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시즘 - 지성의 근본주의 비투비21 5
마크 네오클레우스 지음, 정준영 옮김 / 이후 / 2002년 3월
평점 :
품절


2000년인가? 누군가가 '일상의 파시즘'이란 말을 들고 나와서 지성계를 떠들썩하게 만든 일이 있다. 그 전까지 나에게 파시즘이란 단어는 20세기 정치사에서만 의미가 있었는데, 일상의 파시즘 논쟁을 경험하면서 나는 더 이상 파시즘을 정치사에만 국한해서 사용하지 않았다. 일상의 파시즘 논쟁을 통해 파시즘이란 단어는 사회 이곳 저곳에 두루 사용되었다.

이런 현상은 일정부분 바른 현상이었지만 부작용도 일으켰다. 파시즘이 마치 에이즈나 암처럼 은유로 사용되면서 의미의 경계가 모호해졌기 때문이다. 의미의 경계가 모호해진 단어는 아무데나 쓰여서 결국 단어가 본래 갖고 있던 뜻이 약해지게 마련이다. 그 결과 원래 단어가 의도하던 것과 큰 연관이 없는 지점까지 사용되어 나쁜 결과를 낳는 경우를 흔하게 접할 수 있다.

이 책을 읽게 된 동기는 위에서 언급한 것과는 큰 상관이 없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나면 파시즘이란 말을 사용할 수 있는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를 구분할 수 있게 된다. 이 책은 파시즘의 죄악을 고발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여 씌여지지 않았다.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파시즘이 기반하고 있는 철학적 배경, 파시즘이 의도하고 있는 바, 파시즘의 현재적 의의 정도 이다.

저자가 강조하고 싶어하는 것은 파시즘이 단순히 정치 체제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보수주의자들은 파시즘을 특정한 정치 체제에만 국한시켜서 의도적으로 파시즘을 축소한다. 그러나 파시즘은 하나의 경향으로 현재까지 존재하며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것이다. 저자의 이러한 지적은 정당성을 갖는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 파시즘을 공부한 기억이 내겐 없다. 따라서 저자의 파시즘 분석에 문제가 없다고 자신있게 말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저자의 우려가 기우가 아니라는 인식이 내 안에서 또아리를 트는 것은 왜 일까? 꽤 명확하고 재미있게 파시즘을 풀이한 이 책을 읽어 보는 것은 즐겁고 오싹한 경험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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