋)하므로 논의거리도 되지 않거니와, 제 스스로 견해를 만들어 견해를 세운 사람이라 할지라도 완고함과 편견이 개입되지 않아야 참된 견해가 만들어진다.(9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