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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스머신
노리즈키 린타로 지음, 박재현 옮김 / 반니 / 2014년 12월
평점 :
품절
장르는 일종의 규칙이다. 미스터리 장르는 그중에서도
가장 강력한 규칙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 강력한 규칙들은
대부분 세계 1, 2차 대전을 전후한 시기
영국에서 만들어졌다. 현실을 기반으로 하는
미스터리 장르의 특징 상 강력한 규칙들은 역으로 장르 자체를 옭아맸다. 우리가 현재 미스터리라고
부르는 작품들은 이러한 규칙들의 흐릿한 기억일 뿐이다.
그래도 여전히 그 강박적인 규칙들에 매료된 작가들이
있었다. 90년대 신본격 작가들이
그러했고 노리즈키 린타로는 그중에서도 가장 대표할 만한 작가이다. 그는 미스터리 구조에
관해서고 고민하고, 그 고민의 지점을 작품에
풀어내는 거의 유일한 작가라고 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
<잘린 머리에게
물어봐>를 읽고 감탄한 적이
있다. 작품은 탐정의 개입 이후
사건이 변질되는 방향성을 동력으로 삼고 있는데, 이는 작가가 꾸준히 연구했던
‘후기 퀸의
문제’와 연결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그건 그렇고 의아하긴 하다. ‘이 미스터리가
대단해’와 ‘이 미스터리가 읽고
싶어’에서 1위를 차지한
<녹스머신>은 미스터리가 아니기
때문이다(작가의 말에 그렇게 써
있다). SF 미스터리도
아니다. (가능한 용어일지는
모르겠지만) 미스터리
SF도
아니다. 간략하게 말하면
<녹스머신>은 노리즈키 린타로의
관심사를 (엄격하지
않은) 미스터리의 방법론으로 풀어낸
SF이다. 노리즈키 린타로의 관심사는
무엇이냐고? 당연히 규칙들이 또렷하게
각인된 미스터리이다.
기발한 발상으로 만들어진 이 장르적 모호함은 다양한 해석을 낳았나
보다. 그래도
‘퍼즐 추리소설에 대한 연구와
예찬이 극한에 이르면 어쩔 수 없이 SF의 지평선으로 넘어가게
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기막힌 예’라고 쓰인
표4의 문구는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장르는 그저 섞일
뿐, 그렇게까지 종속적이지도
않고, 단계적으로 진화하지도
않는다.
<녹스머신>은 진입 장벽이 상당히
높다. SF와 미스터리 장르의
규칙에 어느 정도 익숙해야 하는데다가, 시간여행을 가능케 하는
물리학적 지식은 물론, 미스터리에 대한 서지학적
지식마저 요구하고 있다. (여기서 번역가에게 아낌없는
찬사를 보낸다.) 특별한 편견이 없는
너그러운 장르 독자라도 장단을 정확하게 맞추기는 꽤 까다로워 보인다.
그럼에도 <녹스머신>은 매우
흥미롭다. 개인적으로
SF에 대한 소양은 거의
없지만, 작가의 말처럼 이 황당무계한
이야기들을 풀어내기보다 주워 담는 방향으로 짜여 있기 때문이다. 미스터리 작가의 천성으로 쓴
작품이기에 미스터리 독자의 천성으로 즐길 수 있었달까.
단편 ‘녹스머신’은 녹스의
10계 중 불합리해 보이는
5계, “탐정소설에 중국인을
등장시켜서는 안 된다.”에 착안한
작품이다. 마지막 단편
<논리증발>은 같은 구성이며 퀸의
국명 시리즈 중 유일하게 ‘독자에의
도전’이 없는
<샴 쌍둥이
미스터리>에
주목한다. 노리즈키 린타로는 미스터리
역사의 ‘미스터리한
지점’을 시간여행과
BAP 아바타라는 개념을 통해
해명하고자 한다. 현란하게 터지는 과학 기술의
폭죽 속에서도 작품의 처음과 끝은 기묘하게 잘 맞아떨어지며, <1928년의 영국
추리소설 걸작집>, <꼬리 아홉
고양이> 같이 미스터리 독자라면
절로 미소가 지어지는 부분이 인상적이다.
‘들러리 클럽의
음모’는 에드거 앨런 포의
‘나’ 이후 대대로 왓슨 역을 맡은
이들이, 경직된 황금기 추리소설에서
새로운 흐름을 끄집어낸 애거서 크리스티에 대항한다는 내용으로, 작가의 말을 빌리면
‘픽션의 작중 인물에게 말살당한
위기에 처한 작가가 픽션을 통해 복수한다는 일종의 메타 픽션’이다. 미스터리 평론가이기도 한
노리즈키 린타로의 해박한 서지학적 지식이 꼼꼼하게 펼쳐지는데, 애거서 크리스티의 미스터리한
실종 사건까지 한데 몰아넣어 꽤 흥미로운 결과를 도출해낸다. 황금기 미스터리에 대한
지식이 있는 독자라면 사악한 밴 다인을 보며 크게 웃을지도 모르겠다. 무엇보다 재미있는 부분은
‘들러리 of 들러리’로 아서 헤이스팅스 대위를
선정했다는 점이다. 가련하다....
마지막으로 미스터리 장르의 색이 거의 없는 ‘바벨의
감옥’은 일본 세로줄 편집을 토대로
이야기가 짜였기 때문에 한국어 번역으로는 불가능하지 않았나 싶다.
덧 1. 개인적으로
‘NO Chinaman’의
의미는 선입견에 대한 항목이라고 생각한다. 아마 녹스 주교는 대부분의
독자가 선입견을 가지고 있는 ‘인종’을 등장인물로 내세우면
창작자든 독자든 공정한 게임을 펼치기는 어렵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덧 2. 또
개인적으로, 나는 엘러리 퀸의
<샴 쌍둥이
미스터리>에
‘독자에의
도전’이 없는 이유를 간단하게
이해한다. 1932년부터
1933년 사이에 엘러리 퀸은
바너비 로스 명의로 ‘드루리 레인
시리즈’를
발표했다. 그 두 해
사이에, 장편만
8권을
출발했고, 단편도
썼으며, <미스터리
리그>라는 잡지도
만들었다. 또 출판사와 사이가 그렇게
돈독하지도 않았다. 창작 기간을 고려하면 두
사촌형제가 경이로운 속도로 써내려간 것인데(대공황 때문에 생계형
작가로....), 당연히 둘의 공동
창작이 느슨해졌을 것이다. 둘 중의 한 명이 깜박했다고
해도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다.
덧 3. <육교 살인
사건>을 보고
싶다.
원문 링크 http://www.howmystery.com/spotlight/2425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