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산무진
김훈 지음 / 문학동네 / 200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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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보니 <칼의 노래>밖에 읽지 않았다.
꽤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그에 대해 아는 것은 그의 작품이 아니라, 이러저러한 풍문뿐이었다.
그리고, 몇 년 전 <칼의 노래>를 읽고 나서, '아, 김훈 김훈 하는 게 이런 이유 때문이었구나!'라고 어슴프레 감을 잡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의 첫 단편집이라는 <강산무진>을 손에 들었다.
여수에 여행 갔다가, 예상치 않게 기차를 타고 돌아오게 돼 근처 마트에서 한참을 고르다가 낙점한 책이었다. 최대한 짐을 가볍게 하기 위해 책을 안 가져가고, U10에 <사무라이 참프루> 두 편만 넣어 왔는데, 올 때는 갈 때와 다르게 비행기를 타는 여정이 안 잡히는 바람에... (결국은 전라선도 역시 타지 못하고 고속버스를 타고 와서, 강산무진 역시 많이 읽지 못했다.)

한 호흡으로 뱉어내는 문장에는 군더더기가 없으며, 거칠기까지 하다. 자꾸 날것의 냄새를 풍기면서도 모르는 걸 아는 체하는 느낌은 나지 않으며, 짧은 문장과 겹쳐진 사건들, 세세한 묘사는 자꾸 숨을 턱턱 막히게 한다.
그래서일까, 상당히 속도감 있고, 잘 짜여진 이야기는 한숨에 읽을 수 없어, 몇 주 만에 끝낼 수밖에 없었다. 지난 주쯤 만나 낮술을 마신 어떤 형 역시 사무실에 이 작품이 있었는데, 짜증난다고 했다, 몇 문장 이상 읽기 힘들다고 했다, 이놈의 비릿함은 문장 안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독자에게도 전해지는 것이었나 보다.

의도적인 듯한 기사체의 활용과 시적인 묘사의 맞섬은 묘한 향기를 내뿜는다. 거친 손의 시인이랄까. 고지식한 시인이랄까.
특히 건조한 문체에 얹혀서 풀어나오는 재개발, IMF, 명퇴, 광고 등의 소재들은 더도덜도 말고 딱 그만큼 주인공들의 곁을 맴돈다.
건조함. 의도된 날카로움은 예리하지도 현학적이지도 않기에, 그 아픔이 더 크다. 상처 위에 소금을 대고 벅벅 문지르지만 아무 표정도 짓고 있지 않은, 직업인의 모습 같기에 더 힘들다. 

물론 수컷의 냄새가 강하지만, 그건 이 적나라한 날것의 이야기들에서는 어쩔 수 없는 것으로 여길 수도 있겠다. 누구나 그러하기 때문이다.
수많은 직업군이 등장하지만, 대부분 병을 안고 있거나 암을 안고 있거나, 어딘가 모를 인생의 끝간 데 없는 외로움의 막장에 다다라 있다. 그건 여자도 남자도 마찬가지다. 젊은이도 늙은이도 마찬가지다.
그것은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헛헛함, 허무의 끝이기도 하겠지만, 그냥 유한할 수밖에 없는 시간의 어느 한 지점에서는 반드시 나타나는 그런 모습이 아닐까 한다.
그러고 보니 두 편밖에 안 읽었지만, 그의 작품들은 꽤 캐릭터에 치중하는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하다. 그가 구축한 인물이 좀 냉정할 만큼 벌거벗은 게 문제이긴 하지만...

힘들지만 나쁘지 않은 경험이었다.
앞으로 지난 작품들을, 급하지 않게, 천천히 챙겨 읽을 생각이다.
제발 대하소설만 안 쓰길 바랄 뿐이다, 김훈 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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