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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안 할래 ㅣ 콩깍지 문고 2
안미란 지음, 박수지 그림 / 미래엔아이세움 / 2004년 12월
평점 :
이제 여섯 살이 된 딸아이는 요즘 미운 짓이 시작되었다. 뭐든지 자기 뜻대로 해야 하고, 못하게 하면 입을 쭉 내밀면서 떼를 쓰거나 눈물을 흘린다. 목놓아 우는 건 기본이고 상황에 따라 떼도 먹히지 않을 것 같으면 문을 쾅 닫고 들어가기도 한다. 남들은 네 살 때 시작한다는 미운짓, 이 녀석은 그냥 넘어가나 했더니... 엄마한테 그런 복이 있을 리가 있나.
엊그제도 그랬다. 사촌오빠와 윷놀이를 하다가 갑자기 대성통곡을 하는 秀. 이유는 앞서가던 秀의 말이 사촌오빠에게 잡혔기 때문이었다. 다들 秀의 성질을 알기 때문에 알아서 피하는데, 이 경우엔 도저히 다른 방법이 없었던 것! 움직일 수 있는 말은 그것 하나였단다. 초등학교 1학년인 사촌오빠(이놈도 지네 집에선 막내인데)는 땀을 흘리면서 아이를 달래야 했고, 결국 잡지 않고 하는 윷놀이를 하기로 했다니 누가 이 아이의 막무가내에 제동을 걸 수 있을 것인가.
나 안 할래 이 책을 읽으면서 딱 우리 아이 생각이 났다. 막무가내인 秀와 심술궂어 보이는 사슴이 닮아 보였다. 이 책 아이에게 읽어줘야지 생각했다.
그런데 이야기가 내 기대와는 조금 다른 방향으로 흘러간다. 가위바위보에서 자기가 질 때마다 골을 내던 사슴은 알고 보니 주먹밖에 낼 수 없는 손의 구조를 갖고 있었던 것. 그러니 사슴은 골을 낼 수밖에 없었다.
秀의 심술을 꺾을 요량으로 이 책을 읽어주었던 엄마는, 결국 秀가 요즘 떼를 쓸 수밖에 없는 상황이 뭐가 있을까 돌아보게 되었다.
다니던 어린이집을 그만 두고 스포츠센터로 바꾸는 바람에 무서운 물에 날마다 들어가야 하는 것, 가뜩이나 낯을 가리는 이 녀석이 친구들을 모두 새로 사귀어야 하는 것, 그렇게 스포츠센터에 다녀오면 언니 오빠 때문에 자신은 엄마의 안중에도 없는 것, 나이차이 많이 나는 언니 오빠와는 말도 잘 통하지 않는 것, 모든 것이 다 언니가 쓰던 것 오빠가 읽던 것이어서 자기만의 것은 없는 것...
그래, 우리 秀, 심술이 나게도 되었다. 엄마도 막내였는데, 그래서 막내를 잘 이해한다고 생각했는데, 까맣게 잊고 있었다. 막내로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피곤한지, 얼마나 외로운지.
사슴을 위해 입으로 가위바위보를 했던 너구리와 다람쥐처럼 우리는 아이에게 무엇을 해줄 수 있을까.
어쨌든 우리집은 그 이후로 내내 가위바위보를 입으로 한다.
쪽-암-아 ~