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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 이야기
얀 마텔 지음, 공경희 옮김 / 작가정신 / 2004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작년에는 몰랐는데 올해 보니
집 앞 큰 도로 건너 논에 물이 차고, 거기에 도로의 가로등이 비추니
마치 작은 포구의 밤풍경처럼 보인다.
그래, 지금껏 어두운 밤바다는 이렇듯
어느 정도 인간의 냄새와 함께 어우러진 풍취였다.
그런데 <파이 이야기>를 읽고 난 뒤부터
바다는 끝도 모를 어둠과 아무것도 없음
그야말로 심연의 이미지로 각인되었다.
마치 밤마다 '죽음 뒤 나'를 상상할 때처럼
끝도 시작도 그 깊이도 알 수 없는
무한의 시공간이 주는 두려움 말이다.
그 두려움을 마주선 인간은
'나는 누구인가?'
'세상은 무엇인가?'
라는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다.
그만큼 절실하고 절절하다.
전 세계적인 베스트셀러였기에
나름 기대하고 있던 모양새가 있었는데
막상 대하고 나니
생각보다 책의 깊이가 꽤 됐다.
두려움을 마주 서지 못한다면 인간이 아니다.
인간이 되기 위해서는 두려움과 마주 서야 하며
두려움을 안고 있어야 한다.
하지만, 두려움 때문에 피하기만 한다면
그건 인간이 아니다.
피하기만 한다면 그건 두려움이 아니다.
그리고 그 도망 끝에는
더욱 심한 폭력으로 상대를 누르려는
왜곡이 나타난다.
지금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저들은
그렇게 두려움을 두려워하고 있다.
인간이기를 포기하고 있다.
두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