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터리 아레나
후카미 레이이치로 지음, 김은모 옮김 / 엘릭시르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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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테크닉이다. 감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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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67
찬호께이 지음, 강초아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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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추리독자들을 만족시킬 만한 완성도. 좋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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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스머신
노리즈키 린타로 지음, 박재현 옮김 / 반니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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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르는 일종의 규칙이다. 미스터리 장르는 그중에서도 가장 강력한 규칙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 강력한 규칙들은 대부분 세계 1, 2차 대전을 전후한 시기 영국에서 만들어졌다. 현실을 기반으로 하는 미스터리 장르의 특징 상 강력한 규칙들은 역으로 장르 자체를 옭아맸다. 우리가 현재 미스터리라고 부르는 작품들은 이러한 규칙들의 흐릿한 기억일 뿐이다.

 

그래도 여전히 그 강박적인 규칙들에 매료된 작가들이 있었다. 90년대 신본격 작가들이 그러했고 노리즈키 린타로는 그중에서도 가장 대표할 만한 작가이다. 그는 미스터리 구조에 관해서고 고민하고, 그 고민의 지점을 작품에 풀어내는 거의 유일한 작가라고 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 <잘린 머리에게 물어봐>를 읽고 감탄한 적이 있다. 작품은 탐정의 개입 이후 사건이 변질되는 방향성을 동력으로 삼고 있는데, 이는 작가가 꾸준히 연구했던 ‘후기 퀸의 문제와 연결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그건 그렇고 의아하긴 하다. ‘이 미스터리가 대단해이 미스터리가 읽고 싶어에서 1위를 차지한 <녹스머신>은 미스터리가 아니기 때문이다(작가의 말에 그렇게 써 있다). SF 미스터리도 아니다. (가능한 용어일지는 모르겠지만) 미스터리 SF도 아니다. 간략하게 말하면 <녹스머신>은 노리즈키 린타로의 관심사를 (엄격하지 않은) 미스터리의 방법론으로 풀어낸 SF이다. 노리즈키 린타로의 관심사는 무엇이냐고? 당연히 규칙들이 또렷하게 각인된 미스터리이다.

 

기발한 발상으로 만들어진 이 장르적 모호함은 다양한 해석을 낳았나 보다. 그래도 퍼즐 추리소설에 대한 연구와 예찬이 극한에 이르면 어쩔 수 없이 SF의 지평선으로 넘어가게 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기막힌 예라고 쓰인 표4의 문구는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장르는 그저 섞일 뿐, 그렇게까지 종속적이지도 않고, 단계적으로 진화하지도 않는다.


<녹스머신>은 진입 장벽이 상당히 높다. SF와 미스터리 장르의 규칙에 어느 정도 익숙해야 하는데다가, 시간여행을 가능케 하는 물리학적 지식은 물론, 미스터리에 대한 서지학적 지식마저 요구하고 있다. (여기서 번역가에게 아낌없는 찬사를 보낸다.) 특별한 편견이 없는 너그러운 장르 독자라도 장단을 정확하게 맞추기는 꽤 까다로워 보인다.


그럼에도 <녹스머신>은 매우 흥미롭다. 개인적으로 SF에 대한 소양은 거의 없지만, 작가의 말처럼 이 황당무계한 이야기들을 풀어내기보다 주워 담는 방향으로 짜여 있기 때문이다. 미스터리 작가의 천성으로 쓴 작품이기에 미스터리 독자의 천성으로 즐길 수 있었달까.

 

단편 녹스머신은 녹스의 10계 중 불합리해 보이는 5, “탐정소설에 중국인을 등장시켜서는 안 된다.”에 착안한 작품이다. 마지막 단편 <논리증발>은 같은 구성이며 퀸의 국명 시리즈 중 유일하게 독자에의 도전이 없는 <샴 쌍둥이 미스터리>에 주목한다. 노리즈키 린타로는 미스터리 역사의 미스터리한 지점을 시간여행과 BAP 아바타라는 개념을 통해 해명하고자 한다. 현란하게 터지는 과학 기술의 폭죽 속에서도 작품의 처음과 끝은 기묘하게 잘 맞아떨어지며, <1928년의 영국 추리소설 걸작집>, <꼬리 아홉 고양이> 같이 미스터리 독자라면 절로 미소가 지어지는 부분이 인상적이다.

 

들러리 클럽의 음모는 에드거 앨런 포의 이후 대대로 왓슨 역을 맡은 이들이, 경직된 황금기 추리소설에서 새로운 흐름을 끄집어낸 애거서 크리스티에 대항한다는 내용으로, 작가의 말을 빌리면 픽션의 작중 인물에게 말살당한 위기에 처한 작가가 픽션을 통해 복수한다는 일종의 메타 픽션이다. 미스터리 평론가이기도 한 노리즈키 린타로의 해박한 서지학적 지식이 꼼꼼하게 펼쳐지는데, 애거서 크리스티의 미스터리한 실종 사건까지 한데 몰아넣어 꽤 흥미로운 결과를 도출해낸다. 황금기 미스터리에 대한 지식이 있는 독자라면 사악한 밴 다인을 보며 크게 웃을지도 모르겠다. 무엇보다 재미있는 부분은 들러리 of 들러리로 아서 헤이스팅스 대위를 선정했다는 점이다. 가련하다....

 

마지막으로 미스터리 장르의 색이 거의 없는 바벨의 감옥은 일본 세로줄 편집을 토대로 이야기가 짜였기 때문에 한국어 번역으로는 불가능하지 않았나 싶다.

 

1. 개인적으로 ‘NO Chinaman’의 의미는 선입견에 대한 항목이라고 생각한다. 아마 녹스 주교는 대부분의 독자가 선입견을 가지고 있는 인종을 등장인물로 내세우면 창작자든 독자든 공정한 게임을 펼치기는 어렵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2. 또 개인적으로, 나는 엘러리 퀸의 <샴 쌍둥이 미스터리>독자에의 도전이 없는 이유를 간단하게 이해한다. 1932년부터 1933년 사이에 엘러리 퀸은 바너비 로스 명의로 드루리 레인 시리즈를 발표했다. 그 두 해 사이에, 장편만 8권을 출발했고, 단편도 썼으며, <미스터리 리그>라는 잡지도 만들었다. 또 출판사와 사이가 그렇게 돈독하지도 않았다. 창작 기간을 고려하면 두 사촌형제가 경이로운 속도로 써내려간 것인데(대공황 때문에 생계형 작가로....), 당연히 둘의 공동 창작이 느슨해졌을 것이다. 둘 중의 한 명이 깜박했다고 해도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다.

 

3. <육교 살인 사건>을 보고 싶다.

 

원문 링크 http://www.howmystery.com/spotlight/242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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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육관의 살인 - 제22회 아유카와 데쓰야 상 수상작 우라조메 덴마 시리즈
아오사키 유고 지음, 이연승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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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영합니다. 헤이세이의 엘러리 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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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소설 - 그 기원과 매혹
김용언 지음 / 강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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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소설, 그 기원과 매혹>은 논문 형식의 저작이다. 초록이 있기 때문에 개요를 파악하기에는 어렵지 않았지만, 형식상 문헌 조사나 이론적 배경이 선행돼야 하기 때문에, 결코 나같은 조악한 독자가 수월하게 읽을 만한 텍스트는 아니었다.

저자는 영국의 19세기 ‘추리소설’과 미국의 20세기 ‘하드보일드 소설’을 ‘범죄소설’로 통칭하고 그 둘의 생성과 원리를 한데 엮을 만한 이론을 도출해낸다. 그것은 범죄소설과 엔트로피의 유비 관계이다. 저자는 이러한 가설을 위해 각각의 사회를 라이프니츠의 ‘모나드’로 설정하고, ‘맥스웰의 도깨비’라는 개념을 탐정에 대입함으로써 풀어나간다. 이 과감하고도 신선한 가설을 위해 저자는 일반적인 역사는 물론, 사상사, 자연사, 경제사 등의 역사의 세세한 갈래를 세밀하게 파헤친다. 

저자가 말하는 ‘범죄소설’의 사회적 속성 즉, 도시 문학으로서의 성격은 그리 낯선 개념은 아니다. 선행된 연구도 있었고 많은 작품을 읽은 독자라면 어렴풋하게나마 짐작할 수 있는 면이다. 하지만 단순히 말하는 것과 이론적 배경에서 증명하는 것은 엄청난 차이가 있는 법. <범죄소설, 그 기원과 매혹>은 그 거대한 간극을 엄밀하게 보여준다. 게다가 열역학법칙을 통한 범죄소설의 해석은 무척이나 흥미진진하다(‘유레카’라고 외치는 저자의 모습이 보이는 듯하다). 

하지만 아쉬운 점도 있다. 일단 ‘범죄소설’(나는 ‘미스터리’라고 칭한다)의 형태가 명확하지 않다. 생성과 원리를 설명하는 데 다소 치우쳐 있기 때문에 ‘범죄소설’이 무엇이고 어떻게 ‘장르’로서 존재하는지 분명하게 와 닿지 않는다. 연구자에 따라 ‘범죄소설’의 정의는 차이가 있고 그 기원도 다르다. 또 사례로 든 개별 작품이 너무 적다. ‘셜록 홈스 시리즈’와 대실 해밋, 레이먼드 챈들러의 작품들이 그 시대의 모더니티와 범죄소설의 역학 관계를 드러내는 가장 일반적인 작품이겠지만, 그것들이 모두를 설명하기에는 다소 부족하다고 생각된다. 

이외 독자 수용론적인 입장, 심리적인 측면에 대한 설명이 거의 없었다. 뭐, 이건 ‘미스터리는 욕망의 발현’이라고 생각해왔기 때문에 순수한 개인적인 욕심이다. 마지막으로 몇몇 작품의 결말이 너무나 쉽게 노출돼 있다는 점. 목표로 한 독자가 다르기 때문이고 가설을 전개해나감에 있어 필연적인 일이겠지만, 조심하고 또 조심해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아쉽다고 느낀 부분은 내가 이해하지 못한 부분일 가능성이 크다. 이런 엄격한 글을 읽고 평하기에 나는 매우 부족하다.

사실, 이 텍스트를 읽으면서 가장 감동했던 건 앞으로 되돌아가 이 부분을 다시 읽을 때였다. 

“하지만 여기서 제시하는 다소 많은 정보들의 융단 폭격 속에서 나름대로 질서의 흔적을 찾아낼 수 있다면, 범죄소설을 백안시하고 진부한 비난만 되풀이하는 외부의 시선을 받아칠 수 있는 최소한의 근거를 마련할 수 있지 않을까.”

좋아하는 것에 대한 최선의 행위는, 그것에 의미를 부여하는 일이다. 그 의미들이 모여 어떤 가치를 만들어낼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선善이다.

저자는 ‘범죄소설’에 의미를 부여했다. 그것은 좋아하기 때문이다. 


http://www.howmystery.com/zeroboard/zboard.php?id=c3&no=42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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