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들은 다른 단어들, 머리카락, 팔, 손, 입, 코 같은 것들을 가르치기 위해 나를 만진다.- 아고타 크리스토프 <문맹>에서헝가리에서 나고 자란 아고타 크리스토프는 스물 한 살이던 어느 밤, 넉 달 된 아이와 남편과 함께 몰래 국경을 넘는다.그렇게 스위스에 정착한 그는 말을 할 수도 들을 수도 읽을 수도 없다. 5년 뒤, 프랑스어를 유창하게 할 수는 있게 되지만 여전히 읽고 쓰지는 못하는 문맹이다. 하지만 그는 글의 세계를 사랑하고 여행하는 사람. 결국엔 프랑스어 읽고 쓰는 법을 배워 외국어로 글을 쓰는 작가가 된다. <문맹>에서는 그가 글을 잃었다가 회복하여 작가가 되는 과정이 담담하고 따뜻하게 그려진다.독서를 사랑하는 이는 책 편집자 하지 말라는 얘기가 있다. 편집자를 하면서 책 읽는 재미를 잃어버린 선배들이 장차 후배가 될 이들을 걱정하며 건네는 말이다. 나는 출판에 입문하고 몇 년이 지나서야 이 말을 처음 읽었다. 읽고서 다행이라 생각했다. 독서를 사랑하지는 않았으니까.그렇다고 편했던 건 아니다. 책을 사랑하고 책의 사랑을 받고 싶은 마음은 컸기 때문이다.올해 들어 좋은 책들과 자주 마주친다. 읽고 사고 하며 '나'라는 독자를 만나고 있다. 내가 이런 책을 좋아하는구나, 하고 알아차리는 순간이 즐겁고 설레고 가슴 떨린다.<문맹>을 읽다가 지하철에서 울 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