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벌레
클라스 후이징 지음, 박민수 옮김 / 문학동네 / 2002년 1월
평점 :
품절


'책은 장난감이 될 수 있다.' 나에게 있어 위 문장은 만화책에만 해당되었다. 그렇다고 내가 모든 만화책을 장난감으로 여겨온 것은 아니다. 어떤 만화책-용비불패, 열혈강호, 앨프를 쫒는 사람들, 해왕기, 그 외 몇 가지-만이 내게 장난감이었다. 확언하건데 내가 읽었던 만화책의 2/3는 철학책, 사회과학책, 역사책의 연장선상에 있다.

만화책도 그럴진데, 그 외의 책들은 어떠할 것인가? 무협지와 야한 소설을 제외한 다른 모든 책은 내가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벅찬 상대들이다. 내용을 잘 파악해야 한다는 강박관념, 가능한 빨리 읽어야 한다는 조금함, 최소한 남들이 이해하는 만큼은 이해해야 한다는 열등감, 학생은 공부를 해야 한다-그것도 책을 통해서-는 고정관념. 나는 이 모든 것들에 철저하게 예속되어 있는 존재이기 때문에, 책을 읽는다는 것은 내게는 다른 무엇보다 진지하고 고된 작업이었다.

<책벌레>(이하 이 책)를 알라딘 북리뷰 코너에서 처음 보았을 때, 난 이 책의 제목에 매료되었다. 이유는 아직도 밝혀내지 못했다. 그렇지만 책에 대한 확신을 갖지 못했기 때문에 책을 구입할 생각은 하지 않았다(그렇다고 내가 이 책을 사고 싶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책을 구입할 충분한 근거들이 부족했을 뿐이다). 그래서 학교 서점에서 이 책을 보았을 때도 눈맞춤만 했다. 이 책을 읽게 된 것은 정말 우연이다.

이 책의 '차례'(나는 목차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싶었지만, 이 책에 목차가 아닌 '차례'라는 단어가 사용되었고, 나는 이 책을 존중하는 마음에서 '차례'라는 단어를 사용하기로 마음 먹었다)는 매우 혼란하다. '한층 더 정확한 독서를 위한 정중한 초대'라는 첫 번째 차례, 첫번째 양탄자에서 아홉번째 양탄자, 그 외의 다른 차례들은 나(독자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싶었지만, 무리한 일반화라는 생각이 들어서 나라는 단어로 교체)를 혼란에 빠뜨렸다. 나는 내용을 짐작할 수 없었다. 동시에 강한 호기심이 내 안에 자리잡았다.

이 책의 초반부는 상당히 흥미롭다. 대뜸 인물의 초상을 하나 올려 놓고, 그것에 대해 야기하기 시작한다. 아주 유쾌한 방식으로 말이다. 여러번 웃음을 참은 후에야 다음 장으로 넘어갈 수 있었다. 책의 초반부는 양탄자를 제외하고는 모두 주로 인물의 행동을 통해 그들이 어떤 사람인지를 보여주는 목적에 할애되었다. 모두 아주 유쾌하다. 독자의 관심을 끄는 것이 저자의 목적 중에 포함되어 있다면, 작가는 그 목적을 충분히 성취해냈다.

하지만 후반부로 넘어갈수록 이 책은 뭔가 심상치 않은 것을 말하려 한다는 인상을 준다. 초반이 책벌레들을 묘사했다면, 후반은 책벌레를 경고하고 있다고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텍스트로의 순수한 몰입, 텍스트의 해체와 독자의 해체(이 해체가 데리다의 '해체'인지는 지금의 나로서는 알 수 없다), 컨텍스트를 제외한 순수한 텍스트의 이해(도대체 이것이 가능한 것인가?). 그리고 (지금의 내 능력으로 알 수 없는 것들)

저자는 독자에게 꼼꼼하게 텍스트를 읽을 것을 요구한다. 거기에 굴하지 않고 텍스트를 쭈욱 읽어나가는 독자도 있겠지만, 나는 저자의 요구에 반쯤 철저하게 응했다. 내가 그런 독서를 선호한다는 점도 어느 정도 작용했다. 그래서 책을 앞으로 넘겼다가, 다시 원래 읽던 자리로 돌아오고, 여기를 폈다가, 다른 곳도 펴보고, 끈기를 가지고 꼼꼼하게 읽으려고 하고, 어쩌구 어쩌구.... 이 책은 완전한 장난감이 되었다. 이것은 지금까지의 내 일대기에서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책이, 그것도 포스트모던을 현란하게 표현한 책이(하지만 난 포스트모던이 뭔지 모른다. 그냥 느낌일 뿐이다) 내게 장난감의 이미지로 다가오다니. 아마 이것은 꿈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나중에 심심해졌을 때 다시 이 책을 읽기로 했다. 좋은 장난감이 있으면 즐거우리라는 생각에서 술 먹는 자리에 한 번 빠지고 이 책을 사기로 맘도 먹었다. 그렇지만 이것은 경계해야지. '텍스트에 몰입하여 내가 해체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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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 되기의 어려움
이수태 지음 / 생각의나무 / 2002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나는 이 책을 학교 서점에서 처음 보았다. 친구와의 약속 시간까지 여유가 있어서 학교 서점에 들렀었는데 신간 코너에 이 책이 누워있었다. 제목이 너무 맘에 들어서 책을 30초 정도의 시간 동안 쓱 넘겨 보았지만, 내용이 내 기대-무지하게 심각한 고민들, 20대의 방황들이 담겨 있으리라는-와는 다른 것으로 보여서 사고 싶은 욕구가 일지 않았던 책이었다.

그런데 언젠가 신문에서 이 책에 대해 누군가가 짤막하게(약 100자 정도로) 추천하는 글을 본 이후 나는 이 책을 사서 읽고 싶다는 생각을 버릴 수 없게 되었다. 그 추천글에 '20평 주택에서 30평 아파트로 이사한 것을 편한 마음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저자(정확한 인용문이 아니고 대략 이런 내용이다)'라는 내용이 내 맘을 완전하게 사로잡았기 때문이다. '그래 이런 사람이 쓴 글이라면 읽어볼 가치가 있겠구나!' 사실 나도 저자와 같은 맘을 계속해서 갖고 싶다. 책을 구입하고 읽기까지는 일주일이라는 시간이 지나서였다. '아르바이트 일이 너무 바빠서'라는 이유 때문이다. 책을 읽기 시작한 후 끝까지 읽는데도 일주일 정도가 걸렸다. 빨리 읽을 수 있는 책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뭐라 해야 할까? 이 책을 다 읽은 후의 느낌을. 애매모호하다고 해야 할까. 저자가 나보다 더 관념적이라는 생각이 드는데,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것인지 가늠할 수 없는 부분이 상당하다. 많은 부분에서 저자의 깊이가 있어 보이는 생각들(실제로 부정할 수 없는 깊이가 느껴지는 부분이 많았다. 그렇지 않은 부분은 시집을 읽을 때, 내 맘에 닿지 않는 시와 비슷한 성격을 띠고 있다고 말하는 것이 최선일 것 같다)을 발견할 수 있었지만,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것인지 저자의 태도는 어떠한 것인지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는 부분도 많았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저자가 나와 비슷한 부류의 인간이라는 것이다. 나쁜피. 이것은 나의 심각한 오독일 수 있다. 이 책은 '돌아봄, 불교, 긴장, 경계', '열등감, 자학, 거리두기'등에 대한 내 생각들을 확인할 수 있는 장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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