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남을 돌보지 마라 - 인문학의 눈으로 본 신자유주의의 맨 얼굴
엄기호 지음 / 낮은산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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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남자 이야기>라는 시청률 꽝의 드라마를 즐겨 보고 있다.
이 드라마가 재밌는 게 너무 티나게 지금 정권을 타깃으로 하고 있어서 슬쩍 걱정이 되기도 하지만
정확하게 신자유주의의 본질을 짚어 주고 있기 때문에
그 대담한 지적을 확인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싸이코패스 재벌(김강우)은
'나는 우리나라에서 500만명만 남으면 세계 최고가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라고 이야기하고
'나머지 4천500만은 어쩌고?'라는 질문에
'글쎄, 결국 모든 건 500만에 들지 못한 사람들의 변명 아닐까?'
'다들 그 500만에 들기 위해 안달하지 않을까? 당신은 아니야?'
라는 식의 대답을 한다.

이 싸이코패스가 꿈꾸고 있는 모로코, 혹은 두바이 같은 경제특구의 이름은
바로 '명도시'이다.
그리고 그 명도시 개발을 위해 세입자들을 몰아내는 모습은
'용산 철거 참사'와 다를 바 없다.
특히 이 드라마가 무섭도록 정확하게 짚고 있는 것은
우리 사회에서는 정치도, 경찰도, 그 무엇도
그저 자본의 자유로운 흐름을 위한 수단일 뿐이라는 점이다.
돈이 정치가를 내세우고
공권력이 돈의 눈치를 보고
언론은 그저 편의에 따라 쓰는 도구인 세상.

이 드라마를 보면서 계속
<아무도 남을 돌보지 마라>가 생각났다.
'언제나 누구나 망하리라'는 공포에 사로잡혀서
어릴 때부터 착실하게 돈을 모으는 법보다는
당연히 돈을 굴리고, 자신을 관리하고, 남을 올라서는 법을 배우고
88만원 세대가 되지 않기 위해 중고등학교 때부터 대학, 청년기를 통째로 바치고
그렇게 버둥거리다가 결국은 명퇴하여 치킨집을 차려
수십만의 또 다른 치킨집 사장과 경쟁해야 하는
우리의 모습.

문제는 이 신자유주의 사회가
그저 경제적 곤란함과 양극화만을 초래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까지도 바꾸어 버린다는 데 있다.
그때 신자유주의가 우리에게 내리는 정언명령이 바로
'아무도 남을 돌보지 마라'이다.
너무도 무시무시한 사회이지만
결코 외면할 수 없는 우리의 진실이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는 이를 외면하거나 그러고 싶어한다.
나는 아니다.
나는 탈락의 공포, 예외가 되는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다.
이는 몇몇 소수의 이야기일 뿐
노력하면 다 벗어날 수 있다고.

하지만 이제 개천에서 용 나던 시대가 아니다.
강남 부자는 3대가 가고
돈이 돈을 낳고
돈이 계급을 낳고
계급이 계급을 낳고
그들끼리 모여서 나머지는 저 멀리 어느 곳으로 쫓아 버리고
따라올 테면 따라오든가 말든가
그렇게 내치고 있다.

그리고 가장 무서운 것은 이러한 불균등한 사회에서
그것을 깨고, 더 힘든 사람을 돌보기보다는
오로지 '나도 저렇게 되어야지!'라는 쪽으로만 생각한다는 점이다.

우리에게 그토록 소중한 가치였던 '자유'가
이 시대에 신자유주의라는 싸이코패스에 의해
살짝 얼굴을 가린 채 다시 우리를 옥죄고 있다.
자유의 역습이다.

88만원의 현실보다 더 무서운 것은
88만원보다 더 벌기 위해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죽도록 뛰게 만드는
신자유주의의 정언명령과
이를 눈치 채지 못하게 만드는
이 공고한 체제이다.

이 책 속의 한 소제목처럼
'탈락한 자에게는 쓸쓸한 묘비명조차 없는'
그런 사회이다.

더 이상 인간을 인간이게 놔두지 않는 사회
요즘 들어 자꾸 마음이 먹먹해진다.

하지만, 그대로 주저앉을 수만은 없다.
또 다른 자유를, 또 다른 대안을
쉬지 않고 생각하고 꿈 꾸고 일궈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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