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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의 충돌
새뮤얼 헌팅턴 지음, 이희재 옮김 / 김영사 / 1997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새뮤얼 헌팅턴은 '문명과 문명의 충돌은 세계 평화에 가장 큰 위협이 되며, 문명에 바탕을 둔 국제 질서만이 가장 확실한 방어수단'이라고 주장한다. 저자는 서문에서 '이 책은 사회과학서가 아니라 냉전 이후 세계 정세의 변화를 해석하는 해석틀을 제공한다'고 밝혔다. 그의 말대로 이 책은 객관성을 담보하지 않으며, 미국 정치학회 회장과 전략문제연구소장을 맡고 있는 그의 경력이 고스란히 반영돼 있다고 볼 수 있다.
저자는 냉전 종식으로 세계 정치가 다극화, 다문명화되었다고 말하고 있으며, 현재 세계의 주요 문명은 중화, 일본, 흰두, 이슬람, 정교, 서구, 라틴아메리카, 아프리카 등으로 나누어져 있다고 본다. 또 18세기 이후 급속한 산업화를 무기로 세계를 주도해온 서구가 쇠퇴하고 있으며, 인구의 폭발적인 증가를 보이는 이슬람 국가들과 경제적 급성장을 앞세운 아시아의 성장을 주목했다. 그리고 이러한 변화가 세력균형에 위협을 가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이러한 논지 위에 위기에 이슬람 국가들과 중국의 부상이 세계 정세에 커다란 위협으로 작용한다고 강변한 뒤 쇠락하고 있는 서구가 어떻게 하면 다시 세계 정치의 주도권을 쥘 수 있는가에 대해 열변을 토한다.
우선 나름대로 냉전 이후의 세계정세를 체계적으로 분석한 점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 그의 논리만 따른다면 세계 정세는 명확하게 보이는 듯 하기도 하다. 그러나 그는 '서구 중심주의'라는 비난에서 절대로 자유로울 수없을 것 같다. 글의 논조가 거창한 세계 정세 분석에서 출발해서 결국은 서구와 그 맹주인 미국의 강력한 부활을 웅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더해서 이슬람을 오직 피를 부르는 문명으로 매도하고 있다. 사실 이슬람 민중은 평화를 원하는 사람들이 더 많은 것이 사실인데, 이 책은 할리우드 영화에서 사악하게 그려지는 이슬람의 얼굴을 고스란히 옮겨 놓았다.
인류 역사에서 기독교가 얼마나 많은 피를 불렀던가. 그런데 저자는 그 책임을 이슬람교에 슬쩍 전가하고 있다. 역사는 분명 특정시대가 아니라 통시대적으로 파악되고 평가되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헌팅튼은 서구 옹호주의에 열을 올린 나머지 그것을 간과한 것이다.
끝으로 저자가 문명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종교와 언어라고 했다. 그런데 저자는 크리스트교와 이슬람교를 주목하는데 반해 불교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고 있다. 인도에서 발상해서 중국, 한국, 일본 등지로 전파된 불교의 역사는 평화의 역사였다. 지금도 진실한 인간의 부흥을 외치는 불교는 근본적으로 평화주의에 입각해 있다. 저자가 통시대적인 고찰에서 냉전 후 세계의 정세를 제대로 분석하기 위해서는 평화를 낳는 불교라는 거대한 종교를 그냥 흘려 보내서는 안 될 것이라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