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층집 - 어둠을 찢고 들려오는 의문의 소리
박성신 외 지음 / 북오션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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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전 빌라에 살 때의 일이다. 아랫층엔 50대 후반의 아저씨가 살고 있었는데, 이분과의 층간소음 전쟁은 지긋지긋했다. 우리집엔 어머니와 나 단둘이 살고 있어 나는 출근하고 밤 늦게야 들어왔고, 어머니는 통닭집을 하고 계셔서 오후에 나가시면 새벽까지 장사를 하시고 달목욕까지 끝내면 동이 틀무렵이나 들어오셨다. 그런데 이 아저씨가 나 혼자 있는 밤에 시끄럽다고 올라와 좀 조용히 하라고 하기 시작....'아니 나 들어와서 씻고 혼자 티비도 안켜고 방에서 책보고 있었는데?' 대체 왜? 눈으로 보시라며...시끄러울게 뭐가 있냐고.... 그렇게 시작된 예민한 아저씨의 방문은 황당함을 넘어 점점 짜증과 분노를 가져왔다. 평소 모녀 둘이 집에 있는 시간도 별로 없어 늘 조용한데 주말이나 명절이 되어 오빠내외와 조카들이라도 오면 정말 5분도 안되어 튀어 올라와 좀 조용히 하라고 언성을 높이고... 너무 무서운게 나랑 엄마가 밤늦게 들어온 시간이며 새벽에 화장실 사용한거까지 열거하며 자신의 예민함을 표출하시는데 이건 뭐 조용히 누워 윗층에서 무슨 소리라도 내나 귀기울이고 있는것 같은 느낌까지 들 정도였다. 그러다 진짜 이분은 병이구나 한게 거실 화장실문 경첩이 뻑뻑해졌는지 문을 여닫을 때마다 삐익~삑~ 소리가 났는데, 며칠 지나자 아랫층 아저씨가 경첩에 뿌리는 윤활스프레이를 들고 오시더니 자신이 직접 들어와 화장실문에 뿌리고 가셨다. 그때 한창 층간소음으로 칼부림 사건까지 뉴스에 나오던 때라 혹시나 이 아저씨가 눈 돌아가 칼이라도 들고올까 매번 미안하다며 조심하겠다 했는데 차츰차츰 나도 분노가 올라오는게 가끔 신경질이 나면 일부러 발로 바닥을 쿵쿵 구르기도 했다. 그렇게 전쟁아닌 전쟁 중 우리집 실외기 베란다에 비둘기가 집을 지어 새끼를 낳았는데, 비둘기의 구구구 하는 소리가 시끄럽다고 이 아저씨가 기다란 쇠꼬챙이를 들고 열심히 비둘기집을 쑤시고 계셨다. 그러면서 비둘기가 집을 짓게 왜 내려버두냐는 식으로 우릴 나무라는거였다. 알고보니 아랫층 아저씨는 일도 안나가고 하루종일 집에 있는 백수였는데 정신적 스트레스와 예민함을 우리에게 돌리는 듯했다. 나 역시 귀가 예민하고 윗층의 발소리나 소음에 민감한 편이라 윗층의 층간소음으로 고생하는 것에 공감하고 그 고통을 이해하지만, 이거야 유별난 아랫층 때문에 이사를 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결국 아랫층 아저씨가 시골로 거취를 옮기면서 이 기나긴 신경전은 끝이 났지만, 일종에 트라우마로 남아 아직도 두고두고 층간소음은 나에게 불편한 녀석이다.

이렇게 현대 한국사회에서 누구나 겪고있고 겪을 법한 층간소음은 우리 생활에서 땔 수 없는 하나의 이슈로 자리 잡았다. 더구나 코로나 라는 특수한 상황과 만나 집콕 생활이 길어기면서 층간소음 갈등문제는 더 늘었다. 그래서일까? 이 층간소음이란 주제로 미스터리 연작소설집이 세상에 나왔다. 보이지않는 곳의 소리라는게 불러일으키는 호기심과 상상력, 그리고 공포감이 다양한 이야기와 만나 미스터리로 탄생했고, 그 짤막한 이야기들을 엮은 소설집이 바로 <위층집>이다. 사람 사이의 공간을 지켜주는 벽. 그 벽을 뚫고 내 공간을 침범하는 불쾌한 소리. 층간소음 스트레스는 인간의 본성을 어디까지 파멸시킬 수 있을까? 네 작가가 만든 네편의 소설이 결코 상상만으로 끝나지 않는 현실의 이야기처럼 펼쳐진다. 각기 다른 소재와 접근으로 층간소음과 인간 삶의 다양한 면들을 들쳐볼 수 있는 소설집 <위층집>은 흡사 내 이웃의 이야기. 나의 이야기 같아 집중이 잘 됐고 공감을 불러 일으켰다. 최근 장르소설에서 활약하고 있는 네 작가의 각기 다른 개성도 엿볼 수 있어 흥미로웠다.

장르소설을 단순히 범죄가 일어나고 그것을 해결해가는 이야기, 탐정이야기 등 오락적인 소설이라고 오해하는 분들이 제법있다. 하지만 나는 단언컨데 그 어떤 소설보다 더 현실적이고 우리네 삶의 다양한 모습과 철학이 담겨있는게 장르소설이라고 말하겠다. 많은 사건 속에는 개개인의 사연과 상처가 묻어있고 그것을 풀어나가면서 세상과 맞서 싸우기도 하고, 악한이에게 벌을 내리는 통쾌함을 느끼기도 하고, 아픈 이들에게 위안을 주기도 한다. 그런 의미에서 짧은 단편들이지만 <위층집>에 실린 네가지 이야기들도 그런 역할에 충실했던 이야기였다.

모두가 잠든 밤 소파에 기대어 읽다보면 어느새 마지막장을 넘기게 될 책. 난 분명히 가볍게 한편씩 읽으려고 했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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