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 요즘 무슨 음악 듣고 계세요?
황병기 가야금 작품집 1집 / 침향무
황병기 연주 / 씨앤엘뮤직 (C&L) / 2001년 7월
평점 :
품절


  이 음반을 들을 때마다 독특한 개인적 체험이 떠오른다. 그때의 느낌을 어떻게 표현해야 좋을지, 지금도 망설여지기만 한다.

  어느 가을 날 저녁 때였다. 내리던 비가 그치자 밖으로 나왔다. 천변도로에서 산책을 즐길 생각이었다. 배낭에 준비한 휴대용 cd 플레이어로 황병기의 <<침향무>>를 들으면서 걷기 시작했다. 구름은 낮게 깔려 있었고 천변 주위에 안개가 자욱했다. 한참을 걷자니 몸에서 땀이 나기 시작했는데, 습도가 높았던 까닭에 안경에 김이 서렸다. 그때였다. 주위의 풍경이 바뀌기 시작한 것이다. 노란 가로등 불빛이 번져 보였고 흐르는 물 위에 떠오른 불빛도 번들거리며 번져 있었다. 아름다웠다. 마치 고흐의 그림 풍경과 흡사했다. 하지만 그 그림은 동양화의 정취를 품고 있었다. 음악 때문이었을까. 갑자기 주위사람들이 사라진 듯 여겨졌고 우주에는 오직 나와 음악과 그 풍경만이 존재하는 것 같았다. 아니다. 물은 흐르고 있었고 가로수는 물기에 젖어 있었으며 안개에 휩싸인 가로등 불빛은 번져 있었고 그 정경에 매료된 나는 주위사람들을 의식하지 못한 채 음악을 들으면서 그 그림 속으로 걸어 들어가고 있었다. 황병기의 <<침향무>>는 눈앞에 펼쳐진 한폭의 그림과 일체를 이루었다. 눈과 귀와 정신이 온통 아름다움으로 흘러 넘쳤다.

  음악 때문에 정경이 아름답게 보였던 것일까. 아니면 정경 때문에 음악이 아름답게 들렸던 것일까. 아마도 두 요소가 서로 상승작용을 일으켰던 것이리라. 그날 이후로 <<침향무>>는 내게 독특한 이미지를 품고서 다가왔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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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 요즘 무슨 음악 듣고 계세요?
뿌리깊은 나무 소리선집 1 / 김죽파 가야금산조
김죽파 연주 / 신나라뮤직 / 2000년 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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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음반을 처음 듣고 갖게 된 불만 두 가지.

  첫번째는 녹음에 대한 불만이다. 음질 상태가 좋지 않다는 말이 아니다. 오히려 잡음 하나 없이 가야금 소리가 또랑또랑하게 잘 들린다. 여기서 문제삼고자 하는 것은 농현弄絃할 때 안족雁足이 삐걱거리는 소리가 너무 크게 들린다는 것이다. 그리고 자세히 들어보면 탄주彈奏 때에 손가락과 현에서 나는 마찰음도 들린다. 처음 들었을 때는 무지 신경쓰였다.

  두번째 불만은 52분이 조금 넘는 전체 연주가 단 하나의 트랙에 담겨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자진모리나 휘모리 부분만을 다시 들으려면 불편하다.

  그런데 첫번째 불만은 이 음반을 자주 듣게 되면서 자연히 사그라지게 되었다. 다른 가야금 산조 음반에 비해 안족 삐걱빼각거리는 소리가 조금 크게 녹음된 것이 오히려 이 음반만의 독특한 특징으로 생각되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바뀐 생각이 또하나 있다. 처음에는 빠른 자진모리와 휘모리 부분이 좋았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느린 진양조 소리에 마음이 끌리게 되었다. 김죽파 선생의 진양조는 다른 어느 음반보다 인생의 깊이가 진하게 묻어나는 듯 들린다. 이러한 생각의 전환은 역시 선생의 훌륭한 연주 덕분이겠다.

  앨범 표지에 실린 사진 속 선생의 얼굴을 본다. 깊은 주름과 삶의 풍화작용으로 인해 만들어진 인상이 여느 할머니의 얼굴과 다름없다. 하지만 가야금 소리는 기막히다. 아마도 모진 풍파를 견뎌낸 삶을 고스란히 연주에 담아낸 것이리라. 연주를 끝내고 내쉬는 선생의 숨소리가 인상에 남는다. 어려움을 마침내 이겨내고 무사히 끝마쳤다는 안도의 숨소리. 드디어 모든 것을 이루었다는 탄식의 숨소리. 선생의 훌륭한 연주에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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