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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소가 끄는 수레 - 창비소설집
박범신 지음 / 창비 / 1997년 10월
평점 :
품절
오랫만에 읽어 본 우리 소설이다. 박범신이라는 작가는 익히 알고 있었지만 그의 책은 처음이다. 우선 책 제목이 참 이채롭다. 그 흔한 사랑이야기도 아닌 것 같고 뭔가 철학적인 사색을 담은 느낌을 줬다. 그래서 그런지 읽기가 쉽지만은 않았다. 우선 책의 핵심적 소재인 '흰소가 끄는 수레'가 무엇인지 말해봐야 할 것 같다. 책 제목은 법화경의 유명한 설화에서 유래된다. 여기 인도의 부유한 장자가 있다. 장자가 집을 비운 사이에 집에 불이 났다. 집 안에는 아이들이 불난 줄 모르고 뛰어 놀고 있다. 장자는 빨리 나오라고 아이들에게 소리쳤지만 아이들은 노는데 정신이 빠져 나올 생각을 않는다.
그래서 장자는 아이들을 구해내기 위해 집밖에 소가 끄는 수레, 양이 끄는 수레, 사슴이 끄는 수레가 있다고 말한다. 이렇게 해서 아이들을 무사히 구한 장자는 아이들에게 대백우거를 선물하고 아이들은 즐거워 한다. 이 설화에서 장자는 부처, 아이들은 중생, 불타는 집은 생노병사로 가득찬 사바세계를 말한다. 이 책은 수 많은 베스트셀러를 썼던 작가가 50대에 접어들어 문학적 상상력을 잃고 괴로워하다 결국 절필을 선언하면서 시작된다. 언어의 마술사로 불리워질 수 있는 작가에게도 상상력이란 등불이 꺼지는 것은 인생에 있어서 암흑이다. 작가는 암흑을 헤쳐나가기 위해 떠돌고 지난날들을 되돌아본다. 그리고 이러한 고행을 통해 다시 펜을 들게 된다.
책에서는 작가의 이야기를 통해 인간의 한계성을 보여준다. 그리고 대백우거의 필요성을 암시하는 것 같다. 인간이란 운명을 타고난 이상 어쩔 수 없이 생노병사의 번뇌를 겪어야 하고 또 그것과 싸워야 하고. 하지만 대백우거라는 우주 생명을 꿰뚫는 깨달음을 얻을 때 인간의 근본적인 고뇌는 해결될 것이라고 불법은 가르치고 있다. 책에서는 작가의 지나칠 정도의 솔직함과 더불어 어두운 문학세계를 만날 수 있었다. 작가도 대백우거를 화두로 삼는데 그치지 말고 진정으로 만날 수 있으면 좋으련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