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이보그 그녀 - Cyborg she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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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곽재용 감독의 <싸이보그 그녀>는 일본판과 한국판이 다르다. 아직 영화를 못 본 사람이라면 일본판을 먼저 보기를 권하고 싶다. 아니, 일본판을 봤다면 한국판은 보지 않아도 좋을 것 같다. 나는 한국판은 봤지만, 일본판은 아직 못 봤다. 하지만 영화에 대해 제대로 알려면 일본판을 구해봐야 할 것 같다.   

   한국판 <싸이보그 그녀>는 한국 관객의 수준을 무시한 듯한 편집을 보여주고 있다. 편집상의 가장 큰 문제점은 관객이 몰입할 수 없게끔 만들어놓았다는 것이다. 처음부터 나레이션으로 이야기를 도입한 영화는 싸이보그 그녀로 인한 여러가지 에피소드, 그리고 과잉된 서정적인 영상과 음악으로 이야기를 끌어나가지만 그뿐이다. 관객의 입장에서는 왜 저 둘이 서로를 좋아하고, 갈등하는지에 대해 이해할 수는 있지만, 몰입할 수는 없다. 일단, 싸이보그 그녀가 오기 전 진짜 그녀와 남자주인공이 서로를 좋아하는 과정은 너무나 간략하게 넘어갔기 때문에 스토리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사실을 전달받는데 그칠 뿐이다. 그리고 진짜 싸이보그 그녀가 오고나서 벌어지는 에피소드들 역시 에피소드에 머물고 있다. 로봇인 여자와 인간 남자가 서로 관계를 맺어가는 과정 속에 놓여있는 에피소드들이 아니다. 오히려 그 과정 속에서 심각하게 발생할만한 에피소드들은 모두 놓치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싸이보그 그녀'가 인간 사회를 학습하고 체화해 가는 것으로 설계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과정이 대다수 생략되어 있다는 점이다. 그렇기 때문에 인물들은 너무 쉽게 서로를 좋아하고, 너무 쉽게 화를 내고, 너무 쉽게 슬퍼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이야기들이 연결되지 못하고 조각조각으로만 나열되고 있다. 남자 주인공 지로가 어린 시절 고향으로 돌아가는 장면 역시 뜬끔없이 뮤직비디오가 연상되며 서정의 과잉으로밖에 보일 수 없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남자주인공에게서 별 매력을 못 느꼈는데, 답답하기도 하고, 어리숙한 캐릭터다. (그런 캐릭터가 일본에서는 순수한 이미지로 호응되나보다.) 결국 엉성한 편집과 이야기 구조로 인해, 눈 한 번 깜빡이지 않은 아야세 하루카의 연기나, 돈과 품을 꽤나 많이 들였을 재난 영화 수준의 영화 후반부가 무색해지고 만다.  

  이 영화에서는 현재와 미래가 끊임없이 영향을 주고 받으면서, 미래가 바뀌는 것으로 나오는데, 한국판에서는 미래부터 시작하는 바람에 다소 김 샌 영화가 되어버렸다. 듣자하니 일본판은 남자주인공의 관점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영화 후반부에서야 미래 장면이 나타나고 모든 것이 퍼즐 맞추듯이 맞춰질 것이다. 한국판보다는 일본판이 더 모범답안이라고 생각한다. 국내에서도 많은 젊은이들이 미드와 일드를 보고 있고, <용의자 X의 헌신>같은 추리 영화도 호응을 얻고 있는 마당에, <아내의 유혹>같은 막장 드라마를 찾는 시청자 수준에 맞추려고자 한 곽재용 감독의 의도가 무엇인지 모르겠다.  

   덧붙여, 노다메 칸타빌레의 '미르히' 타케나카 나오토를 비롯한 여러 일본의 유명 인사들을 찾아보는 재미는 쏠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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