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제와 호랑이와 물고기들 작가정신 일본소설 시리즈 5
다나베 세이코 지음, 양억관 옮김 / 작가정신 / 2004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곰곰 생각해 보니 일본의 단편 소설은 그닥 읽어 본 게 없다.
90년대 초반 슬쩍 일본소설이 알려질 즈음 읽었던 무라카미 류, 야마다 에이미나 요시모토 바나나의 초기작 몇 편, 그리고 시마나 마사히코의 단편들 정도.
개인적으로도 좀 멀어져서일 수도 있겠지만, 상업적인 측면에서도 다분히 단편소설들은 많이 출간되지 않고 있는 것도 한몫 했으리라 본다.
꼭 일본소설뿐만 아니라, 문학 출판에서 전반적으로 단편소설집을 내느니, 조금 분량을 늘려, 단아한 하드커버의 중편(혹은 조금 긴 단편)을 단권으로 내는 손익분기 맞추기도 좋고, 반응도 좋으니, 그게 추세인 듯하다.
그런 와중에 <조제와 호랑이와 물고기들>을 묵혀 뒀다 읽었다.

음... 전반적으로 고른 작품성을 유지하고 있다.
잘된 단편의 특징을 꼽는다면, 주제와 소재의 집중성, 열린 구조 속에서 품어내는 아스라한 장면 포착 정도라고 할 수 있을 텐데, 김훈의 <강산무진> 속의 단편들이 전자에 속한다면(물론 단편이기에 당연히 후자의 측면도 많이 포함하고 있다.), <조제>는 후자에 가깝다고 보여진다.
섬세한 상황 묘사 같은 것을 하고 있지는 않지만, 인물들의 성격이 흥미롭고, 그 관계들이 독특하다. 관계와 심리에 대한 묘사는 그 어떤 것보다 간명하면서도 섬세하다고 할 수 있다. 강렬한 인상을 남기지는 않지만,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음식들만큼이나 입가에 계속 향이 남아 있는 듯하다.
겉으로는 평범하지만 나름 자기만의 생각을 품고 있는
여성들, 그에 비해 조금은 바보 같기도 하고, 천진해 보이기까지 하는 남성들을 축으로 하는 이야기들은, 각각의 설정이 누구나 한번쯤은 생각해 봤을, 느껴 봤을, 아파했을, 꿈꿔 봤을 그런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누구 하나 너무 강하거나 약하지 않다. 어쩌면 그러기에 공감할 수 있고, 그러기에 밋밋하게 느껴질 수 있는 것일지도.

딱히 '몹쓸 놈'이 나오지 않는 것이 특징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혹은 그러기에, 대결 구도가 아닌 상태에서 여성의 내면에 집중할 수 있어서, 각각의 작품들이 나름의 힘을 갖는 듯하다.
동생의 남자에 대한 환상, 조카 꼬맹이를 데리고 노는 도도함, 이상적인 남자를 만난 설렘, 어정쩡한 두 집 살림(돌봄이 더 맞겠다)을 하지만 분명 자신만을 사랑하고 있는 천진한 남편의 저쪽 생활에 대한 상상, 그리고 많이들 아는 조제의 이야기...
다 비슷비슷한 여성들, 남성들의 구조 때문에 마치 한 작품처럼 느껴지기까지 한다. 하지만 그것은 장점으로 작용해서, 각각이 어정쩡한 단편으로 남지 않고, 누구나 공감할 수 있고, 몰입할 수 있는 이야기로 완성되게 해 주기도 한다.

확실히 단편을 잘 쓴다는 것은 어렵다. 물론 장편은 더 어려울 것이다. 다른 의미로.
그런 의미에서, 요즘 재밌게 훔쳐보고 있는 '수면로봇에게 달콤한 건전지를'이나 '아마도, 달콤할 거짓말' 같은 이글루들의 글은 탄복할 만하다. 존경!
(리뷰 마무리로서는 어째 좀 이상하다만, 사실인 걸 어쩌나.)

그리고, 갑작스레 생각난 것!
거의 다 절판 혹은 품절인 우리 시마다 마사히코의 작품들은 언제 좀 제대로 보게 되려나. 미리미리 사두지 않은 게 영 후회된다. <드림 메신저>와 <미확인 미행 물체> <피안 선생의 사랑> <몽유왕국을 위한 음악> 등을 읽었을 때의 신선함은... 음 거의 하루키와 류보다는 훨씬 강렬했던 것 같다. 우야둥둥 그런데 이상스레 1년 전에 잡았던 <천국이 내려오다>는 잘 읽히지 않았다. 요즘 책발이 좀 받으니 다시 읽어 봐야겠다.
(이 역시 영 생뚱맞은 덧말이군. 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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