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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로봇(1disc) - 할인행사
20세기폭스 / 2007년 1월
평점 :
품절
<크로우>의 알렉스 프로야스는 한 시대의 새로운 아이콘을 만들어 내는 놀라운 능력을 보여 줬다.
누구도 브랜든 리라는 인물을, 아버지 브루스 리처럼, 개러지 씬의 커트 코베인처럼 전설로 만들어 내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하지만, <크로우>는 해냈다.
<다크 시티>는 수많은 묵시론적인 SF 영화들 중에서도 독특한 색깔로, '암울함'을 스타일의 경지로 끌어올렸다.
<아이 로봇> 역시 현실 같은(물론 <블레이드 러너> 같은 방식은 아니지만) 미래상과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대립 선에서 '인간은 누구인가?' '로봇은 인간을 대체할 것인가?' '인간만이 주체인가?' 등의 고전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다.
하지만, <아이 로봇>은 그를 열광하게 만든 스타일을 즐기는 이상의 기쁨을 주지 못했다.
물론 그 스타일만으로도 사실 충분히 행복했다.
하지만, 많은 SF 영화들의 한계이기도 하지만,
더 이상 반복되는 어설픈 철학적 질문의 외피는 좀 지겹게 느껴지는 게 사실이다.
앗쌀하게 지독하게 스타일로 밀어붙이는 게 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아이 로봇> 역시 기존의 SF 영화들과는 차별화된 이미지 컨셉을 가지고 있지만
앞서 언급한 <블레이드 러너>의 지저분한 현실감, 혹은 자신의 전작 <다크 시티>에서 보여 줬던 세트적인 조형미, 혹은 <잃어버린 아이들의 도시>나 <델리카트슨 사람들> 같은 영화들이 갖고 있었던 환상성과의 결합 같은 새로움은 없었다.
어떤 기사에서인가 2030년쯤이면 인간의 기억을 이식할 수 있을 정도로 과학기술이 발전할 것이라는 얘기를 봤다.
예전 같았으면 그저 공상과학이려니 치부했겠지만, 요즘은 부쩍 이 가파른 발전 속도에 아찔해 하면서, 쉽게 외면할 수 없었다.
누군가와 이야기했다.
얼마 간의 시간차는 있을지언정 그렇게 될 것 같다고.
가끔 잠못 드는 밤이면, 죽음 뒤의 세계, 죽음이 갖는 비실재성과 존재의 문제를 생각하다 보면, 솔직히 두렵다고.
그렇게 누군가 내 기억을 보존해 준다고 하면 그러마 할지도 모르겠다고. 마치 파우스트의 설정처럼.
하지만 그이는 인간은 몸과 정신으로 이루어진 개체이므로, 조금이라도 물적 성격이 다른 개체에 기억이 이식된다 한들, 그것이 어찌 같은 기억과 같은 정신으로 지속되겠느냐고.
그럴 수도 있겠다.
다시 생각이 든다.
하지만, 그것은 나만의 개성, 나라는 인간의 존엄성, 주체에 대한 대단한 자만은 아닌가 하고 말이다.
다른 개체에 이식된 내 기억과 정신이 물론 지금의 나와는 다를지언정, 그것 역시 또 하나의 개체가 아닌가 하고 말이다.
내가 어떻게 발전할지는 누구도 모르는 일 아닌가.
만약, 내가 지금의 사고를 당해서, 어디 하나를 못쓰게 된다면, 그이의 말처럼 나는 또 다른 정신세계를 갖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그것은 내가 아닌가?
이런저런 생각에 머리가 많이 아팠다.
아프다.
그냥 사랑하며 살고 싶다.
그 근본 동력은 무엇일까?
그냥 사랑하며 살게 해주는 근원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