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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의 공존 - 하랄트 뮐러의 反 헌팅턴 구성
하랄트 뮐러 지음, 이영희 옮김 / 푸른숲 / 200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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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새뮤얼 헌팅턴의 <문명의 충돌>을 '조야한 이론'으로 만들어 버린 하랄터 뮐러의 식견에 먼저 찬사를 보내고 싶다. 정치적인 냄새를 농후하게 풍기는 헌팅턴이 미국을 사수하기 위해 지극히 단순한 공격을 일삼는데 대해 누구라도 반박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뮐러처럼 일목요연하고 체계적으로 헌팅턴의 두 손을 들게 하지는 못할 것 같다.
뮐러는 줄곧 헌팅턴을 오류를 지적하고 폭 넓고 깊이 있는 시각에서 세계를 바라보고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논지를 전개하고 있다. 헌팅턴이 손에 잡히지 않는 복잡한 세계의 조류를 단순하고 거대한 이론으로 도식화한데 대해 '비판적 합리주의'도 모르는, 검증 작업을 제대로 거치지 않는 이론이라고 따끔한 일침을 가한다.
그 다음에는 서구 문명의 정체성에 대한 논의를 시작으로 아시아의 역동성, 이슬람의 여려 면모들, 러시아와 라틴아메리카에 이르기까지 철저한 검토를 거친다. 여기서는 헌팅턴이 놓쳤던 부분들을 아주 세밀하게 탐구한 점이 돋보인다.
결론에서는 세계 정치의 발전 방향에 대한 공감할만한 비전을 제시하고 있다. 그것은 오랜 민주주의의 토양과 발빠른 근대화를 통해 열린 사회와 정치 체제를 발전시켜온 서구가 타 문명에 대해 적극적으로 배우고 도와가야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유엔과 같은 국제기구의 강화, 국경을 뛰어넘고 공동의 이이익을 추구하는 NGO들의 눈부신 활약, 인류의 반을 차지하는 여성에게 크다란 기대를 걸고 있다. 아울러 여러 문명들의 사상체계와 가치체계들 간의 공통점과 근본적인 차이점을 탐구하며, 문명간 대화의 중요성을 역설한 점은 그의 예리한 눈매를 확신케한다.
아쉬운 부분이 있다면 뮐러 역시, 자신의 태생을 벗어날 수 없는지 서구에게 너무나 큰 주도권을 주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서구가 강자의 입장인 것은 분명하지만 서구가 경제와 정치 체제 외의 분야에서도 우수함을 보여주고 있는지는 의문을 제기하게 만든다. 뮐러가 자신의 말처럼 다른 문명에 대한 심층적인 공부를 하며, 문명과 사회를 뛰어넘어 인간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더한다면 그의 학설은 쉽게 끄지지 않는 횃불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